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생의 과학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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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호
북으로 간 제주 감귤
김정영(선임연구원,한국원자력의학원)2018-11-20

  지난 11월 11∼12일 양일 간 제주 감귤 200톤이 2만개의 10Kg 상자에 담겨 북한으로 보내졌다. 이것은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송이버섯 2톤을 준 것에 대한 답례라고 청와대는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X-선생도 모처럼 냉장고에 넣어둔 제주 감귤을 꺼내 맛있게 먹었다. 세간에 떠도는 논란을 뒤로 하고, 우리나라의 제주 감귤은 역시 달리 표현할 필요 없이 달달하고 맛있다. 특히 늦가을의 추위가 느껴질 무렵, 감귤은 새콤한 맛과 향은 유달리 반갑고 깊은 겨울에 감귤은 초콜릿처럼 달기만 하다. 특히 추운 겨울에 드라마, 스포츠, 영화 등을 보며 먹는 감귤은 팝콘 그 이상이며, 팝콘을 먹으며 느끼는 건강에 대한 죄책감(죄의식)을 감귤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 북으로 가는 감귤 박스를 싣는 모습, 국방부 제공 >

 

  이과 전공자답게 남북한의 감귤-송이버섯 선물의 가격이 궁금해 졌다. 가끔 명절에 친척으로부터 받은 선물에 대한 답례를 고민할 때 인터넷에서 가격을 조사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감귤-송이버섯의 선물 가격이 어찌 궁금하지 아니할 수 있는가. 최근 제주 감귤은 10kg에 대략 2만원 전후로 인터넷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그러므로 북으로 간 감귤은 약 4억 원어치가 된다. 북한이 우리에게 준 송이버섯은 1kg에 대략 5(냉동)∼20(자연산)만원 전후로 인터넷에서 거래되고 있으니 약 1∼4억 원어치가 된다. 결국 우리나라의 제주 감귤은 북한 – 자연산이라면 - 송이버섯의 가격에 비슷하게 맞추어 보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감귤은 우리에게 건강식으로 익숙한 송이버섯과 달리 올 늦가을 북한 주민들에게 맛난 과일은 아닐 것이다. 요 근래 X-선생은 몽골 핵의학과 – 한 번도 귤을 먹어본 적이 없는 - 교육생들에게 제주 감귤을 선물해 준 적이 있었는데, 다들 특이한 맛이라는 평만 있었을 뿐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북한 주민들도 이와 비슷한 반응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우리 아들 녀석도 감귤은 즐기지 않았다가 몇 해 먹더니 요즈음 들어 몇 개씩 혼자 먹곤 한다. 어쨌든 북한 주민들이 제주 감귤의 참맛을 느꼈으면 하고, 훗날 제주 감귤들을 많이 사갔으면 하는 바램 이다.

 

  제주 감귤은 커피, 카카오, 향신료 등과 같이 착취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 제주에서만 나는 감귤은 임금에게 바치는 귀한 과일이었다. 지금도 제주시 목관아, 관덕정(보물 제322호)에 방문하면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간 감귤 기록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어차피 조선시대 제주 주민들에게는 감귤은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과일이었기 – 제주 관아에서 감귤 꽃이 필 때 꽃의 개수를 파악하고 나중에 감귤 수랑이 맞추어 봤다고 한다. - 때문에, 일부러 감귤 나무도 죽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제주는 4·3 사건과 같은 아프고 – 중앙 정부로부터 - 차별적인 역사들이 많은 곳이다. 그 관덕정 주변에 가면 정원 한 편에 제주 감귤나무들이 종류별로 자라고 있다.

