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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2월호
라디오지노믹스 - 겸손과 융합
핵의학분과 세부편집장, 핵의학 과장 변병현2023-02-06

  과학의 발달사는 인류가 어떤 것을 모르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뉴턴 이후 천체물리학에 자신감을 얻은 과학자들은 마침내 영국 과학자단체의 최고 권위자가 “몇 가지 [사소한] 문제들만 해결하면 인류는 우주의 원리를 완벽하게 파악하게 된다”고 선언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허블망원경이 보여준 우주 가속팽창이나 양자역학의 대두로 인해 모든 것들이 미궁속으로 빠져버리게 된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인류가 알고 있는 우주 안의 물질은 아직 5%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를 다시 한번 겸손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수 천년 간 우주를 연구하면서 알아낸 것은 우주의 95%가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95%는 27%의 암흑물질과 68%의 암흑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름에 암흑이 들어간다고 해서 ‘검다’는 성질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정체를 모른다’는 의미의 암흑이니 아예 무엇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대략적으로 알려진 것은 암흑물질은 질량이 있고 중력에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암흑에너지는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빈 공간에서 우주를 밀어내는 것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정도이다.

 

유전자와 후생유전학

  유전자를 발견한 것은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들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은 예로부터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 유전자는 답을 주었고, 의생명 및 농축수산 분야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런 유전학의 급속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있었는데, 예를 들어 동일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쌍둥이인데 누구는 암에 걸리고 누구는 평생 건강하게 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와 비슷하게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암컷 개미가 어떤 개체는 여왕개미가 되고 다른 개체는 일개미가 되는 매커니즘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이었다.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 것이 후생유전학(epigenetics)인데, 그 핵심은 유전자의 구조적 변화 없이도 주변 환경이나 상호작용으로 인해 단백질의 화학적 변화와 유전자 발현이 영향을 받고, 이것이 후손에게 유전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예컨데 2022년 학술지 네이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1,300여개의 대장암 환자 표본을 분석해 봤더니, 암세포에서 후생유전학적 변화가 광범위하게 발견되었고 이 변화들이 암세포가 빠르게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기존의 유전자 연구와 함께 후생유전학적 작용을 연구하는 것이 향후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아주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라디오지노믹스(Radiogenomics)

  X-ray나 CT, MRI, PET 등 다양한 영상검사를 통해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 경과를 평가하는 것은 현대의학의 필수과정이 된지 오래이다. “암환자의 종양이 치료 전에 몇 cm이었는데, 치료 후 몇 cm가 되었기 때문에 부분적인 치료반응이 있고, 따라서 기존 치료를 지속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일상적인 의료행위이다. 그런데, 이 영상검사의 진단 정확도라는 것이 완벽한 것이 아닌 것이, 어떤 환자는 치료 전 종양의 크기가 매우 커서 치료 반응이나 예후가 나쁠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치료 후 재발 없이 잘 유지되는 반면, 다른 환자는 종양의 크기가 아주 작았는데도 항암치료도 잘 안 듣고 치료 후 전신 전이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암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치료 전 촬영한 영상검사로 치료반응을 80% 이상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면 아주 쓸만한 검사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측이 어긋난 20%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의사들은 영상검사의 진단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 여러 영상검사를 조합해보기도 한다. 예컨데, 폐암환자에서는 부신이라는 장기의 전이가 비교적 자주 나타나는데 CT와 FDG PET에서 부신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조합하면 보다 정확하게 부신 전이여부를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단 정확도를 향상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라디오지노믹스이다. 이는 영상 자체도 픽셀단위의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육안분석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정보를 획득하면서, 동시에 이 결과를 유전자분석 정보와 조합하여 환자의 치료반응이나 예후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려는 접근법이다.

  영상검사이든 유전자검사이든 그 동안의 과학이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이 가진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서로 간의 경계를 넘고 융합하여 시너지를 내는 것이 라디오지노믹스의 매력이다. 여기에 다른 기능검사, 혈액검사, 소변검사 등 무엇이든 유용한 정보가 더해진다면 보다 아주 강력한 도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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