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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장된 위험과 의심 앞에 놓인‘의료방사선’ 바르게 알고 현명한 선택이 필요

    2016년 02월호
    과장된 위험과 의심 앞에 놓인‘의료방사선’ 바르게 알고 현명한 선택이 필요

새로운 지식은 의심에서 싹튼다. 건전한 의심은 창조적이지만 고질적 의심은 병폐가 되니 지혜가 필요하다. 한 예가 의료방사선이 아닐까? “방사선은 유익과 유해 요인 모두를 가지고 있다. 종종 그 유해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위험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면서 혜택을 누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라고 말하는 한양대학교 원자력공학과 이재기 교수는 “유해보다 유익이 압도적인 의료방사선은 현명하게 사용하면 인류에게 큰 선물”이란다. 현명한 선택(Choosing Wisely)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 안전한 방사선 이용을 위한 ‘방사선방호’ 전문가 이재기 교수

한양대학교 원자력공학과 이재기 교수는 보건물리, 방사선계측, 방사선 차폐 등을 아우르는 방사선방호 분야 전문가로서 ‘방사선 위험 바로 알리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재기 교수는 “원전이나 의료 방사선이 안전한 삶을 바라는 사회에서 공생하려면 안전관리, 안전문화는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다. 분명한 위험 요인인 방사선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오해로 인한 과잉반응은 불필요한 피해를 유발하고 극단적인 경우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기 때문에 ‘방사선 위험의 실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원자력기술의 개발보다는 그 뒷면의 위험을 관리하는 쪽에서 헌신해 왔다. 평범한 원자력공학도였지만 1975년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입사하여 방사선 차폐분야를 연구에 종사하면서 방사선방호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원자력발전 시대를 맞아 원자력안전센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하 KINS)을 거치며 방사선안전관리 및 규제, 방사선 방호정책 등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재기 교수는 1993년 한양대학교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되었다.

“방사선방호는 방사선물리에서부터 방사선 피폭량 계측, 생물학적 작용과 보건영향, 방사성핵종의 환경거동, 방호철학과 논리, 사회심리와 반응까지 광범하여 항상 도전할 일이 남는다.”는 이재기 교수는 “그중에서도 KINS와 함께 수행한 ‘우리 국민의 방사선 피폭 실태’에 관한 연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국민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자연방사선, 의료방사선, 직무방사선 피폭을 받을까 하는 의심에서부터 출발한 이 연구는 7년 여간 연구 끝에 2005년 완성되었다. 기존에 없었던 수치화된 결과는 원자력계는 물론 의료계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이미 10년이 지났고 최근 의료방사선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KINS를 중심으로 보완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이 교수는 희망하고 있다.

한편 이재기 교수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2005년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위원으로 피선되어 현재 세 번째 임기 중이다. 방사선방호에 관한 기준과 지침을 개발하여 권고하는 국제 민간학술기구인 ICRP는 본위원회와 5개 전문위원회에서 80여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방사선방호에 대한 개념과 기준을 개발해 국제사회에 권고하는 것이 ICRP의 주요 업무”라고 말하는 이 교수는 “권고된 결과만 보던 과거와는 달리 그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나라에 권고내용을 효과적으로 파급할 수 있어 정책수립과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며 “현재 3개 전문위원회에 우리나라 전문가가 1명씩 포함돼 있는데, 앞으로는 모든 전문위원회에 우리나라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 방사선 위험 제대로 된 소통이 필요하다

의료계에 방사선 이용이 활발해 지면서 의료방사선 노출비율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진단 환자가 병원에서 받는 방사선량은 원전 등에서 방사선작업종사자가 직무로 피폭하는 방사선량의 100배 수준이다. 따라서 ICRP도 의료방사선 안전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어 현재 ICRP가 매년 개발하는 4~5건의 권고 중 40% 정도는 의료방사선과 관련된다. 최근 국내 의료계에서도 질병관리를 위해 의료방사선이 필요하지만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의료방사선은 매우 특수하다”고 말하는 이재기 교수는 암 치료는 암세포를 확실하게 죽여야 하기 때문에 높은 방사선량을 투여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어떻게 하면 주변의 정상조직을 최대한 보호할 것인가에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복부 CT를 한 번 촬영하면 웬만한 원전 방사선작업종사자가 몇 년 동안 받는 선량을 받는다. 그러나 그 피폭으로 인한 추후의 위험보다는 당장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정확히 진단하여 치료하는 것이 우선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CT촬영이 정당화된다. 중요한 것은 의사가 CT촬영과 같은 방사선의료절차를 처방할 때 ‘이 환자에게 이 절차가 꼭 필요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성의이다.”라고 그는 강조한다. 또 “의도한 임상정보를 얻되 어떻게 하면 환자선량을 줄일 수 있을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방사선에 더 민감한 소아과 환자에게는 보다 주의가 필요하다.”며 미국에서부터 불고 있는 ‘부드럽게 촬영(Image Gently)’ 활동을 소개한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임상의사를 도울 전문가인 의학물리사 제도가 우리나라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근래에 의료방사선 피폭이 많다는 보도들이 있자 일부 환자는 방사선진료를 의심하며 꺼리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분명히 필요하다면 의료방사선은 안전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방사선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필요한 검사를 기피할 경우 질병관리 실패로 위험해 지기 때문이란다.

의심의 차원을 넘어 방사선 위험에 대한 오해와 이로 인한 과민반응에 대해 이 교수는 걱정한다. 많은 사람들이 방사선 위험의 실체보다 훨씬 두려워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방사선이 무조건 위험하다고 끊임없이 얘기하는 이들은 열정이 있다. 방사선 위험을 아는 전문가에게도 이를 바로 알리기 위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아쉬워한다. 그는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이더라도 정확한 진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연거푸 들리는 이야기는 사실처럼 들리고, 진실은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방사선에 대해 알릴 수 있을지를 사회적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방사선 문제는 원자력 개발은 물론 안전규제, 보건의료, 환경, 노동 등 여러 유관기관이 연결돼 있다 보니 어느 기관도 팔을 걷고 나서지 않는다. “가야 할 길이 분명하다면 정부차원에서 유관기관 연합전략을 통해 ‘소통프로젝트’를 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재기 교수는 “지금까지 노력이 실패한 원인을 찾아 효율적인 홍보 전략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끝으로 이재기 교수는 “합당한 의심은 의료진의 관심을 높이는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과도한 의심으로 방사선 검사를 기피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의료계에서도 소통을 통해 질병관리 수단으로서 의료방사선의 혜택을 극대화 할 것을 강조한다. 현명한 선택(Choosing Wisely), 의사의 성의와 환자의 믿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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