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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7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할 말 많은 기생충 한 많은 기생史를 지켜주는 ‘서민 교수’

    [2015-7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할 말 많은 기생충 한 많은 기생史를 지켜주는 ‘서민 교수’

우리는 못마땅한 이를 욕할 때 간혹 ‘이런 기생충 같은~’과 같은 말을 하곤 한다. 물론 모든 기생충이 유익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이로운 기생충 역시 적지 않다. 알레르기 중에 일부는 기생충으로 다스릴 수 있고, ‘예쁜꼬마선충’이라는 기생충은 암세포의 냄새를 받아 환자를 구별해 낼 수 있다. 이밖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기생충의 숨은 진실은 무궁무진하다. 본고에서는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서민 교수를 만나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 그리고 인간과 공생해야 할 기생충’에 대해 알아본다.

Q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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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기생충학과가 생긴 것은 1954년으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처음 만들어졌다. 그 후 연세대 의대, 고려대 (저희는 1999년에 생겨서 명함을 못내밉니다) 등에 기생충학과가 생기기 시작했고, 현재 30개 의과대학에서 50명의 교수가 활동 중이다. 이중 한명이 ‘기생충 박사’로 통하는 단국대학교 기생충학과 서민 교수다. 그는 스스로를 기생충의 억울함을 대변해 주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말한다. 유명 칼럼니스트인 서민 교수는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우리에게 더 친숙해진 인물이다. 
“사돈의 팔촌까지 따져 봐도 기생충 때문에 고생했다는 증언을 찾아보기는 힘들어요. 메르스, 독감 등과 같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지만, 기생충은 치료약도 잘 듣고, 힘도 약해서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없거든요” 
서민 교수가 기생충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의과대 2학년 시절, 기생충학 강의에서 본 ‘회충에 관한 10분짜리 다큐멘터리 동영상’ 때문이라고 한다. 별 감흥 없이 영상을 보던 동기들과 달리, 살기 위해 몸을 꼼지락 거리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기생충을 서민 교수가 기생충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의과대 2학년 시절, 기생충학 강의에서 본 ‘회충에 관한 10분짜리 다큐멘터리 동영상’ 때문이라고 한다. 별 감흥 없이 영상을 보던 동기들과 달리, 살기 위해 몸을 꼼지락 거리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기생충을 보면서, 서민 교수는 감동을 느꼈고 기생충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고 한다.
당시 방송반이였던 서 교수는 ‘킬리만자로의 회충’이란 대본을 쓰게 되는데, 회충들이 지구를 습격하면서 인간을 노예로 삼는다는 내용으로, 회충이 미인계도 쓰고, 사람과 사랑에도 빠진다는 그야말로 상상력이 폭발한 서민 교수다운 이야기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대본이 바로 서민 교수를 기생충학으로 인도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당시 스승이었던 홍성태 교수가 대본을 보고는 그에게 기생충 전공을 권유한 것이다. 이미 기생충과 사랑에 빠진 서민 교수는 주저 없이 기생충의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Q기생충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내 인생에서 ‘신의 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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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학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서민 교수는 다만 조교시절,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동기들에 비해 연구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 아주 잠깐 초라함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지 나지 않아, 서 교수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기생충학이라는 희소가치는 서민 교수의 네임벨류를 높이는 +α의 효과를 만들어낸 ‘신의 한수’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도 억울함은 있었다. 기생충학 전공을 권유받을 때 굳게 믿었던 세 가지가 거짓으로 밝혀진 것. 21세기에는 기생충의 시대가 온다며 자신을 유혹한 교수인 홍성태 교수의 예언(?)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첫 번째 억울함이고, 두 번째는 기생충학자는 대변(大便)을 만지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뒤늦게 알게 된 스승의 본 모습이었다고 한다.
“앞서 두 가지 가설은 100% 믿지는 않았지만 교수님에 대한 무한신뢰를 가진 순수한 학도였던 저는, 연구실을 지키라는 교수님의 당부를 어기고 갑작스레 찾아온 후배를 만나고 온 일로 불같이 화를 내시는 교수님을 것을 보고, ‘꾀려고 그동안 인자하셨던 건가?’하는 생각에 속았다는 마음이 들었죠”

