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생의 과학레시피
2018년 09월호 와셋(WASET)의 치명적인 유혹 | 김정영(선임연구원,한국원자력의학원) | 2018-0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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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보도 전문 언론사인 ‘뉴스타파’는 < ‘가짜 학문’ 제조공장의 비밀, 2018년 7월 19일 >을 인터넷에서 방영했다. 이 방송의 주요한 내용은 국제학술단체로 알려진 ‘와셋(WASET,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의 실체와 그것에 참여한 국내 연구자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한마디로, 와셋(WASERT)은 우리 사회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학술단체이며, 그 안에 아주 작은 학술적 가치조차도 없었다. 그러고 보면, X-선생도 연구를 시작 이래 지금까지 와셋(WASET) 이라는 학술단체를 들어본 적도, 행여나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었다. 이것은 주변 동료 과학자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와셋(WASET)은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들어와 인문학부터 공학까지 다방면의 전문 학술단체로 둔갑하여 활약해 왔을까. 위키피니아(WIKIPEDIA)에서 와셋(WASET)을 검색해 보면, 와셋(WASET)은 터키에 본사를 두고 2007년도에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위키피니아에서는 와셋(WASET)을 ‘predatory publisher(약탈적 출판사)’로 소개하고 있으며, 같은 날 하나의 회의 장소에서 수백 개의 회의가 동시에 개최되는 것으로, 매우 비현실적인 학회로 알려져 있다. 특히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은 이미 2015년에 와셋(WASET)을 사기 행각으로 권고했다고 쓰여 있다. 이와 같이 국제학술학회 행사를 빌미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 단체는 와셋(WASET)뿐만 아니라, OMICS International, IOSR Journals, Science Domain 등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근래 들어 X-선생의 메일함에도 연구 분야와 관련 없는 이름 모를 학회들에서 수많은(평균 하루 10건 정도) 학회 참석 독려나 초청 강의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주최하는 학회는 심각할 정도 많이 연락이 오는 실정이다. 결국 우리가 메일함으로 낮 뜨겁게 접하는 도박이나 성(Sex) 상품 관련 스팸 메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매일 학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뉴스타파’ 보도팀이 ‘SCIgen’ 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가짜 학술논문을 만들고 가짜 연구자를 행사하며, 와셋(WASET) 학술대회에 선정되어 참가하는 장면은 그 학술대회의 수준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가를 직접적으로 말해 준다(뉴스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5WUgDNiEzNg&t=829s).
< (좌) WASET 및 (우) OMICS 홈페이지 >
위의 ‘뉴스타파’ 방송에서 인터뷰한 학생이나 교수들은 인터넷을 통해 와셋(WASET)의 존재를 알았다고 말했지만, 반대로 구글 검색에 의해 위키피디아에서 잠시만 읽어보면 쉽게 와셋(WASET)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역설도 생긴다. 그들이 말하는 진실은 어디인가 있겠지만, ‘뉴스타파’의 보도로부터 와셋(WASET) 참가자들의 참가 이유는 2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첫째는 연구 실적이고, 둘째는 해외여행인 것이다. 물론 그 가짜 학회에 참석한 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더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와셋(WASET)이 유혹하는 점을 감안하면 위의 두 가지 추측은 높은 신뢰성을 얻는다. 특히 와셋(WASET)의 허접한 국제학술행사 참석보다도 더 문제인 것은 학술논문에 있다. 대개 학술행사 참가는 현재 정부에 의한 연구과제 수주나 교수 임용 등에서 주요한 성과물을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학술논문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있다. 어떤 연구자가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연구과제를 경쟁 평가에 의해 수주하는 (현재)방식에서 학술논문(특히 국제학술논문)은 매우 중요한 지표(점수)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연구과제를 수주하여 수행하는 결과물로도 학술논문은 주요하게 사용된다. 보다 더 나아가 그 학술논문은 교수나 연구원의 임용이나 승진 등에도 활용됨으로, 이것은 학술대회 참석 이상의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으며, 학계 심사의 공정성을 크게 훼손하는 행위이다.
