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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호
미래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김정영(선임연구원, 한국원자력의학원)2017-03-20

미래 대통령님께

 

  2017310, 비선 농단으로 연루된 현직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탄핵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를 탄핵하는 과정에서 평화적인 촛불과 토론으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국가에게 전달했고, 우리가 만든 헌법과 정치적 절차에 따라 2016129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탄핵소추안은 헌법재판소에서 3개월 정도의 심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발휘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리더는 지난 3개월 동안 없었고, 지금은 형식상으로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과거와 달리 리더의 부재로 인한 혼돈을 겪지 않았고,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연구와 육아로 바쁘기만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민주주의 복원과 대통령 탄핵을 외친 국민들의 촛불집회에는 이미 리더가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여기에는 특정한 정당도 없었고, 정치인도 없었고, 시민단체도 없었으며, 삼삼오오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집회에 참석하여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의사를 알렸습니다. 어떻게 집회에 리더가 없는데 체계적이고 평화적인 수십만 명이 모인 집회가 가능한 것일까요. 마치 기네스북의 기록을 순식간에 갈아치우듯 새롭게 쓴 우리의 성숙한 민주주의 역사는 강력하고 독단적인 리더를 선호하는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리더의 모습을 앞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우리 과학계에도 촛불집회와 같은 성숙한 민주적 의식이 싹이 트기를 바라며,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에서 잘 언급되지 않는 과학계 이야기를 해 볼까 하여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우선 우리 과학계를 이끄는 커다란 두 가지 엔진이 있습니다. 첫째는 정책·경제적 엔진이고, 둘째는 인적 엔진입니다. 첫 번째 엔진은 크게 정부와 기업으로 나눌 수 있으며, 정부는 기업의 기술자원을 육성시켜 기업의 성장을 돋기도 하고, 성장한 기업은 세금으로 정부를 돕는 순환적 관계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는 직접적으로 출연연구소를 지원하여 국가의 필요하지만 기업이 하기 어려운 기술을(공공이익 목적이나 경제성이 없는 기술 등) 개발하고, 간접적으로 대학을 지원하여 기초기술을 육성시킵니다. 무엇보다 정부는 출연연구소, 대학, 기업 간에 기술 중개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기술의 교류와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키거나 성장하여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잘 만든 아이폰이 미국의 경제를 살리고 잘 만든 의약품이 스위스나 일본의 경제를 살리듯, 과학기술은 미래의 재원인 것입니다.

 

  과학계 정책·경제적 엔진이 가동하면서 에너지를 공급하면 본격적으로 작은 엔진들이 움직이는데, 이것이 바로 인적 엔진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 과학계에 핵심적인 인적 엔진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정부 관료이고, 두 번째는 연구과제 책임자입니다. 정부 관료들은 당신의 정책·경제적 엔진에 대해 이해도가 매우 높고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수립하며 그 결과까지 예측도 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의 전략에 따라 육성기술의 선택이나 공정한 경쟁을 통해 연구과제를 선택합니다. 물론 당신이나 당신의 정부 관료가 매우 뛰어난 업적이 있는 과학자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연구과제 책임자가 정부 관료를 통해 새로운 비전을 역제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의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매우 어려운 언어와 같아서 동료과학자끼리도 상대방의 연구내용을 파악하기가 힘든 경우가 있고, 이러한 관계를 잘 이용하는 사기꾼을 닮은 과학자도 나타나기도 합니다(그래도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연구과제 선정제도를 잘 받아들여 사기꾼을 잘 걸려내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디어가 뛰어난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정부에서 공고하는 주제별 연구과제에 지원하여 동료과학자들의 심사를 거쳐 선정되어야 합니다. 물론 어떤 연구주제가 매우 실용적이라면 기업들로부터 연구과제를 수주할 수도 있겠지요. 결국 과학자가 어느 길을 선택하든 연구과제의 선정은 연구비의 확보이고, 연구비는 자신을 제외한 연구원들을(대부분 학생이거나 비정규직 인력들) 모는 일과 연구를 수행할 재료비 등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이때 연구과제의 책임자를 연구책임자, 또는 PI 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PIPrincipal Investigator의 줄임말로 사용하게 되는데, PI는 과제의 시작과 진행부터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우선적으로 가지며, 이에 따라 반대급부적으로 막대한 권한도 지니게 된다.

 