Q시대상과 사회풍토까지 반영한 조선명탐정 서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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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년대 기생충학 연구가 ‘어떻게 하면 기생충을 박멸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있었다면, 현재의 기생충학 연구는 ‘인류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에 집중돼 있다. 서민 교수 역시 기생충의 ‘기생史’ 연구를 통해 인간과 기생충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다.
서민 교수의 기생충 연구에 대한 열정은 따라올 자가 없다. 산에 서식하는 초파리에서 감염되는 ‘동양안충’을 연구할 때는 ‘확실한 연구 결과’를 보기 위해 자신의 눈에 직접 기생충을 넣기도 했고, 논문의 신뢰성 검증을 위해 역사, 사회학, 글쓰기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또 다양한 의학을 적용해 기생충의 생사를 연구한 그는 날로 먹으면 위험한 기생충을 연구하기 위해 방사선 조사 등의 방사선의학도 적용한 바 있으며, ‘고래회충’과 같이 방사선에 내성이 높은 기생충을 연구해 해외학술지에 논문이 실린 적도 있다.
서민 교수의 일화 중에는 CSI를 능가하는 추리력으로 기생충의 과거사를 파헤친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9년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과 단국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팀은 350여 년 전 사망한 젊은 여인의 미라를 해포(解布)하던 중에 어린아이의 인골을 발견하고, 이 여인이 출산 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서민 교수는 다른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미라에서 채취한 체내물을 분석한 결과 폐흡충알 수천여 개를 발견되었어요. 간, 장 등지의 장기에서 고루 검출된 알의 분포와 규모를 토대로 적어도 100여 마리에 이르는 성충이 체내에 기생한 것으로 추정되었죠. 이토록 많은 폐흡층이 임산부에게 발견되었으니, 이 여인은 출산 중에 사망했다기보다는 기생충 감염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훨씬 커진 것입니다.”
폐흡충은 폐디스토마라고도 불리는 기생충으로 민물게(참게), 우렁, 가재 등을 날것으로 먹을 때 감염된다. 서민 교수의 의문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여인은 어떤 경로로 폐흡충에 감염되었을까?’
“조선시대 기록이나 구전을 보면 가재즙을 이용한 민간요법이 소개되고, 특히 임신 중 질병을 치료하려고 가재즙을 다량 마신 사설들을 들은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민물가재를 갈아 생즙으로 복용했기 때문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입니다.”
당시 발견된 미라가 손이 귀한 양반가문의 두 번째 부인이라는 점과 임산부에게 보양식으로 가재즙을 먹였다는 점에 서민 교수의 스토리텔링(Storytelling)까지 더해진 연구논문은 세간의 주목을 받았으며, 2012년 학술상까지 수상했다. 서민 교수가 ‘과학자들도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온다.

