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생의 과학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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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는 과학자에 대한 변명한국원자력의학원 김정영박사2016-09-12

   

<자료: 조선비즈, 박건형 기자>

  

  최근 세간에 관심을 받는 뉴스 중에 화웨이, 삼성전자 고위임원 빼내 부사장으로 영입(연합뉴스, 2016.08.04.)’ 했다는 소식은 우리나라 경제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이 번 경쟁회사 간 이직은 두 가지의 놀라운 측면이 있다. 첫째는 삼성전자와 스마트폰 관련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는 중국기업 화웨이라는 것과, 둘째는 삼성전자의 중국시장 진출을 이끌었던 부사장이라는 점이 놀랍다. 물론 그가 오랫동안 노키아의 중국시장 영업을 하다가 삼성전자로 이직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거대한 중국 시장을 놓고 벌이는 스마트폰 전쟁이 클라이맥스로 다다르는 시점에서, 이 이직 사건은 우리 과학기술계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X-선생을 더욱더 놀랍게 한 것은, 어느새 중국이 스마트폰 시장 확장에서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국은 이미 과학기술 강대국으로의 인프라를 완벽하게 갖추어 가고 있다. 그들 앞에, 우리의 과학기술은 어디쯤 와있고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현대 과학기술은 일제 치하에 식민지정책에 따른 기술육성과 한국전쟁 이후 미국으로부터 도입된 자본과 기술이 혼합되면서, 전쟁 후 무너진 경제에서 비롯된 값싼 노동력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드물게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룬다. 당시 과학기술은 배고픔을 이겨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경제철학이었고, 개인을 넘어서 국가적 과제로 다루어졌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산업 인프라를 확장시키고, 고급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교에 이공계학과 급속하게 늘어나게 되었다. 이때 첨단기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특히 선진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과학자들은 대학과 산업체에 들어가 새로운 과학기술의 시대를 만들어갔다. 또한 전문 과학 분야별로 정부주도의 출연연구소들도 전략적으로 만들어갔다. 당시 우리나라 대학입시에서 상위권의 이과학생들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와 화학과에 입학했고, 이것은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인재라는 명예와 더불어 경제적 성공까지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88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 과학계는 의생명학이나 공학 쪽으로 급속하게 기울어지게 된다. 이것은 선진국에서 유행하는 응용연구의 트렌드이기도 했지만, 단기간 내에 경제적 성과가 가능한 기술들을 우리 정부가 새로운 성장모델로 삼았고, 이것에 부응하듯 과학기술은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보탬이 되었다. 물론 이 시대를 살아온 과학자들은 열악한 실험환경에 대한 아픔과 극복의 드라마를 가지고 있겠지만,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돌아가는 환경은 가지고 있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 대학들에서 석사나 박사학위만 받고 국내에 돌아와도 자신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실험 공간, 장비, 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대학에는 노벨상을 꿈꾸는 과학도들이 많았다. 그들은 언제가 선배들처럼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1997년에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로 인해 IMF로부터 경제주권을 빼앗기는 역사적인 아픔을 겪게 된다. 이 경제 한파는 과학계도 몰아쳐 국내 많은 과학자들이 직장을 잃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기술을 이용해 벤처기업을 만들기도 했지만, 아예 방향을 바꾸어 식품 프렌차이즈, 인터넷 유통사업 등과 같은 다른 길을 찾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이 때, 외국에서 공부한 경험을 가진 과학자들은 해외로 다시 눈을 돌려 해외 연구소로 취업했다. 이 암울한 시절, 대학 등록금은 급상승하고, 장학금 제도는 열악해지고, 입학 후 취업률은 급속히 하강하는 시점에, 많은 학생들은 대학원으로 유입되지만, 열악한 과학계의 처우를 이해하고 학위만 받고 취업하거나 외국으로 많이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아픈 사실이지만 과학을 하고 싶다면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 진리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또한 과학자는 더 이상 사회나 경제적 성공을 의미하지도 않게 되었다. 이때 X-선생이 몸담고 있던 화학계도 ‘3D 업종이라 하여 학생들이 기피하고, 그 뒤로 물리학과와 함께 학과 통폐합으로 몰려 대학원생 수는 급격히 줄어갔고, 기초연구는 고생만 하고 취업이 어렵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확산되었다.