  특히 선정된 연구과제의 책임자는 당신처럼 그 과제 내에서 모든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가지기 때문에, 그의 판단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PI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Project Leader (PL)에 더 근접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이것은 한국사회가 가지는 유교적 전통(생물학적 나이에 의한 서열, 남성중심의 세계관 등)과 군사문화(일제침략기, 군사독재정권 등)이 결합된 독특한 계급문화가 잔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선진국들과 대등한 첨단기술을 연구하는 과정 중에 기술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문화도 유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20년 전에 첨단기업들이 새로운 기술사업(TV, 자동차, 휴대폰 등)을 탄생시킬 때 늘 강조했던 것이 능력중심의 사회였던 것을 환기해 보십시오. 과학자들은 연구와 함께 태생적으로 진보적인 환경 안에 둘러싸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는 수십 년 안에 변하기는 힘들겠죠. 그 대표적 사례로, 2005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줄기세포 연구논문조작 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일명 황우석 사건을 둘러 싼 뉴스들을 복기해 보면, 그 개인에만 머무르지 않고 청와대 인사들(소위 황금박쥐’)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결국 이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 정부의 과학정책 전반을 흔들어 버렸고 국정운영의 신뢰도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제보자’(임순례 감독, 2014)를 꼭 보시기를 권유합니다. 영화를 보시면 소름이 돋을 만큼, 오늘날 과학계를 넘어 한국사회가 가지는 복합적인 문제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제가 말하고자 우리 과학계의 현실을 이해하시리라 생각되며, 계속 말을 이어나가겠습니다. 우리 과학계에서 PI는 기본적으로 연구과제를 함께 하는 동료과학자들과 토론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문화적 권위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연구과제의 성공적 목표달성을 위해 많은 토론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선진국에서 개최하는 학회나 연구미팅에 참여해 보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많은 토론은 책임의 분산과 더불어 참여 연구원들의 자존감이나 목표의식을 명확히 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 창출에도 밑거름이 됩니다. 이로 인해 PLPI가 되는 과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당신이 너무나 잘 알겠지만, 말이 많은 사람을 가벼운 사람으로 간주하거나 타인의 의견을 듣는 것에 대해 인색한 문화는 토론을 방해하는 요인 중에 하나가 됩니다. 또한 경제적 급성장에 만들어진 빨리 빨리문화는 심도 있는 토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책상에 앉아 질문 없는 수업에 익숙하다 보니, 자신의 발언이나 생각을 표현하는데 어려워합니다. 이렇듯 대통령이나 PI나 참 어렵지요.

 

  그렇다고 저는 PI의 고민이나 문제만을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정부 관료들의 문제도 생각보다 심각하네요. 과학자들의 의견이나 방향도 참조하기는 합니다만, 관료들은 자신이 맡은 영역이 잘되어 진급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단기간 성과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감히 기초연구나 다른 연구를 돕는 지원연구는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납니다. 그래서 당신의 관료들은 야생 같은 과학계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결국 이렇게 10년이 지나오니, 잘 나가는 과학자는 계속 잘 나가고, 아이디어만 있는 과학자는 아이디만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승자독식이죠, 동반성장은 경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만드는 과학기술도 필수적 요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느 날부터 당신의 정부 관료들과 대화가 잘 안되고 명령만 합니다. 선진국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과학기술은 대중성이(흥행) 떨어져 언급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들어간 연구비 대비 경제성 떨어지면 해당 주제로 연구는 못합니다. 공공성이라던가, 기술의 파급력이던가, 미래에 대한 투자는 말하기가 더 힘드네요.

 

  여기에 놀라운 이야기를 하나 더 말씀드리지요. 인적 엔진에 대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인적 엔진의 출발인 대학은 과학기술 전문인력들이 점점 줄어드는데, 이것은 취업률과 절대적으로 비례합니다. 대학원에서 박사까지 마치고(최소 5년에서 10년까지, 군대복무 포함) 기업이나 연구소에 가도 은퇴는 동일하게 합니다. 이제는 그 마저 일자리도 안보이네요(비정규직 증가조차 한계). 그만큼 사회적으로 기술개발이 줄여들고, 과학기술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가 감소하기 때문이겠지요. 지난 정부의 4대강 개선사업 같은 자금을 과학계에 투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제 그 빈자리에 인도나 동남아시아 온 학생들이 오지만, 그들은 기술을 배운 뒤 자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렇다고 국가출연연구소도 나은 상황이 아닙니다. 어렵게 출연연구소에 입사하면,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 Project Based System)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국 한마디로 연구과제를 수주하지 못하면 월급이 없어지고 연구도 할 수 없는 제도이며, 애석하게도 구제기능이 없습니다. TV에서 반영되는 가수선발 오디션프로그램과 똑같습니다. 떨어지면 바로 루저가 됩니다. 어쩌면 야생을 닮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해 보이는데, 그렇다고 모두가 스타 과학자는 될 수 없지 않습니까. 얼마 전 국감에서도 나왔지만, 이 제도는 의욕적인 과학자를 곧 앵벌이 과학자가 만들어 자존감을 떨어지게 합니다(그래서 좋은 동료과학자들이 선진국으로 많이 떠납니다). 우여곡절 끝에 연구과제로 선정되어도, 인건비를 지출하고, 소속기관에게 간접비(시설운영비) 주고 나면, 재료비가 없네요. 오늘날 출연연구소의 PI는 결국 앵벌이 과학자들PL이 되어 성공적인 연구과제의 달성보다 연구원들의 인건비와 기관의 운영비를 조달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PBS 제도의 끝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고갈된 무기력한 과학자들을 양산시키고, 결국 그 출연연구소를 폐쇄하는 쪽으로 결론이 납니다. 마치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한 때 문제가 되었던 다단계 영업방식과 닮았네요. 그런데 과거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은 바꿀 생각도 없네요. 왜 일까요. 과학자들이 말을 듣지 않을까봐서...

 

  오늘도 모든 과학자들은 저와 같은 고민을 하며 삽니다. 그리고 저도 어렵게 고심 끝에 탄핵의 분위기를 벗 삼아 용기 내어 편지를 써 내려 갑니다. 선진국들에서 개발되는 첨단기술은 갑자기 몇 년 연구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 과학계 건강한 연구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과학정책을 과학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하시는지요.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원은 없지만, 우리가 만든 자랑스러운 과학기술 국가가 있습니다. 다시 세운 민주주주의 훈풍이 제발 과학계에도 불어와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리며,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7320

X-선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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