Q취미는 메모, 특기는 상상력, 그리고 늘 책을 곁에 두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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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중 ‘좋은 생각’이라도 났는지 수첩을 펴 메모를 하는 서민 교수. 오늘도 서울의 한 중학교에 강연이 있어서 천안에서 올라왔다고 한다. 그는 방송을 계기로 최근 2년간 강연 요청이 쇄도해 주말에는 주로 강의준비만 할 정도라고 한다. 그의 강연에는 ‘기생충’만 출현하는 것은 아니다. 기생충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간사회, 과학과 꿈, 진로 그리고 남녀관계에 이르기까지 그의 강연 주제는 다양하다. 서민 교수는 이러한 실력을 갖추게 된 배경을 ‘책과 글쓰기 지옥훈련’이라고 말한다.
“2000년에 개인적으로 운영할 홈페이지를 만들고 다양한 글을 담기 위해 하루에 2편씩 매일 글을 썼어요. 스스로 글쓰기 지옥훈련을 한 셈이죠.
그렇게 10년 넘게 지옥훈련을 하다 보니 글쓰기에 실력이 생기고 자신감도 붙었죠. 그러던 차에 경향신문에서 판을 벌려 줘 비밀의 방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게 되었고, 몇 천 명에서 몇 만 명까지 방문객이 늘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감은 불현 듯 떠오르기 일쑤다. 그렇기에 서민 교수의 손에는 늘 메모를 위한 수첩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철저한 준비정신으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도 갑자기 튀어나온 생각을 이야기로 엮어낼 수 있었다. 글쓰기 지옥훈련과 함께 오늘날의 서민 교수를 만든 또 하나의 습관은 ‘책읽기’다.
“20대 시절 나의 예정된 삶은 ‘저밖에 모르고 사회에 무관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 인생이 변한 것은 책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사회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사회 속으로 들어가면서 나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연 때마다 독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데요. 사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은 너무 책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Q남은 인생, 스마트 폰과 전쟁을 선포한 서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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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걸어 다니면서도, 화장실 갈 때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어요. 물론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지식을 얻는 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유식해 졌을지는 몰라도 책을 읽어야 사고가 넓어지고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데, 책을 읽지 않으니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위험한 것은 검증되지 않은 사이비지식이 범람하면서 ‘옳고 그름조차’도 혼동하고, 인터넷 속 정보가 맞는 정보라고 믿는 점이죠.”
문자서비스나 SNS로 소통하면서 우리는 눈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현실세계와 단절돼 인터넷 세상을 떠돌고 있는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에게 스마트 폰은 ‘충실한 애인’이 된다. 그러다보니 외로움을 느끼지도 않고, 결혼이나 이성친구에 대해서도 관심 없이 건조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서민 교수는 브레이크 없는 디지털 세상의 불편한 진실에 맞서기 위해 남은 인생을 ‘스마트 폰과 전쟁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 이를 주제로 한 강연과 집필에 집중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 서민 교수의 관심사는 ‘개’다. 4마리의 개를 키울 정도로 개에 대한 애정이 깊은 서민 교수는 내년 상반기 중으로 ‘서민의 개 좋음(가제)’이라는 책의 집필을 끝마칠 계획이라고 한다.

Q숨어 있는 ‘좋은 기생충’ 찾기를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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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지만, 암세포의 냄새를 맡는 ‘예쁜꼬마성충’과 암세포를 죽이는 ‘자연살해 세포(NK cell)’를 강하게 만드는 ‘고양이 원충’ 등을 비롯해 성장호르몬을 자극하는 기생충 등 인류의 삶을 이롭게 하는 기생충도 많다. 서민 교수는 이를 알리기 위해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서민의 기생충 열전’ 등 많은 책을 펴냈다. 그동안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기생충에 대한 상식과 뒷얘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그는 진정한 기생충 대변인인 것이다.
“기생충이 사라지면 각종 면역성 질환이나 알레르기 증상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기생충을 미워해 무조건 박멸하기 보다는 기생충을 잘 이용해 인류에게 보다 윤택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공생할 수 있도록 기생충에 아량을 베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기생충이 사라지면 각종 면역성 질환이나 알레르기 증상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니 기생충을 미워해 무조건 박멸하기 보다는 기생충을 잘 이용해 인류에게 보다 윤택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공생할 수 있도록 기생충에 아량을 베풀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의과대학에 처음으로 기생충학과가 생겼으며, 신설 초기에는 자연대학 생물학과 연구진들이 함께 기생충을 연구했으나, 지금은 기생충 연구의 대부분이 의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박멸 등으로 기생충이 줄어들면서 기생충 연구에 대한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해외 선진국은 자연대와 의대 교수진들이 함께 중장기적으로 기생충을 연구하는데, 우리나라는 의대에서조차 기생충학 전공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인류에게 이로운 기생충 연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기생충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 유도와 의대뿐만 아니라 자연대의 기생충 연구 참여도를 높여야 합니다.”
끝으로 그는 “방사선의학뿐만 아니라 모든 의사 및 학생 등 관계자들이 바쁜 것을 알지만, 자투리 시간이 나는 틈틈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소설 동의보감에 보면 의사를 육체의 병을 치료하는 소의’(小醫),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중의’(中醫), 사회나 국가를 치료하는 ‘대의’(大醫) 세 부류로 나누고 있다”며 “병을 잘 고치고, 수술 경험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의사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의사들이 대중들과 괴리감을 없애고 마음을 나눌 수 있을 때 의사가 건강한 사회 만들기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마음의 눈과 양식을 키울 수 있는 ‘책’에 대해 관심을 갖아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책읽기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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