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생의 과학레시피
2016년 07월호 '미신과 과학의 공존' | 한국원자력의학원 김정영박사 | 2016-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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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OM & HYO)
최근에 구글 검색을 하다보면, ‘Korean superstitions(한국의 미신들)’에 관한 재밌는 인터넷 포스터를 발견할 수 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이해시키는, 미신에 관한 포스터는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유쾌한 통찰력이 엿보인다. X-선생은 이 포스터의 제작자가 누구인지 궁금하였고, 어렵지 않게 그들의 홈페이지가 domanhyo.com임을 확인했다. 그들은 이니셜로 ‘DOM & HYO’를 사용했고, 영어를 가르치러 한국에 온 외국인이 한국 여성과 사랑에 빠지면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을 즐겁게 웹툰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에 관심이 높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알리는 유용한 상품들을 제작하여 판매도 하고 있었다.
‘DOM & HYO’가 전하는 한국의 미신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숫자 4는 불운이나 죽음을 의미한다. 엘리베이터에서 4층을 F로 쓴다.’ 그렇다, X-선생이 연구하는 연구동에도 4층은 없고, 엘리베이터는 바로 5층으로 넘어간다. 사실상 5층이 4층인 셈이다. 생각해 보면 더욱 우스운 것이, 여기는 의학연구소이다. 우리 의학연구소에서 죽을 ‘사(死)’와 발음이 비슷한 숫자 4를 두려워했던 것일까(환자의 쾌유를 위한 기원). 숫자 4와 사고, 또는 불운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과학자가 있었을까(이그노벨상에서도 없었음). 우리는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숫자 4가 가진 죽음의 강력한 카르텔을 왜 거부하지 않았을까. 이것은 언어적 유사성이외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찾을 수 없다.
‘빨간색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쓰면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죽는다.’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데쓰노트(Death Note)’에서, 주인공은 죽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노트에 쓰면, 그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문화에는 이미 빨간색으로 쓴 이름은 영화와 같은 공상 없이 문화에 잔존하고 있다. 특정한 색과 죽음이라는 연결고리라... 혈액의 색이 붉은 이유는 적혈구가 가진 헤모글로빈 안에 철(Fe) 착물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것은 오히려 건강의 상징이 아닐는지. 과거 중국의 황제는 자신이 이름을 빨간색으로 즐겨 썼다고 생각하면, 생각의 차이가 크다 할 수 있다.
‘방문 닫고 선풍기을 틀고 자면 죽는다.’ 과거 뉴스에 여름철만 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공포의 사건이었다. 그런데 선풍기를 틀면서 자는 사람이 저체온증으로 죽는다는 뉴스에서, 혹시 놓쳤던 사실은 없었던 것일까. 유독 한국 사람만이 선풍기에 의한 저체온증으로 죽다는 점과 최근에는 선풍기에 의한 돌연사가 없는 것, 또한 에어컨은 밤새 틀고 자도 안 죽는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의학적 논리도 빈약해 보인다. 그래도 이러한 미신 때문에 국산 선풍기는 취침용 미풍(수면풍), 자연풍, 타이머 등의 다양한 기능을 탑재해 국제경쟁력을 갖추었으니, 과학 발전에 기여한 바도 있다 하겠다.
