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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정밀의료 따라잡기한국원자력의학원 김희진, 김정영 공저2023-04-05

  ‘보태보태 병’을 아시는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 질환(?)은 자동차 예비구매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데, 모닝에서 시작해서 벤틀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최상위 수입차 라인까지 눈이 높아졌다가, 통장잔고를 확인한 뒤 정신줄을 붙잡고 다시 모닝 급으로 내려오는 것이 보태보태 병의 진행 과정이다. - 여기서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수입차를 지르게 되면 ‘카푸어’로 악화되기도 한다.

 

< 모닝에서 벤틀리까지 가는 기적을 만드는 ‘보태보태 병’, 여러 기술들이 ‘보태’져서 탄생한 정밀의료 패러다임 >

 

  자동차 구매를 예시로 들었지만, ‘보태보태 병’은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 놓인 모든 사람들과 항상 함께해왔고, 연구자들도 ‘보태보태 병’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지금 하는 실험에 다른 실험까지 ‘보태’자”, “A기술에 B기술을 ‘보태’면 더 좋은 기술이 나올 것이다.”처럼 과학기술의 발전도 ‘보태보태 병’과 함께 해왔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러한 비유는 구매의 관점이 아니라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더 쉽다.

  인류 문명 발전과 함께 해온 ‘보태보태 병’은 보건의료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체의 신비와 약리작용 연구하는 의약학에 생명공학과 더불어 인공지능 분야까지 ‘보태’져서 탄생한 정밀의료는 현대의학의 벤틀리나 람보르기니 레벨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계속 발전해서 정밀의료에 보태진다면, 정밀의료를 능가하는 부가티 베이론급의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 개념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이 번호에서는 의료계 람보르기니급 기술로 자리매김 중인 정밀의료의 정의와 국내외 현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 개념을 맨 처음 제시한 곳은 캘리포니아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UCSF)으로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질병의 근원과 정확한 치료법 개발에 대한 보다 새로운 이해를 위해 기술, 과학 그리고 의료기록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후 여러 가지 문헌에서 저마다 정밀의료 개념을 언급하기 시작하는데, FDA1)는 ‘유전인자, 환경, 생활방식 등을 고려해 맞춤형 질병 예방치료를 하는 혁신적인 접근법’이라고 정의했으며 NCI2)는 ‘개인 고유 유전자 또는 단백질 정보 등을 이용해서 질병 예방·진단 그리고 치료하는 의학모형’으로 정의했다.

  정밀의료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예시가 ‘수혈’이다. 인간 혈액형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20세기 초 만 해도 치료목적의 수혈은 금기 사항이었다. 그러나 1901년과 1902년 카를 란트슈타이너, 폰 드카스텔로 그리고 스털리에 의해 사람 혈액형이 4가지로 분류된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된다. 이후 수혈이 필요한 환자에게 보다 정밀한 치료효과를 줄 수 있도록 다양한 혈액형 연구가 진행돼 왔다. 대표적으로 2018년 워싱턴 대학 연구팀은 각 혈액형 별로 취약한 질병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3)  유사과학 심리테스트에서 많이 접하던 혈액형이 정밀의료에서 활약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밖에도 혈액검사 기법 중 하나인 액체 생검(Liquid Biopsy)을 통해 암환자를 진단하는 등4), 혈액과 혈액형은 정밀의료 실현을 위한 초석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정밀의료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은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발표한 ‘정밀의료 추진계획(Precision Medicine Initiative; PMI)’지만 정밀의료 개념은 1990년대 미국정부가 실시한 ‘인간유전체계획(Human Genome Project; HGP)’에 있다. 이 인간유전체계획이 발판이 되어 암 정복이라는 미국 정부의 중·장기적 목표가 집약된 정밀의료 추진계획이 발표된다.

  여담으로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와 맞춤의료(Personalized Medicine)용어가 혼용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밀의료와 맞춤의료는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개념인데, 딥러닝이 머신러닝의 부분집합인 것처럼 정밀의료도 맞춤의료의 한 분야라고 이해하시면 되겠다. 이것은 우리 한의학의 사상의학과 같이 현대 진료기술을 동원하여 개인의 건강정보를 모든 데이터화 한 뒤 그 체질에 맞춰 질병을 극복해 가는 방식이다.

 

 

< 맞춤의료와 정밀의료의 관계5) >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동으로 2017년부터 정밀의료 사업단을 구성해 난치암 환자 유전변이에 맞춘 표적치료제 개발, 맞춤형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정밀의료 병원정보시스템 개발 등을 추진하였다.

