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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호 세계 최초의 엑스선 자동차 충돌테스트 | 핵의학분과 세부편집장, 핵의학 과장 변병현 | 2024-0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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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인 2024년 3월 13일.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사는 자사가 세계 최초로 엑스선 촬영을 이용한 자동차 충돌테스트를 수행했다고 발표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뢴트겐이 엑스선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체(아내의 손) 사진을 촬영한 것이 1895년이고, 인류 최초로 기록된 자동차 충돌테스트는 1934년(미국 GM사)이니, 엑스선 촬영을 이용한 자동차 충돌테스트를 2024년에서야 세계 최초로 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늦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촬영하는 엑스레이는 그 에너지가 높지 않아서 두꺼운 철판으로 되어있는 자동차 속의 더미(충돌테스트 시에 사람 대신 집어넣는 인형)를 촬영하기 어렵다. 이런 제한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테스트에서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엑스레이보다 100배 이상의 높은 에너지의 엑스선을 낼 수 있는 선형가속기를 활용한 덕분이다.
고에너지 엑스선을 이용한 실시간 자동차 투과 동영상
선형가속기는 전자를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한 다음 기계 내의 표적에 충돌시켜서 갑자기 전자를 멈추게 함으로써, 전자가 갖고 있던 운동에너지가 엑스선으로 변환되어 방출되도록 하는 장치이다. 선형가속기는 높은 에너지의 엑스선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 방사선치료에 이용되기도 하고, 이 엑스선의 높은 투과력을 이용해서 컨테이너 화물의 보안 검색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메르세데스 벤츠사는 여기에 착안하여, 자동차 충돌테스트장 천장에 선형가속기를 설치하고 자동차 하부에 선형가속기에서 방출되는 엑스선 에너지를 전기신호로 바꾸어 주는 일종의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선형가속기에서 방출되는 엑스선은 에너지가 매우 높을 뿐 아니라, 그 방출간격이 매우 짧아서 이 카메라로 1초에 1,000장에 달하는 엑스선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충돌테스트 기간 동안 촬영한 엑스선 사진을 이용하면 아주 고해상도, 고프레임의 자동차 내부 투과 동영상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 충돌테스트, 그 너머
이 기술은 여러 면에서 기존의 충돌테스트의 한계점을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자동차가 장애물과 충돌할 때 속도, 질량, 충돌 부위에 따라 자동차의 어느 부위가 어떤 순서로 얼마만큼 손상을 받는 지를 아주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동영상 카메라와 각종 센서를 이용해서 차량의 손상 기전을 연구할 수 있었지만, 2만개에 달한다는 자동차 속 부품 각각의 손상 정도와 그 순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동차의 손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동차 안에 탑승한 승객인데, 충돌테스트에 이용되는 더미의 어느 부위가 자동차 어떤 부분에 의해 얼마나 손상되는지에 대한 아주 자세한 정보 또한 얻을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최근 들어 더욱 강화되고 있는 보행자 안전과 관련해서도 자동차 설계와 주행특성에 따라 보행자에게 가해지는 충격을 보다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술은 자동차 충돌테스트 말고도 다양한 분야에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예컨데 자전거 사고나 각종 낙상 사고, 운동경기 중의 부상을 더미를 통해 시뮬레이션하고, 각종 보호장비와 안전장치를 개발하고 평가하는 데에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고가의 장비가 외력에 의해 손상되는 기전을 아주 상세하게 분석하여 이를 최소화하는 설계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지진에 의해 건물구조가 변형되는 정도를 파악하는 데에도 아주 효과적일 수 있다. 뢴트켄이 아내의 손을 엑스선으로 촬영한지 벌써 130여년이 지났지만, 방사선이 활용될 수 있는 분야는 아직도 무궁무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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