 

< 제주목 관아 전경 및 감귤 나무 사진 >

 

  여기서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있는 온주밀감을 비롯해 20여종의 귤을 직접 볼 수 있다. 크기가 대추만한 귤부터 배만한 귤까지 정말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귤들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북으로 간 온주밀감은 언제쯤 재배되었을까. 1911년 홍로성당의 ‘타케 에밀레오’ 신부(프랑스 출신)가 일본에서 15그루를 도입한 것이 최초이며, 현재 제주 서귀포시 서흥동 204번지에 1그루가 남아 110년 동안 감귤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과거 일본 문헌들에서 재밌는 기록도 발견되는데, 일본의 ‘비후국사(肥後國使)’에서는 삼한으로부터 귤을 수입했다는 기록이, 또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에서는 신라시대 초기 제주(당시 ‘상세국(桑世國)’)로부터 귤을 수입했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우리나라는 이미 삼국시대 때 감귤의 재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제주 감귤은 이미 고려시대(11세기) 문헌에서도 왕의 진상품으로 공식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제주 감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의 교역상품이며, 옛날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품종들이 진화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에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 등과 같은 품종은 풍부한 비타민과 과일향을 가지고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 에틸렌의 화학구조(좌), 과일 저장조건(우) >

 

  하지만 감귤은 구입 후 빠르게 노화되어 물러지는 현상으로 맛이 변하거나 곰팡이가 피는 현상 등이 쉽게 마주하게 된다. - 북으로 간 제주 감귤도 걱정이다. - 이것은 과일의 노화를 촉진하는 ‘에틸렌’ 때문인데, 에틸렌(Ethylene)은 탄소가 2개가 이중결합을 하고 각각 양 끝에 수소가 2개씩 붙은 H2C=CH2의 화학구조를 지닌 매우 단순한 탄소화합물이다. 대개 이러한 화학구조를 지닌 탄소화합물은 물에 잘 녹지 않으며, 오일과 같은 용매에 잘 섞이는 특성이 있다. 또한 상온에서 액체 상태이기 보다 기체 상태로 존재한다. 한때 감귤의 색깔을 진하게 내기 위해 에틸렌을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에틸렌 가스(스프레이 형태로)가 많이 판매되기도 하였다(그래서 이 당시 감귤은 집에 오면 바로 무르게 되어 먹지 못하게 되어 소비자의 불만이 컸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소비자의 인식이 – 귤의 색깔이 맛과 관계없다는 - 바뀌면서 에틸렌의 사용량이 많이 줄었다. 그렇다, 감귤들을 모두 함께 두면 에틸렌은 각자의 것뿐만 아니라, 주변 감귤에서 발생하는 에틸렌도 영향을 받게 되어 노화가 더욱 빠르게 촉진된다. 감귤은 불행히도(어쩔 수 없이) 박스에 담겨서 오기 때문에, 감귤 박스를 열어 중간쯤 보면 이미 노화가 너무 촉진된 무른 감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에틸렌에 의한 노화 반응으로 인해 일부 소비자들은 유통업체의 관리소홀로 교환하기도 하는데, 사실 유통과정의 기술 한계로 인해 모두가 괜찮은 감귤 박스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소비자들이여, 지나친 항의는 하지 마시라!). 그러므로 감귤을 오래 보관하는 방법은 결국 노화를 막는 것이고, 에틸렌의 반응을 막거나 느리게 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그렇다, 감귤은 먹을 만큼 사가지고 집에 보관하는 것이 좋고, 만약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박스로 사왔다면 가능한 낮은 온도에서 분산하여 보관이 좋다. 그리고 밀폐된 것보다 햇볕이 들지 않는 통풍이 잘되는 환경에 보관하면 좋겠다. 보다 적극적으로 감귤을 물로 씻은 뒤 살짝 오일을 바르는 것도 좋은 예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X-선생은 위와 같은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냥 빨리 맛나게 먹고 예쁘게 까서 가족에게 주어 빠르게 소비한다. 어쩌면 감귤은 모두 함께 맛나게 먹는 것이 가장 좋은 보관법일 수도 있다. 북으로 간 감귤이 현재 남북한 휴전상태에서 다소 어색해 보일지라도, 같은 민족끼리 감귤을 맛나게 나누어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친구와 이웃에게 감귤을 선물하며 겨울나기를 준비하기 위해 건강을 기원하는 일은 우리의 오랜 미덕이 아니던가.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감귤이 우리 민족에 의해 선택적 진화를 했지만, 우리가 선택한 감귤의 품종이 인류를 즐겁게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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