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생의 과학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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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3월호
신뢰 자본을 아시나요?
김정영 (책임연구원, 한국원자력의학원)2021-03-04

우리의 흔한 풍경

(풍경1) 포스트코로나시대, 누구나 그러하듯이 X-선생도 휴일에 주로 집을 벗어나지 않고 논문, 영화, 음악, 라디오 등을 들으면서 조용히 가족과 지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외식을 못하는 기분과 무료한 가족 구성원의 요청으로 배달 음식을 자주 시킨다. 이 음식은 플라스틱 환경문제가 걱정될 만큼 꼼꼼하게 포장되어 안전한 상태로 배송되어 온다. - 음식점의 고뇌와 감사가 느껴진다. - 우리는 그 음식점의 구성원을 신뢰하며 맛있게 음식을 즐긴다.

(풍경2) X-선생은 택배를 주문할 때 꼭 쓰는 문구가 있다. “부재 시 집 앞에 두고 가세요.” 라는 말을 꼭 붙인다. 시간이 중요한 택배 기사 분들께 배려도 하고, 초인종을 눌러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누르면서까지 달려 나와야 하는 예의를 안 지켜도 되니, 서로가 win-win인 셈이다. 또한, 코로나19 예방 효과도 동반한다.

(풍경3) 회의시간이 남아 카페에 들어가 노트북을 열고 커피와 함께 잠시 발표 자료를 점검한다. 이내 전화가 걸려와 마스크가 쓴 상태로 발음이 작아 카페를 나와서 조금 큰소리로 통화를 한다. - 몇 십분 뒤 – 다시 카페로 들어가 노트북을 닫고 회의장소로 출발한다.

(풍경4) 대전 쪽 연구소와 회의가 잡혀 KTX를 탄다. 스마트폰으로 예약하고 내 좌석에 앉아 가는 동안 - KTX 직원 분들과 눈인사 정도 한 것이 전부... - 좌석 표에 대한 검사 없이 대전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기차 플랫폼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풍경5) 간만에 친구와 둘이서 식사를 하면서 반주를 했다.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뒷좌석에서 스마트폰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내 걸려온 폰 주인과 집 근처에 만나 폰을 돌려주었다. 물론 그의 고마움은 마음으로 받았다.

(풍경6) 아침 출근길 차가 막혀서 지각이 예견된 듯 보인다. 잠시 뒤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데 모든 차들이 조금 차를 틀어 길을 만들어주고, 구급차는 속도를 거의 줄이지 않고 빠르게 내 앞을 사라져 간다.

 

상대를 얼마 믿습니까?

  위의 풍경들은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특히 우리 의학원에 방문하는 개도국 보수 교육생들(일부 선진국 방문객 포함)이 하는 말 중에 하나이다.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위의 풍경들이 낯선 것일 수 있다. - 유럽 여행에서 지갑과 스마트폰을 꽁꽁 숨기며 다녔으나 소매치기 당했다는 지인의 말을 들었을 때, 사진 좀 찍어달라고 건넌 폰을 그대로 들고 뛰어가는 사람의 등을 보았을 때 - 특히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고 화장실이나 볼 일을 보는 한국인의 모습은 그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는다. 몽골 핵의학 교육생들을 데리고 화순전남대병원 연수교육이 가는 날에 몽골 교육생들은 기차표를 검사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놀라워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이웃의 신뢰가 두터운 풍습을 가지고 있었으며(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었음에 불구하고), 최근 급격히 변모하는 민주주의 성장과 더불어 그 시너지가 커지고 있다. - 물론 사기 관련 거짓말 범죄는 여전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발전을 막는 중요한 걸림돌이기도 하다.

  작년 중앙일보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김병연 교수가 기고한 글은 X-선생에게 새로운 관점을 일깨워주었다. ‘재난은 신뢰자본을 축적할 기회다(중앙일보, 2020년 2월 19일)’ 라는 서평을 통해 김병연 교수는 “경제학자들은 한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10% 포인트 증가하면 경제성장률이 0.8% 포인트 성장한다고 추정한다. 한국인의 신뢰수준이 현재의 26%에서 미국 수준인 35%로 상승한다면 작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가 아니라 2.7% 쯤 됐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는 50조원 정도의 매우 큰 추경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와 비슷하다. 즉 지금보다 신뢰수준이 10% 포인트 증가한다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서도 5만개 가량의 일자리가 해마다 추가로 생긴다는 말이다.” 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그는 신뢰를 사회적 자본의 강조하며 신뢰자본이라는 말을 설명한다.

  위와 같은 논조에서 지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2021년 2월 18일 방송)’에 출연한 한빛미디어의 박태웅 의장은 다음과 같이 연구자들에게 흥미를 끄는 예제를 언급했다.

 

신뢰는 서로가 주는 것

  지난 과거, 혹은 현재에도 연구비를 둘러싼 개인 비리는 계속적으로 불거지는 문제이지만, 그것을 개선하려는 동력을 과거의 사례를 들어 연구비의 청렴도 탓, 또는 법제화의 탓으로 옥신각신 안했으면 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경제규모의 성장이 과거와 다르고, 과거의 지향했던 국정 철학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그 안에 있는 세대(연구원) 간의 인식 차도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가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제도가 확립되고, - 그 제도 하에서 새로운 책임이 부여되었으면 한다. - 무엇보다 R&D 관리비용에서 소모되는 대규모 예산을 더 큰 연구비나 다른 사회적 문제 해결을 예산으로 활용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이것을 추진하기 위해 반드시 연구자들은 자신이 제안한 사업계획서 이행에 최선을 다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불법적 행동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형성된, 신뢰에 의한 R&D 예산은 더 많은 연구주제와 연구그룹에게 돌아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먹거리나 인류적 공헌을 위해 쓰는 데 활용되기를 희망한다. X-선생이 개도국 교육생들에게 방사선의학을 교육시켜 보면, 많은 교육생들이 우리나라의 청렴한 사회시스템을 – 다시 말해, 시민의식 – 부러워한다. 그러나 X-선생이 그것에 대해 좀 더 자신감에게 말하고 떳떳하게 언급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위선이 맑지 못함이고, 여전히 그 안에서 탈법적 불법적 초법적인 행동을 하는 각개 각층의 지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포스트코로나시대에서 R&D는 직접적인 기업을 돕거나 창출하며 경제를 부흥하는 동력만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새로운 질병을 잘 방어하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시민들에게 잘 인식시킴으로써 국가 경제에 이바지함을 잘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국가적으로 국민적으로 R&D에 관심을 가질 때 더욱더 과학계는 그들에 대한 신뢰를 두텁게 쌓아 – 그리고 경제적 이득과 함께 - 새로운 위기에서 해법을 제시하는 과학자의 역할이 계속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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