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생의 과학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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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월드컵, 그 안에서 발견한 과학철학김정영(선임연구원,한국원자력의학원)2018-07-12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라는 TV 프로그램(2018년 7월 5일 방송)에서 축구선수 차범근과 하석주의 눈물어린 감동의 포옹이 있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 장면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대한민국 축구팀은 차범근 감독을 필두로 멕시코, 벨기에, 네덜란드와 한조를 이루며 경기를 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예선전을 너무나 잘 했던 축구팀의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고 언론도 월드컵 16강 진출 가능성을 집중보도했을 때였다.


 

  첫 경기, 한국과 멕시코에서 하석주는 너무나 멋진 왼발 프리킥으로 첫 골을 장식했고, 온 국민은 TV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몇 분도 안 되어 하석주는 당시 월드컵에 처음으로 도입된 ‘위험한 백태클(공을 가진 선수의 뒤편에서 태클이 들어가는 경우)은 퇴장 시킨다’는 규칙에 적용되어 심판에 의해 퇴장 당했다. 이내 한국팀은 수적 열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1-3대의 점수로 멕시코에서 패배를 하게 되었다. 온 국민들과 언론들은 하석주의 성급한 행동에 대해 맹비난을 했고, 왼발의 달인 하석주는 우리의 기억에서 그렇게 잊어지게 되었다.

  그 뒤 한국팀은 네덜란드에게 0-5로 무기력하게 패배하게 되었고, 즉각 축구협회는 월드컵 경기가 끝나지 않은 채 차범근 감독을 해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차범근 감독은 마지막 게임을 남겨 둔 채 귀국을 하게 되었고, 당시 차범근 감독 경질은 우리에게 충격, 각종 의문, 그리고 동정을 가졌지만 악화된 국민 여론을 축구 협회는 빠르게 수습하고 싶어 했다. 여기에 우리나라 내에서 차범근 감독의 무능함과 잘못된 작전에 대해 각종 비판들이 이어졌고, 하석주 선수와 세계적인 축구선수(차범근 선수의 그 당시의 경기를 보면 호나우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이자 감독이었던 차범근은 우리 축구 역사에서 잠시 사라지게 된다. 감독의 부재 속에 한국팀은 벨기에를 상대로 투혼의 경기를 펼쳐 1-1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많은 아쉬움을 남긴 체 마감하였다.

 

  다시 돌아온 2018년 하석주는 TV 프로그램에 나와 “98년도 트라우마가 굉장히 컸다. 감독님한테 정말 죄송해서 무릎 꿇고라도 사죄 들이고 싶은데 앞에 나타나질 못했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1998년 이후 국민들로부터 받았던 비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책하며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저는 비판받아도 되는데 감독님은 그때 그 일이 아니었으면 대표 팀 감독하고 계셨을 것”이라고 미안한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았고 지난 20년간 차범근 감독을 만나지 못하고 피했던 이유를 말했다. 그는 국가대표로 나가 단 1번의 경기로 20년간 우리들로부터 받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X-선생도 미안했다). 그리고 20년만에 만난 차범근 감독은 그런 하석주를 따뜻하게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왜 이렇게 마음에 담고 사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축구하다 하루 이틀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그 당시 경기를 보며, 열렬히 응원했던 X-선생은 두 사람의 뒤늦은 포옹을 보며 월드컵 경기 그 이상의 무언가를 남겼다. 아니,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뜨거운 감정이 북받쳤다. 우리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허용한 김민우 선수를 비롯한 특정 선수들을 언급하여 거침없는 비난을 했다. 특히 SNS를 통한 비난은 1998년에 하석주 선수가 혼자 감당했던 패배감보다 모질었다. 그저 경기였을 뿐인데, 이기고 싶어서 열심히 뛰다 보면 생기는 일인데, 내일 없는 사람들처럼 그들을 비난하고 조롱한 것일까.

 

  얼마 뒤 세계 랭킹 1위인 독일을 한국팀은 멋지게 2-0으로 이겼다. 비록 16강 진출을 못했지만, 우리 선수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정말로 최선을 다했으며 혼신의 힘으로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들은 경기 후 마치 차범근 감독과 하석주 선수처럼 하염없이 서로를 포옹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처럼 최선을 다한 이들에게 위로와 변명을 할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분명히 우리는 실패 과정에서 희망을 보았고, (16강 진출보다 더 가치가 있는) 축구가 보여주는 스포츠 감동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사실 1998년도나, 20년이 지난 2018년에 한국 축구팀 혼자만 갑자기 성장할 리가 없다. 월드컵에 출전하는 모든 국가의 대표팀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훈련을 받고 성장하며 많은 준비를 통해 게임에 나온다. 그래서 공이 둥글다는 표현이 있는 것이고, 우리가 바라는 방식으로 항상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승패와 관계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최선을 다했을 때, 우리는 박수를 쳐주고 격려하고 희망을 발견하고, 내 삶의 위로를 받는 것이다.

 

  X-선생이 밤새워 본 러시아 월드컵은 공교롭게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데자뷰 시키면서, 동시에 우리 과학계가 추구하는 잘못된 성과(노벨상, 네이처, 사이언스, 판매, 기업화 등) 중심주의를 데자뷰 시킨다. 좋은 학술지에 게재되지 않으면 실패한 연구일까. 과학을 보다 즐겁게 할 수는 없을까. 실패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면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성과가 꼭 순위로 보여 져야 인정되는 걸까. 기업이 원하는 것이 과학이 가야될 방향일까. 어느새 연구소의 성과물 평가시즌이 지난 자리에, 과학자들의 웃음은 장마철과 달리 메말라가기만 한다. 그 안에서 과학자들은 각자의 성과를 뺏기지 않기 위해 협력은 인색하기만 하다. 매해 과제당 2-3번씩 직접이든 간접이든 평가받는 우리 과학계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달리는 말에 계속 채찍을 가하는 구조에서 과학계는 실패 없이 메달을 따는 연구에 집중되어 있다.

 

  새로운 도전을 하던 과학자 또는 연구그룹이 실패하면, 수차례의 감사를 통해 그 팀은 자연스럽게 해산이 되고, 그 뒤에 그들의 기회는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성공만 하는 연구를 해야 한다. 이 말은 즉, 과학계는 항상 이기는 경기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기력이 약한 팀들만을 상대로 경기를 해 우승실적만 쌓는 일이 반복되는 셈이다. 그래서 월드컵 같은 무대에서 선수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추릴 수밖에 없다. 강팀을 상대로 지더라도 최선을 다해 멋지게 싸운 선수에게 메달이 없더라도 갈채가 당연히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전의 욕망을 더 주어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실패를 두려워하는 과학정책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왔다. 그리고 그 실패만 보는 심사방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과학계가 이제 축구계의 성장통보다 더 낙후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X-선생은 차범근 감독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그리고 이 말은 나에게, 동료에게, 혹은 과학자를 꿈꾸는 모든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왜 이렇게 마음에 담고 사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과학을 하다보면 하루 이틀 일어나는 일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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