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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의학의 세대단절이 두렵다핵의학분과 세부편집장, 핵의학 과장 변병현2019-03-25

“인력감축으로 원가절감을 해야 살아남습니다”

 

l  일본 조선업의 세대단절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되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막강한 해군력이었다면, 이를 뒷받침해주던 것이 영국의 혁신적인 조선기술이었다. 강철판을 서로 포개서 접합부위에 구멍을 뚫고 철제 대못을 때려 박는 방식은, 당시로서 압도적으로 우수한 품질의 철제선박을 표준적인 방법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1950년대까지 영국이 주도하던 세계 조선업 판도를 바꾼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거대선박의 설계도에 맞추어 조각 낸 강철판을 용접으로 이어 붙이는 방식을 고안해내면서 1960년대부터 세계 조선업의 최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이 방법이 성공하려면 설계, 철판 절단, 용접 등의 모든 부분에서 숙련된 기술인력이 필수적이었는데, 일본 문화 특유의 장인정신과 맞아떨어지면서 일본의 조선업 부흥을 일으켰다.

 

    영원할 것 같았던 일본 조선산업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일본 조선업계는 1970년대 후반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조선 수주량이 3분의 1로 급감하자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였고, 관련된 협력업체들도 도산하거나 명맥만 유지하게 되었다. 일본 조선업계의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나름 합리적이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인력감축과 함께 그 동안 개발해온 설계표준을 개정하지 않고 똑같이 유지함으로써 선박 생산비용을 최소화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필요 없게 된 핵심설계인력과 고도의 숙련공들이 회사에서 내쳐지고 비교적 인건비가 저렴한 인력들 위주로 회사가 재편된 것이었다. 더 이상 핵심인력에 대한 수요가 없어지자 도쿄대학교는 1990년대 후반 조선학과를 폐지해버리게 되었고, 현재 일본 대학교들 중 남아있는 조선학과가 한 곳도 없는 상태이다. 일본 조선업계에서는 핵심기술인력이 더 이상 배출되지 않게 되었고, 퇴직한 숙련공들 중 상당수는 당시 새롭게 부상하던 한국 조선업체들로 이직하게 되어서 일본 조선산업기술의 세대단절이 역설적이게도 한국조선업에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그 후 기술우위와 가격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한 한국업체들은 2000년 전후부터 전세계 선박수요 싸이클 회복과 함께 세계 조선업 시장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회복된 세계 선박수요에도 불구하고 인력과 기술력에서 이미 뒤쳐진 일본 조선업체를 찾는 선주들은 많지 않았다. 현 시점에서 일본 조선업계에서 가장 많은 설계인력을 보유한 미쓰이 조선이 약 300명의 설계인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현대미포조선은 1,200명의 설계인력을 보유하고 있고 한국 중소조선사들의 설계인력이 평균 약 300명 수준이라고 한다.

 

l  방사선의학을 전공하려는 의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2019년 방사선의학 관련 전공의 지원자는 “몇 명이나 지원했나” 수준이 아니라 “지원자가 과연 있을까”를 고민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2019년도 전공의 모집에서 핵의학과는 전국에서 2명, 방사선과는 5명이 지원하는데 그쳤으니 산술적으로만 본다면 과의 장기적 존립이 위태롭다고 볼 수 있다(몇 년 전만해도 핵의학과 전공의 숫자가 한 연차에 20명에 달할 때가 있었다). 학회를 가봐도 조금은 어색하고 서툴지만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돋보이던 전공의들의 발표를 보는 것이 점점 드물어진다. 새로운 방사선의학 전공자들의 유입 없이 기존 연구자들의 노력만으로 학회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방사선의학을 전공하려는 의사가 없는 것일까?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핵의학과와 방사선종양학과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70%의 전공의들이 후배들에게 자신의 전공을 추천하지 않을 것이며 그 이유로는 “개원이 힘들고, 병원마다 수련환경이 천차만별이며, 전문의 취득 후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현직 전공의들의 분위기가 이러니 방사선의학을 전공할 후배들이 늘어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 보인다.

 

l  세대단절은 막아야 한다

 

    방사선의학이 결국 없어질 학문이라면 새로운 연구자들의 유입이 없는 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물론 현직에 있는 방사선의학 관련 의사들이야 당장 후배의사가 줄어들면, 혼자 너무나 많은 업무를 감당해야 할 수도 있고 그에 따라 연구나 자기발전에 쏟을 여력이 그만큼 줄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점차 방사선의학의 필요성이 없어진다면?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그 만큼의 의료인력이 필요한 분야로 자연스럽게 대체 공급 될 테니 자원배분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전 세계적으로 방사선의학은 계속해서 성장 중에 있다. 전세계 방사성의약품시장은 연 8%이상의 성장세를 보여서 2022년 시장규모가 8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전세계 방사선치료기기 시장은 연 6%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국내 방사선치료 건수는 연평균 6% 이상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바야흐로 맞춤치료와 정밀의학 시대가 도래하면서 방사선의학을 이용한 새로운 진단 치료법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전세계 방사선의학의 규모는 계속 커지는데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방사선의학을 발전시켜나갈 신규의학자들의 진입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조선산업몰락의 원인은 핵심기술인력의 세대단절에 있었다. 단기적 수익회복에 급급하다 보니, 수십 년에 걸쳐 숙련공들을 양성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새로운 기술인력 양성을 도외시하였던 것이다. 다행히도 학회에서는 후배 의사들이 어떻게 하면 방사선의학에 관심을 갖고 전공을 택하도록 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전공의가 부족한 과목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지원을 하는 제도도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방사선의학 전공자와 관련된 소수의 공무원들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다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방사선의학의 세대단절 위기를 알고 관심을 갖게 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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