‘밤에 휘파람 불면 귀신이 온다.’ 오늘날 우리 문화에서 이 말은 그냥 어린 아이를 놀리는 소재 정도로 취급된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혼자 밤길을 걸을 때 이 말이 달리 들릴 수 있겠지만, 귀신의 청각 기능에 대한 어떠한 과학적 자료도 찾을 수 없었다. 이 밖에도 ‘신발을 선물하면 도망간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 ‘돼지꿈을 꾸면 돈복이 생긴다.’, ‘나비나 나방을 만지고 눈을 비비면 실명된다.’,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닭날개를 먹이면 바람난다.’, ‘아기 위로 뛰어넘으면 그 아기는 키가 많이 크지 못한다.’가 소개되고 있는데, 신발을 선물하면 도망간다 라는 말은 방어적인 연애관이 투영된 것처럼 보이고, 덕수궁 돌담길은 가정법원 근처에서 발생된 현상을 해석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돼지꿈은 프로이드가 해석한다면 좀 더 명쾌했지만, 사회적으로 재물을 얻거나 얻어 가는 사람들이 돼지꿈을 꾸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과학적일 것 같은 나비나 나방을 만지는 행위와 실명과의 상관성에 관한 유관 연구는 현재까지 찾을 수가 없고, 상식적으로 나쁘기는 해도 실명은 우연적인 원인이 많지 않을까. 닭날개를 먹으면 바람을 핀다는 형태적 행위와 언어적 유희가 섞인 말이 아닐까 싶고, 간접적으로 상대방에게 바람을 펴지 말라고 경고하는 시적 표현을 아닐런지. 마지막으로 아기 위를 넘는 것과 키의 상관관계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이처럼 ‘DOM & HYO’가 전하는 한국의 미신들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가 분명하다. 옛날부터 시작된 미신이 오늘까지 사라지는 않는 것은, 우리 삶이 외적인 변화이외 내적으로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반증이지 않을까. 이 밖에도 우리 사회에는 ‘혈액형과 성격(쉬운 이해?)’, ‘이름과 운명(부모의 희망?)’, ‘보양식과 정력(토테미즘?)’ 등에 대한 강력한 미신이 존재하며, 여기에 신종 미신들까지 더해지면서 빠른 과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그 명맥이 유지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와 같은 미신의 위력(대중을 이해시키는 능력)에 대해, X-선생의 생각은, 미신은 과학적 논리나 타당성보다 타인들과 함께 대화하기 쉽고 공감대를 빠르게 형성시킨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특히 그 사람의 혈액형과 성격은 상호 간의 과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과거 일본 패션잡지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 타인을 빠르게 이해하고, 반대로 자신을 가볍고 편안하게 소개하는 대화법으로 매우 유용하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데 재밌는 소개방식으로써 순기능도 있지만, 반대로 혈액형 안에 자신의 성격을 가두어 두는, 혹은 타인이 가두어 버리는 역기능도 크게 존재한다.
사실 혈액의 구성 물질은 약 55%의 혈장(수용액)과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으로 구성되며, 일반적인 혈액형 구분법은 항원-항체 반응에 따라 ABO식 혈액형으로 구분 짓는다. 이것은 혈액의 응고반응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수혈 시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한 유용한 정보가 되지만, 이 검사법의 원리 상 인간의 성격이나 생각(신경계 작용)을 추론할 수 없다. 그러므로 면역반응과 관련된 항원-항체반응로 어떤 사람의 성격을 말하는 것은, 자동차와 말이 생물학적으로 같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ABO식 혈액형 구분법과 성격을 연계하여 설명하는 방법의 최대 문제점은 타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만든다는 것이다.
미신은 그 사회의 문화를 나타내고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맹신은 문학적 다양성의 제한이나 경직된 사고로 이어져, 과학이 생활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역기능도 가지고 있다. 집단적 공감대로 형성된 미신이나 과학적 오류에 대해 과학적 검증을 시도하는 노력은, 새로운 과학의 문턱에서 많은 희생을 치러왔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창조론에서 진화론으로,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이어지는 과학사에 볼 수 있듯이. 어쩌면, 요즈음 우리 사회 곳곳에 과학적 논쟁을 수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더욱 팽배해져서, 미신이 강화되고 있는지 모른다. 토테미즘을 바탕으로 한 보양식과 정력에 대한 미신이 거의 다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우리 사회에 유교적 세계관을 넘어 성에 대한 담론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데 걸린 시간과 무관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는 좀 더 과학적 사고가 폭넓게 확장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과학적 논쟁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보다 많은 전문가 그룹이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 대중과 손쉽게 소통할 수 있으며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우리 교육계도 이제 고전적인 과학교과서를 버리고(주기율표를 외우는 것이 화학을 잘한다는 미신과 같은 교육방식 등), 현대 생활에 유용한 첨단 과학기술과 사고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시급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얼마 전에 타계한 앨빈 토플러(1928∼2016, 미래학자)은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만들어 낸 미신을 넘어 미래사회의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 멋진 충고이었다. 오늘날 구글신이나 네이버 지식인과 같은 우리에게 알려진 보편적 지식도, 우리는 미신이 아닌지 의심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합리적 지식과 진리를 찾아내고, 새로운 길을 만드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것이 우리가 미신의 시대에서 과학의 시대로 가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을 사랑하는 어느 외국인의 시선에 보인 우리들의 미신이 X-선생에게 달갑지만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미신을 하나둘씩 없애는, 우리 사회의 과학적 사고와 논쟁을 수용하는 문화는 단순히 과학계의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민주주의 발전과도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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