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생의 과학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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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과학자의 죽음한국원자력의학원 김정영 박사2016-08-12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셀 메타볼리즘(Cell Metabolism)’의 최신호(2016년 8월 9일)에는 이례적으로 ‘셀 메타볼리즘은 정철호를 기억한다.’라는 제목의 편집장 사설이 게재되어 X-선생의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니크라 에만부커스 편집장은 ‘정철호 교수의 헌신, 열정 그리고 열의에 헌사를 바친다. 그와 같이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그가 없다는 것을 깊이 느낀다’라고 말하며, ‘우리의 추모가 그의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이투데이’ 기사 참조) 故정철호 교수는 누구 길래, 학술지가 그를 기억해야 되는 것인가, 물론 그가 우리나라 과학자이기에 관심이 더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셀 메타볼리즘’은 별도의 부고 기사를 통해 지인들부터 작성된 故정철호 교수(캐나다 맥길대, 1974-2016)의 생애와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이한웅, 강현삼 교수의 지도로 2003년에 유전학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 연구활동 기간, 그는 mouse genetics를 좋아해서 유전공학적 쥐를 만드는 연구를 수행했다고 한다. 그는 학회에서 수지상 세포(나뭇가지처럼 뻗은 모양의 세포로서 포유류의 면역계를 구성하는 면역세포)의 개척자인 랄프 스타인먼 교수(미국 록펠러대, 2011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1943-2011)와 대화를 통해 수지상 세포 연구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랄프 스타인먼 교수의 박사 후 연구원으로 연구 활동했다.

 

  그 당시 랄프 스타인먼 교수는 수지상 세포를 이용하여 만성감염질환(예: HIV, 결핵 등)을 예방하고 암을 치료하는 백신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자신이 2007년 3월에 진행성 췌장암을 진단 받았고, 자신의 몸을 실험용 오브제로 삼아 수지상 세포를 이용한 췌장암 치료법을 연구하고자 했다. 마치 드라마 ‘허준’에서 유의태의 숭고한 해부처럼,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랄프 스타인먼 교수의 뜻에 공감하여 개인면역요법 프로토콜 설계에 참여하였으나, 그의 살신성인에 불구하고 수지상 세포의 종양치료 가능성을 보여주고 세상을 떠났다. 노벨위원회는 랄프 스타인먼 교수를 수상자로 결정했지만, 노벨상 수상자 명단 발표를 3일 앞두고 사망한 랄프 스타인먼 교수는 노벨상 수상을 정작 알지 못했다(‘위키백과’ 참조). 그러나 그의 숭고한 희생은 인간이 암을 정복하는데 커다란 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국제적인 연구 프로젝트에 심취해 열정적으로 참여한 故정철호 교수는 평소 ‘스타인먼 교수의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자’라는 그의 신조처럼 랄프 스타인먼 교수의 임종까지 함께 했다.(‘연합뉴스’ 기사 참조) 이러한 故정철호 교수를 회고하는 니크라 에만부커스 편집장은 과학자로서 그의 열정과 신뢰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 이렇게 뛰어난 연구역량을 보여준 故정철호 교수는 자신이 주요하게 활동하는 캐나다와 우리나라 연구그룹의 가교역할을 하며, 국제적 협업도 추진했었다. 그가 죽기 직전, 지난 5월 ‘셀 메타볼리즘’에 게재 승인인 논문(Indoleamine 2,3-Dioxygenase-Expressing Aortic Plasmacytoid Dendritic Cells Protect against Atherosclerosis by Induction of Regulatory T Cells; 수지상 세포의 동맥경화 억제에 관한 연구)에도 29명의 우리나라와 캐나다 연구자들이 훌륭한 협업의 성과가 고스란히 남아져 있다. 이 논문은 그가 처음으로 연구책임자가 된 뒤에 첫 번째 논문이자 뛰어난 성과였고, 아쉽게도 그의 마지막 논문이 되었다. 지난 4월 24일, 그는 집에서 과로로 인해 갑자기 쓰러졌고 과학자로서의 생을 마감하였다.(‘이투데이’ 기사 참조)

 

  요즈음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 금은동 메달을 따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의 소식도 들리고 감동을 느끼지만, X-선생은 값진 메달만큼 우리나라의 과학을 발전시킨 한 명의 세계적인 과학자에게 주목해 보았다. 그리고 그의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따라가 보았다. 우리 사회가 주목하지 않는 과학자의 삶에, ‘셀 메타볼리즘’의 편집자들은 잠시 그들의 편집 스타일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故정철호 교수의 삶을 애도하는데 지면을 아끼지 않은 것처럼, 우리 과학계도 그의 삶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과학이 스포츠처럼 대중성을 가지기에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지만(우리가 배우는 교과서는 매우 고전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더욱이 이름조차 생소한 수지상 세포 연구자와 그 연구를 이해하기란, 같은 과학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 없었던 과학적 결과가, 어떤 연구그룹의 결과가 우리의 삶을 급작스럽게 변화시켜 온 인류사를 보았을 때, 우리가 과학적 결과를 예술작품처럼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될 이유가 충분하다.

 

  우리 몸에서 면역세포의 일종인 수지상 세포가 하는 역할을 규명하고, 그 원리를 이용해 질병을 치유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활동 안에는, 물론 국가 및 기업에서 지원하는 연구비가 기본적으로 선행되지만, 故정철호 교수처럼 개인의 경제적 욕심을 넘어 인류애를 가진 과학 매니아가 되지 않고서는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매우 어렵다. 아울러 X-선생은 故정철호 교수의 삶을 반추하며 우리 사회를 들여 다 본다. 과연 우리 사회는 과학자의 열정과 헌신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최근 우리 정부의 과학정책은 경제적 관점에 많이 기울어져, 보다 많은 실용화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과학적 실용화는 과학사적으로 항상 기초 연구들의 양적 팽창에 의해 예외 없이 만들어져 왔다. 아이작 뉴턴의 재미난 수학 공식들이 인류의 현대 문명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 것처럼, 과학은 경제적 속성보다 태생적으로 철학이나 예술적 성격을 닮았는데, 우리의 과학정책은 충분한 과학자를 육성하기 전에 기업을 위한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연구환경은 더욱 열악해 지고 있다. 지난 5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발표한 '2015년 이공계 인력의 국내외 유출입 수지와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에서 취업해 한국을 떠난 박사 학위의 이공계 기술인력 수는 2013년 기준 8천931명으로, 2006년(5천396명)에 비해 65.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연합뉴스’ 기사 참조) 이러한 통계를 잘 설명해 주는 최근 설문조사가 브릭(생물학정보연구센터)에서 지난 7월 17일에 발표했는데, 연구자들은 국내 이공계 두뇌 유출이 심화하는 이유로 ‘연구의 독립성이 보장되기 어려워서(59%)’, ‘국내에 일자리가 부족해서(41%)’, ‘선진국보다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에(33%)’ 등을 꼽았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과학계는 무엇을 잃어버려 경쟁력이 상실되고 있는지 스스로 해답을 잘 알고 있으며, 남은 일은 얼마나 빨리 해결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인종과 국경을 넘어 존경받는 삶을 살다간 우리나라 과학자의 부고 기사에 대해 X-선생은 발길을 멈춘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과학자를 탄생시킬 수 있는 사회인가. 그리고 우리는 경제적 논리를 떠나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과학자를 존경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X-선생은 故정철호 교수의 부고 기사에 대해 같은 세대의 연구자로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그를 기억하며 그의 연구를 이어나가는 동료 과학자들을 보면서, 그에 대한 존경과 부러움을 동시에 가진다.

 

(2016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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