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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의 주인을 알려준 기술을 이용한 임상시험핵의학분과 세부편집장, 핵의학 과장 변병현2021-06-04

 

  전북익산에는 백제시대 서동요의 주인공인 무왕과 그의 부인 선화공주의 왕릉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역사시간이나 드라마를 통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음직한 이름이지만, 사실 이 왕릉의 주인이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물론, 위치나 규모, 출토유물들로 보아 이 무덤의 주인이 백제 무왕일 것이란 추정은 일제시대부터 있어 왔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해준 것은 2018년도에 이 무덤에서 발견된 인골의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결과이다. 무왕이 서거한 연도가 서기 641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인골이 서기 620~659년 사이에 사망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었기 때문이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이란?

  지구상에 존재하는 탄소의 절대 다수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각각 6개인 C-12이다. 그런데 지구의대기 상층부에서는 N-14가 우주선에 의해 양성자 6개와 중성자 8개인 C-14으로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C-12에 비해서는 극미량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C-14은 대기 순환을 통해 온 지구로 퍼지게 되어 살아있는 생물의 호흡을 통해 체내로 들어가게 된다. 대기 상층부에서 C-14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지만, C-12와 달리 불안정한 상태의 C-14은 자연상태에서 방사선 붕괴되어 C-12으로 변환되기 때문에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도 지구상에서 C-12와 C-14의 비율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 따라서, 생물이 살아서 호흡을 유지하는 한 체내의 C-12와 C-14의 비율 역시 일정하게 유지된다.

  생물이 죽어서 호흡을 멈추면 어떻게 될까? 체내의 C-12은 안정한 상태이므로 변함이 없지만, C-14은 불안정한 상태이므로 자연붕괴를 통해 서서히 감소하게 될 것이다. 즉, 생물체가 죽고 나서(호흡이 멈추고 나서) 오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몸 속에 남아있는 C-14의 양은 비례해서 줄어들게 되고, C-14/C-12의 비 역시 줄어들게 된다. 그러므로, 인골의 C-14/C-12을 측정하면 인골의 주인이 대략적으로 언제 사망했는지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가속질량분석기(AMS)를 이용한 보다 정밀한 측정

  1980년대 이전까지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을 할 때 주로 사용하던 방법은 liquid scintillation counter(LSC)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C-14은 방사선을 내며 붕괴를 하는데 방사선을 흡수하면 그 에너지를 빛으로 발산하는 물질이 있는데, LCS는 이 물질을 이용하여 C-14의 양을 측정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측정할 수 있는 C-14의 양이 제한적이다 보니, 아주 오래 전에 죽어서(호흡이 멈추어서) 체내에 C-14이 극미량만 남아있는 생물은 사망 시기를 측정하지 못하는 제한점이 있었다.

  이러한 제한점을 극복한 획기적인 기술이 1980년대에 개발되었고, 그것이 가속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ry)이다. 가속질량분석기는 수천 볼트 이상의 높은 전압을 유지하는 기기에 몇 가지 전 처리를 한 시료를 넣고 가속을 시키면, C-12, C-13, C-14가 질량/전하 비에 따라서 분리되어 측정되는 원리를 이용한다. 이 방법을 이용하면서 기존의 LCS 방법보다 백만 분의 1만큼 극미량의 C-14도 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오래 전에 죽은 생물의 사망 시기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안전성 우려가 없는 초기 임상시험

  신약개발 과정 중 임상시험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성공할 가능성도 낮기 때문에 막대한 자본을 보유한 글로벌 제약사들도 임상시험에 진입하는 것은 극도로 신중하게 결정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간 전 세계 임상시험 추이를 보면 2상, 3상과 같이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보다는 1상 임상시험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데, 그만큼 1상 임상시험 후 2-3상 임상까지 진입하지 못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제약사 입장에서는 1상 임상시험도 시작하기에는 많은 부담이 따른다. 아무리 비임상시험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이 뛰어났던 신약후보물질이라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1상 임상시험에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나 유효성 부족으로 더 이상의 임상시험이 불가능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월등하게 많다. 그러다 보니 허가당국에서도 1상 임상시험을 시작하기 전에 방대한 규모의 비임상시험 자료를 요구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신약후보물질의 생산과정도 완벽하게 통제된 GMP 기준을 맞추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상당 부분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 마이크로도징 임상시험인데, 이 임상시험에서는 비임상시험을 근거로 유효 용량의 1% 이하이거나 전체 투여량이 100 μg 이하의 신약후보물질을 투여하게 된다. 이렇게 극미량의 물질은 유효한 약리작용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마이크도도징 임상시험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독성자료만을 제출하고 덜 엄격한 GMP 기준 정도의 약물을 투여하면 된다.

  가속질량분석기는 마이크로도징 임상시험에 특히 유용한데, C-14을 극미량의 신약후보물질에 표지하여 체내에 주입하고 시간대별로 채혈하여 C-14의 농도를 분석하면 체내 약물의 동태를 아주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방법은 독성의 부담이 없기 때문에, 항암제와 같이 세포독성이 아주 강한 약물을 정상인에게 투여하여 약물동태를 보거나 소아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 또는 호흡기계 약물이나 항생제와 같이 복용량이 그램(g) 단위로 아주 큰 경우에 매우 유용하다. 이에 따라 글로벌 제약사 중에서는 아예 사내에 가속질량분석기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이런 임상시험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수탁기관에 의뢰를 하기도 한다.

  고대 왕릉의 주인을 밝히는데 이용되었던 첨단 방사선기술이, 인류의 생명을 연장시켜줄 신약개발의 새로운 장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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