 

  IMF 경제위기 이후 십년 뒤, 학회에 가면 외국인 대학원생이나 연구자가(인도 및 동남아시아 등) 많이 보였다. 이 숫자는 매년 늘어났고, 급기야 글로벌 대학을 표명하며 대학원 강의 언어가 영어로 바뀌었다. 단 한명의 외국인이 수업이 들어도, 그들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어로 강의를 해야 했다. 우리 과학도들이 선진국으로 가려면, 그 나라의 모국어를 배워서 가는 반면에,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학생들은 한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 결국 이것은 사소한 곳에서 많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각종 보고서 작성, 재료 주문 및 실험실 관리 등을 하며 연구를 병행하지만, 외국인 학생들은 연구만 하는 실험실 내 역차별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은 외국인 과학도를 자국으로 흡수하여 강력한 과학기술을 만드는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우리의 외국인 과학자 유치정책이 남긴 과학기술의 발전은 무엇일까. 혹시 스포츠에서 한 시즌의 우승을 위해서 단기적으로 도입되는 외국인 용병과 크게 다르지 않는 듯하다.

 

  한국에서 일자리가 없어 미국으로 취업한 이공계 박사가 7년 사이 86.6%가 증가하였고, 취업이 아닌 연구 부문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공계 한국인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문화일보, 장석범, 2016.05.17.). 반면에, 중국은 1990년대부터 파격적 혜택을 내걸고 해외 유학파를 대거 귀국시키는 연어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매년 해외 최우수 인재 100명을 유치하겠다는 중국과학원의 백인계획(百人計劃)’을 시작으로 천인계획(2008)’, ‘만인계획(2012)’이 잇따라 시행되었고, ‘천인계획에서 정착금을 포함하여 주택, 의료, 교육 등 12가지 파격적인 혜택을 주었다(조선일보, ‘줄줄새는 한국인재들’, 2016.08.17.). 이러한 정책은 중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비교적 유사한 환경에 놓인 이스라엘은 I-CORE(Israeil Centers of Research Exellence, http://www.i-core.org.il)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연구비, 정년보장, 독립연구 권한 등을 인공지능 등을 포함한 핵심기술을 지닌 외국의 자국 인재들의 귀국을 독려하고 있다. 물론 두 나라의 정책에 전제 조건은 자국에서 이미 활동하는 과학자들에게도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과학정책은 20세기초 미국에서 유행한 빅사이언스처럼 외형적 발달에 치우쳐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장비나 시설이 있더라도,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전문가가 육성되지 않는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결국, 과학강대국을 꿈꾸는 나라는 사람에게 투자를 하고 있고, 더 일찍 과학도에게 투자를 하고 있고, 그것은 자국을 넘어서 외국 과학도로부터 흡수하려는 투자도 병행되고 있다. 우리 과학계는 이미 비정규직 과학자들, 더 엄격히 말하면 장기적인 연구할 수 없는 과학자들이 넘쳐나고 있고, 그 모습을 보는 과학도들이 성장하며 장기적인 연구를 포기하는 기형적인 구조 안에 들어와 버렸다. IMF 경제위기 이후, 과학계는 경제적인 논리에 눌려서 많은 수의 과학도와 과학자를 잃어버렸고, 한국전쟁 이후 쌓아올린 기초연구도 많이 잃어버렸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명의 과학자가 가지는 경제적 효과는 무궁무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한명의 과학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가장 인간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과학계는 과학자들을 관리의 대상으로 여겨, 국내 출장 시 현지 상점 등의 영수증 첨부 의무화하고, 치킨 및 피자는 식비로 지출 금지하고, 밤새워 아침에 귀가한 연구자에게 근무지 이탈을 경고하며, 정규직 정원도 비정규직도 축소시키고, 연구소에 대해 고객서비스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여 반영하고 있다(조선비즈, 박건형, 2016.07.30.). 이 밖에도 전날 밤늦게 실험을 해도(복무점검으로) 아침에 좀 늦으면 지각 처리되고, 정부 공무원이나 국회의원들이 바뀔 때마다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하고, 연단위로 중간, 단계, 최종보고 등이 중첩되어 이루어지고,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각종 위원회를 거쳐 장비 구매의 시점을 놓치거나 과도한 스펙조정으로 실험의 성공 여부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물론 연구비를 가지고 위법한 행위를 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거기에 맞춰 처벌하고 퇴출을 시키면 되는데, 연구자 관리의 규칙은 도를 넘어가고 자정적인 정화능력까지 상실시키는 수준이다.

 

  과학은 기술이며, 동시에 철학이고, 우리의 미래이다. 그것을 연구하는 집단은 고학년의 전문직이며, 용광로 같은 자유로운 생각이 지배해야 한다. 때로는 숲과 나무 사이를 거닐며 아이디어를 고민해야 할 여유도 필요하다. 오랜 시간 연구하고 공부하여 얻은 과학자라는 지위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명예롭지 못하다면, 그 누가 되려 하겠는가. X-선생은 중국을 다시 본다. 그들은 이제 사람에게 투자하고 있다.(201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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