  우리나라는 2015년 미국과 체결한 협약을 통해 정밀의료를 중점 분야로 육성해왔다. 보건복지부는 미국 HHS(The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와 ‘보건의료 및 의료과학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였고, 이 후 미국 국립보건원과 한국 국립보건연구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국립암센터가 한-미 협력의향서를 체결하여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2017년에는 정밀의료기반 암 진단 치료법 개발 사업단이 출범하여 국내 암 환자들의 유전자 변이를 분석하고 환자 개개인 별로 최적화된 암 진단·치료법을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해 2020년 5,000명이 넘는 암환자 데이터 분석을 완료했다. 그리고 2019년 5월에 암, 희귀난치질환 환자 40만 명과 일반인 60만 명 등 총 100만 명 규모의 유전체 정보를 2029년까지 모아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을 추진 중이다.

  세계 정밀의료 시장은 2015년 기준 384억 달러 규모에서 연평균 13.4% 성장하여 2025년에 약 1,342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 바 있다. 정밀의료는 유전체 등 오믹스 분석기술과 빅데이터, AI기술이 시장 발전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되며, 우리 사회 고령화 추세와 이에 따른 의료비 부담 가중을 해소할 수 있는 산업으로 꼽혀 각국에서 연구개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 주요 국가별 정밀의료 미래전략6),7) >

 

 

 

  유전자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160년 전인 1865년 그레고어 멘델에 의해서다. 이후 20세기 들어 유전자 연구는 급속히 발전한다. 1909년에 염색체 안에 유전 정보가 들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1943년에 DNA가 유전 물질임이 입증되었다. 1953년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이 DNA가 이중 나선 구조임을 입증하면서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1956년 DNA 합성 효소 발견으로 DNA 생성 원리 규명, 1973년 서로 다른 종류의 DNA를 결합시킨 재조합 DNA가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며, 1980년대에는 DNA 증폭기술(Polymerase Chain Reaction; PCR)이 개발되어 유전공학의 성장을 이끌었다.

 

< 유전체 분석 프로젝트 진행과정8) >

  이후 2003년 인간유전체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 HGP)가 완료됨에 따라 유전공학은 다시 한 번 눈부신 도약을 하게 된다. 프로젝트 기간 15년, 투입 비용 20조원에 달했던 인간유전체프로젝트는 유전자 분석 비용을 엄청나게 감소시켜 정밀의료 기술 발전에 씨앗이 된다. 인간유전체프로젝트는 약물유전학 연구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안겨줬다. 같은 약물을 똑같은 조건과 방식으로 투약해도 환자 개인마다 약물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 개인마다 약물반응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환경적 요인 외에 유전적 요인이 있는데, 유전적 요인은 약물의 안전성과 효능에 있어서 개인차를 더 크게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적 요인이 개인의 약물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분야가 약물유전학(Pharmacogenetics)이다.

  약물유전학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약물유전체 맞춤치료’ 개념도 등장하게 되었다. 약물유전체 맞춤치료는 약물유전학을 기반으로 개인의 유전적 요인에 따른 약물 반응과 그 차이를 관찰하고 환자별 특정 유전자 소인 유무 따라 처방된 치료제의 안전성· 유효성·약물 용량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약물유전체 맞춤치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약물대사와 관련된 효소, 유전자 발현, 염기 다형성 등과 관련된 지표들을 찾아내고 실제 약물 투여 시 미치는 영향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필요하다.

 

인간은 한 사람당 약 30억 개, 1테라바이트에 달하는 유전체 염기쌍 서열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빅 데이터 분석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은 정밀의료 실현에 필수적이다. IT와 의학의 만남이 정밀의료라는 의료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것처럼 여러 기술들이 ‘보태’진 정밀의료는 어떤 방향으로 업그레이드 될 지 기대된다.■ (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

 

1) https://www.fda.gov/medical-devices/in-vitro-diagnostics/precision-medicine
2) https://www.cancer.gov/publications/dictionaries/cancer-terms/def/precision-medicine

3) Pardeep Kumar et al, J Clin Invest. 2018;128(8):3298-3311
4) Lone, S.N., Nisar, S., Masoodi, T. et al. Liquid biopsy: a step closer to transform diagnosis, prognosis and future of cancer treatments. Mol Cancer 21, 79 (2022)
5) 정밀의료 시대로의 관문 바이오마커와 오믹스, 현대차증권, 2021
6) 인공지능 활용 방사선 정밀의료, 한국원자력의학원, 2018
7) 정밀의료 기술의 미래, 과학기술정보통신부·KISTEP, 2021
8) 인공지능 활용 방사선 정밀의료, 한국원자력의학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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