물론 와셋(WASET)와 같은 학술대회에 1번은 모르고 참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복 참석하는 연구자들은 같은 연구자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여기에는 어떠한 변명과 이유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옥석도 가리지 못한다면, 과제 연구책임자나 교수 등의 역량이 미흡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때문이다. X-선생은 ‘뉴스타파’에서 촬영된 와셋(WASET)의 주최한 학회를 보고 매우 놀랐다. 인문학부터 공학까지 같이 섞어서 일정한 구분 없이 하나의 강의실에서 발표하고, 그 강의실(발표환경)은 너무 열악하고, 심지어 해당 전문가들조차 없으며, 발표도 참석하는 학자들도 많았다. 여기서 진정 학술적 토론을 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떤 연구자가 학술대회 참석하는 목적은 단지 학회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제 학술대회 참석의 진정한 의미는 국제 언어로 자신의 연구주제, 동기나 결과를 정리해서 논리적으로 말하고, 다른 국제적인 전문가들과 토론하며 새로운 지식 또는 발견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학문이나 기술 등에 보탬이 되기에 지원하는 것인데, 와셋(WASET)은 그 어떠한 국가적 의미나 경제적 이익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타파’와 인터뷰한 연구자분들은 국내 학술대회보다 더 좋다고 변명들을 하신다. 안타깝게도 그 어떤 국내 학술대회보다 와셋(WASET)의 학술대회는 허접하기 그지없다. 국내 학술대회는 우리 언어로 이야기하는 강점으로 심도 있는 이야기를 신속하게 할 수 있으며, 우리 학문적 정서를 살린 유머로 기술교류가 오고 간다. 특히 최근 학계는 활발한 토론 분위기의 정착으로 인해 국내 학술대회는 그 가치를 향상시키고 있다. 또한 동남아시아, 아랍, 인도 등의 많은 학생들이 국내에서 연구자 길을 걸으면서, 우리 학회들도 영어발표의 기회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렇듯 X-선생은 와셋(WASET) 참가자들의 변명이 자칫 국내 학술대회를 일반인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줄까봐 걱정이 된다.
와셋(WASET)에 참석한 국내 연구자들은 전년도 230명을 고려할 때 2014년도에 1202명, 2015년도에 1638명), 2016년도에 1806명, 2017년도에 1612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올해도 벌써 611명이 참가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국제학술대회 참석을 비중 있는 결과물로 수용되는 2014년부터 뚜렷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아울러 참가자들의 소속은 서울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강릉원주대학교, 경북대학교, 전북대학교, 한양대학교, 세종대학교, 부산대학교, 고려대학교 순인데, 이것은 대체적으로 전체 연구비의 규모와 비례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밖에도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의 발표 자료를 보면, 와셋(WASET)과 유사한 가짜 학술단체인 오믹스(OMICS)에 참가한 연구자들도 조사되었으며, 울산대학교가 5명, 삼성서울병원이 2명, 경희대(국제캠퍼스)가 3명, KAIST가 2명, 동국대(경주캠퍼스)가 1명으로 집계되었다. 특히 이 번 와셋(WASET)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건들 중에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이 와셋(WASET)에서 최우수발표상 받은 교수를 홍보한 일도 있었다. 물론 와셋(WASET)은 최우수발표상을 아무런 검토 없이 그냥 주는 것으로 ‘뉴스타파’ 취재결과로 알려졌다.
와셋(WASET)은 각 나라별 정부과제에서 수행 중인 연구과제들의 양적 결과물을 표적으로 한 사기 집단이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큰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 번 ‘뉴스타파’의 보도 또한 독일 언론의 제보 및 국제협업으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기 학술단체의 등장은 기본적으로 연구과제가 국제학술대회발표나 학술지 게제에 높은 점수를 준다는 점에서 시작되었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연구자들의 마음을 적절하게 읽어 그들의 도덕성에게 면제부를 주게 하였다.
기본적으로 모든 학술지는 동료 평가 제도를 가지고 있다. 가령, 내가 연구한 내용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평가나 지적을 받고 채택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마땅한 대안은 아직까지는 없다). 특히 동일한 연구과제 가진 두 경쟁 연구자가 서로 평가를 하게 될 경우, 상대 연구자의 결과물을 평가 절하를 할 수 있다. 또한 학회(학술지를 보유한)의 높은 지위를 가진 연구자는 경쟁 연구자의 성과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전문적인 연구영역은 제3자의 중재 개입도 매우 어렵다). 이를 보여 주는 재밌는 증거는 노벨상을 받은 연구자들이 주요 학술대회나 학술논문에서 반드시 배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우리나라 학자들 중에 노벨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언론이 알지 못하는 무명의 학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
또한 노벨상을 받을만한 혁신적이고 참신한 연구는 기존의 연구그룹(패러다임, 동료 경쟁연구자, 또는 학회)로부터 배척당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와셋(WASET)과 같은 학술대회나 학술지가 정당화될 수 없으며, 또한 교육적 측면에서 학생(또는 연구생)을 핑계로 가짜 학술대회가 더욱더 정당화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 한국연구재단의 연구과제시스템은 높은 수준으로 선정 및 관리가 되고 있으며, 그 시스템도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운영하거나 이용하는 연구자들의 도덕성은 그 시스템을 너무나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 번 와셋(WASET) 사건에서 우리 정부와 학계는 몇 가지 교훈을 반드시 얻어야 한다. 첫째, 국제학술대회 및 학술지의 우대하는, 둘째, 연구내용 기반의 질적 평가를 우대하는, 셋째, 학술대회 및 학술지 관리(참고, 가이드라인)시스템에 대한 제고하는, 넷째, 국내학회의 위상을 높이는, 다섯째, 편견 없는 동료 평가 제도를 도입(예를 들어 사심(또는 편파)이 있는 판정에 대한 평가자가 이의제기를 할 수 있고, 불합리한 판정 및 이의제기를 많이 받은 평가자는 퇴출)하는 학계 관리시스템의 변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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