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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호 오가노이드와 방사선의학 | 핵의학분과 세부편집장, 핵의학 과장 변병현 | 2020-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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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가끔 나오는 자동차 충돌 테스트 결과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이 테스트에서 차 안에 타고 있는 것은 당연히 사람이 아닌 더미인데, 어마어마한 속도로 충돌한 차 안에서 멀쩡하게 유지되고 있는 더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동차 회사들이 즐겨 쓰는 홍보 방법이기도 하다. 더미의 기원은 1949년 미 공군에서 긴급탈출이 가능한 전투기 좌석을 개발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보다 정교하게 인체 관절과 무게, 탄성, 비율 등을 모사한 더미들이 속속 등장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오가노이드의 개념과 역사
오가노이드(organoid)는 생명공학의 더미라고 불릴만하다.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모습을 갖추어 인간의 행동을 잘 모방할 수 있는 로봇을 일컫는 것처럼, 오가’노이드’는 인체 장기(organ)와 기능과 구조가 유사한 인공장기를 말한다. 이 오가노이드는 장기세포를 이용해 체외배양기술을 이용해 만들거나 줄기세포 분화기술을 활용해 제작할 수 있다. 기존의 단일세포를 배양하는 방법과 달리 오가노이드는 배양 접시에서 키울수록 3차원적인 형태로 자라나 하나의 장기처럼 본래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인공장기나 장기이식 등에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어 왔다. 오가노이드의 본격적인 임상적용은 1975년 제임스 레인왈드 박사와 하워드 그린 박사가 각질형성세포틑 배양하여 상피 피부 조직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이 배양 피부 조직은 화상이나 당뇨성 족부궤양 환자들에게 오늘날까지도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이후 소장, 대장, 간, 췌장 및 심지어 뇌에 이르기까지 각 장기와 유사한 다양한 오가노이드 기술이 발전해 왔다.
방사선의학에서 오가노이드의 활용
암환자에서 수술과 함께 표준치료법인 항암요법이나 방사선치료를 시행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진단 당시의 병기나 환자 상태에 따라서 어떤 항암요법을 추가하고 어느 범위와 세기의 방사선치료를 할 지 결정하게 된다. 이 결정은 수십 년간 전세계적으로 시행된 임상연구 결과들을 근거로 권위 있는 학회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루어 지고 있으며, 현재까지는 이것이 가장 과학적이고 최선의 진료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어디까지나 통계적인 분석에 따른 확률에 기반한 것으로서 어느 치료법이 70%의 암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더라도, 내 진료실에 들어온 특정 환자가 그 70%에 속하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임상의사들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가이드라인기반 치료법의 맹점에 대해 깊이 고민해 왔으며,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용어가 아닌 ‘정밀의학’이 각광받게 된 것은 이러한 고민들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오가노이드를 이용하면 해당 환자에서 인공장기에 실험적으로 여러 치료들을 시행해보고 그 중에서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오가노이드는 정밀의학을 구현하기 위한 최적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장암 환자에서 방사선치료를 시행하기 전 내시경에서 얻어진 환자조직을 배양하여 오가노이드를 제작하고 여기에 방사선을 조사하여 오가노이드 사멸 정도를 측정하면, 환자에게 어느 정도 세기의 방사선을 조사해야 치료 효과가 있을 지 예측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서, 방사선치료의 치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후보물질들을 오가노이드에 투여한 뒤 방사선을 조사함으로써 새로운 방사선 치료 감수성 향상 약물을 개발할 수 있다. 반대로, 암환자의 방사선 치료 시에 수반되는 정상조직의 손상으로 인한 피폭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물질을 찾아내는 데에도 오가노이드가 활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연구들은 실제 사람에게 임상시험을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불가능하거나 극히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인데, 오가노이드를 활용한 선행연구를 한다면 여기서 선정된 물질에 대해 임상시험을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방사선 치료반응을 예측하여 치료 프로토콜을 최적화하고 방사선치료의 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연구에 오가노이드가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오가노이드 연구의 미래
물론, 현재 기술로서는 오가노이드의 한계점도 분명하다. 아직까지 모든 인체 장기에 대해 장기 유사체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고, 형성된 유사체와 실제 장기 간 일치도 역시 좀 더 향상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이는 단일 장기만을 배양해서는 장기 주위 미세환경과 면역세포 등 실제 인체 내에서 역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생체활동을 모사할 수 없는 데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에는 여러 종류의 오가노이드들을 관류시스템으로 연결하여 인체 장기들 간의 영향까지 모사하고자 하는 생체모방 인체 침(Body-on-a-chip)이 연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가노이드의 배양환경이 되는 기질에서 어떤 성장인자와 신호전달 물질들이 어느 농도로 포함되고 시간에 따라 변화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엄청나게 복잡한 문제들이 남아있다. 기술적인 문제 외에도 특히 신경계 오가노이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뇌 오가노이드가 의식을 갖게 되었을 때 이것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도 많은 논란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제한들에도 불구하고 오가노이드는 정밀의학 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핵심기술이기에, 이를 활용하면 방사선의학이 한 단계 도약할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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