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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맞춤의료와 방사선 정밀의료한국원자력의학원 김희진, 김정영 공저2023-02-08

  1997년 IBA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딥블루(Deep Blue)가 체스 세계 챔피언이었던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바둑은 인공지능이 정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바둑의 경우의 수-약 3361(≈10172) 개이며, 이는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수와 비견되는 수치-는 아득히 많고, 게임 전개가 매우 다양하여 인공지능이 감히 넘보기 힘들다는 것이 그 당시 중론이었다. 이로부터 19년이 흐른 2016년,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가 인간 바둑계 최강자였던 이세돌 9단을 꺾으면서 마침내 인공지능이 바둑에서 인간을 뛰어넘게 된다.

  알파고 등장은 경직되어 있던 바둑계에 큰 충격을 안겨줌과 동시에 바둑 AI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였고 지금은 AI 바둑이 바둑공부 정석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현재 한국바둑 랭킹 1위 이자 세계랭킹 1위인 신진서 9단도 AI 바둑연구로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고 하니 4,000년 간 바둑알과 바둑판이 지배하던 바둑계에 바둑 프로그램을 구동할 수 있는 고사양 컴퓨터가 필수품이 되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러나 바둑 AI 프로그램의 발전은 ‘AI 바둑 치팅’이라는 바둑계가 해결해야 할 커다란 숙제도 함께 가져왔다. 2020년 한국바둑계를 뒤흔들었던 부정승부 사건 이후 크고 작은 바둑 치팅 사건들이 발생했는데, 작년 연말에 있었던 춘란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에서 중국 프로바둑선수 인 리쉬안하오가 치팅 바둑을 두었다는 논란에 휩싸여 바둑계가 다시금 AI 바둑 치팅 이슈로 달아오르고 있다.



<2022년 연말 바둑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신진서와 리쉬안하오의 춘란배 4강전 대국>

 

  이처럼 바둑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4차 산업혁명의 여파로 비약적으로 발달한 빅데이터분석·처리 기술이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적용된 결과 덕분이다. 빅데이터 처리기술은 바둑뿐만 아니라 인간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쳤으며, 보건·의료 분야에도 정밀의료·개인 맞춤형 의료 패러다임 열풍이 부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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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의 근간은 90년대 후반에 정착된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 EBM)에서 찾을 수 있다. 90년대에는 특정 질병 환자군에 일률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면, 국가적 의료비용 절감과 의료보험 적용범위 객관화를 위해 ‘근거중심의료’ 패러다임이 적용되기 시작한다. ‘근거중심의료’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 정밀의료이며 정밀의료는 개인 맞춤형 의료(Personalized Medicine)로 연결된다. 근거중심의학이 임상시험 결과를 모든 환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개념이라면, 정밀의료는 임상시험 시 특정 집단을 선택하고 이들 집단에서 질병 상태가 어떻게 변화되는지 관찰하는 코호트 연구법을 적용하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토대로 환자에게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밀의료는 근거중심의학에 비해 한 단계 진화된 의료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2015년 신년연설에서 ‘정밀의료계획’(Precision Medicine Initiative; PMI) 추진을 발표하면서 정밀의료기술에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됐다. 정밀의료계획의 골자는 환자 개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치료를 제공해 난치병을 정복하고 의료비를 낮추겠다는 전략이었다. 특히 같은 질병 군에서도 치료효과가 없는 그룹에게 기존 또는 새로운 치료방법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고 국가적으로도 의료비용 지출을 줄일 수 있어 많은 국가들이 정밀의료 실현을 국가의료정책 목표로 하고 있다. 예컨대 European Commission’s research agenda는 정밀의료기술 개발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으며 7차 EU 연구 프레임워크 프로그램(‘07-’13), Horizon 2020(‘14-’20) 그리고 Horizon Europe Program(‘21-’27)등 EU의 여러 가지 사업프로그램에서도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다.

 


<PMI를 발표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EU에서 추진하는 정밀의료 국제 컨소시움>

 

  정밀의료보다 진화한 개인 맞춤형 의료에 대해, 미국 과학기술자문위원회는 ‘각 환자의 개별적 특성에 맞춘 치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의했으며 미국 국립게놈연구소는 ‘질병의 예방, 진단, 치료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도구로 개인들의 개별적인 유전적 프로필을 사용해 새로이 부상하는 의학적 실천’이라고 정의했다.

  1990년에 시작된 인간게놈 프로젝트 당시만 해도 인간 유전체 분석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어야 했지만, 현재는 일반인들도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유전자 정보를 통해 개인 맞춤형 의료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질병 예방, 표적치료제 적용, 치료부작용 감소 그리고 수면연장 등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유전자 돌연변이와 같은 불안정성으로 인한 진단·치료 한계와 여러 제도적 규제 등으로 진정한 의미의 개인 맞춤형 의료가 자리 잡으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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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과 정밀의료·개인 맞춤형 의료는 어떤 관계가 있으며 방사선을 이용한 정밀의료기술가 왜 주목을 받는 것일까?

  정밀의료·개인 맞춤형 의료를 이야기하면서 함께 언급되는 기술들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기술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이 근간이 되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기술이다. 빅 데이터 처리기술 발달은 인공지능 알고리즘 혁신과 방대한 양의 인간 유전정보 및 각종 의료 데이터분석을 가능하게 한 가운데, IBA Watson이 의료분야에 도입된 대표적인 인공지능 기술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정밀의료를 넘어 이상적인 개인 맞춤형 의료 패러다임으로 넘어가기까지는 앞으로 10-20여년이 소요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규제라는 제도적 난관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개인 맞춤형 의료가 의료계에 뿌리내리기에는 기술 성숙도가 부족하고 비용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실현될 개인 맞춤형 의료와 현재 의료시스템 간 공백을 최소화하면서 맞춤의료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의료기술이 바로 ‘방사선 정밀의료기술’이다. 전문가들은 진단과 치료가 조합된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방사선 정밀의료기술이야 말로 가장 이상적인 개인 맞춤형 의료를 실현하기 위한 사전 단계라고 말하고 있다. 방사성의약품을 이용한 영상진단 시 생성되는 여러 가지 정보들을 정량화한 지표를 영상 바이오마커(Imaging Biomaker)라고 하는데, CT, MRI, PET/CT 등 과 같은 의료영상장비들을 통해 획득할 수 있다. 영상 바이오마커는 생체표지자라고 불리는 바이오마커와 함께 환자 진단, 질병 모니터링뿐 아니라 신약개발 임상시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방사선 정밀의료기술에 많은 연구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방사선의학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방사선정밀의료를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형 의료시대를 이끌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 방사선 정밀의료기술이 개인 맞춤형 의료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 ‘인공지능 활용 방사선 정밀의료’ 도서를 바탕으로 풀어나가 보려 한다.■ (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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