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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이번에는 진짜일까?변병현(핵의학과, 원자력병원)2021-12-06

  메타버스(meta-verse)는 1992년 미국 닐 스티븐슨의 SF소설 속에 등장한 가상세계의 명칭으로 가상을 의미하는 meta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의 합성어이다. 요즘은 이게 어찌나 유행인지, 유력 대선후보들이 메타버스 공간에서 유권자들과 토론회를 하기도하고, 웬만한 규모의 회사들은 소비자들과의 소통을 위해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2021년 포털사이트 검색트렌드 상위권에는 메타버스 관련 내용들이 줄지어 있기도 하다.

  사실, 메타버스가 세상을 바꿀 것이란 기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5년 재런 러니어는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 상호 작용이 가능한 장갑, 여기에 네트워크 개념을 도입한 ‘가상현실’ 장비를 고안하여 실제 판매하기도 하였다. 여러 기술적 한계로 대중화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후 2003년 인터넷 기반의 가상세계인 ‘세컨드 라이프’가 개설되어 그 가능성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가운데 작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비대면 일상에 익숙해지고, 5G 기술이 무르익으면서 수요와 기술 측면이 모두 맞아떨어지며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게 된 것이다.

 

메타버스와 차세대 의료

  가장 먼저 메타버스 기술이 시도되고 있는 의료분야는 의학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적절한 의학교육을 위해서는 강의 위주의 이론 교육을 넘어서 심도 있는 실습 교육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의대 교육과정 중에서도 해부학 실습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직접 환자들을 대면하는 병원 실습도 1년 이상을 거치게 된다. 메타버스 기술은 코로나19로 인해 대면교육에 많은 제약이 생긴 상황에서 훌륭한 대안이 되고 있고, 실습 교육 전 학생이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거칠 수 있게 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이고 능동적인 실습을 기대할 수 있게 하였다. 학생 교육 외에도 전문적인 수술법을 전수하기 위한 메타버스 교육도 시도되고 있다. 케이스 자체가 희귀한 질환이나 고난도의 수술은 아무리 외과 전문의라 할지라도 해당 수술의 지속적인 경험이 중요한데,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하면 이러한 수술 과정을 전 세계 어디에서나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다.

  메타버스 기술은 실제 환자의 진료에도 이용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우울증 치료를 위해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서 그 곳에서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고 행동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미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중심으로 다수의 프로그램들이 활용되고 있으며, 우울증을 넘어 다양한 정신과적 질환으로 그 이용범위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메타버스와 방사선의학

  메타버스 기술은 방사선의학에도 활용되고 있다. 2021년 8월 캐나다 업체의 가상현실기반 영상의학 장비가 캐나다 보건당국으로부터 의료장비로 승인을 받았다. 이 장비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집을 포함한 어느 장소에서든 병원의 판독실과 동일한 환경을 구현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3D 가상현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장비를 굳이 어디에 쓸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이 장비는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료체계가 취약한 제3세계 국가에서는 많은 수의 산모가 적절한 산전초음파를 시행 받지 못하여 높은 영아 사망률로 이어지고 있다. 외상 환자나 응급환자의 경우 초기에 정확한 영상진단을 받지 못하면 사망률과 합병증이 증가하게 된다. 이와 같은 영상진단의 공급부족은 단순히 초음파나 CT 장비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이를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는 전문의가 부족하거나 편중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메타버스 기술은 이러한 의료자원 배분의 불평등을 상당 부분 해소시켜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의 메타버스 붐도 1985년 가상현실 기계나 2003년 세컨드 라이프처럼 결과적으로는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상당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분야에서 메타버스 기술이 우리 생활에 파고들고 있는 것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고, 방사선의학에서도 메타버스가 새로운 흐름을 일으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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