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의학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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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핵의학회 강건욱 회장
한국 의료의 위상을 높인 학술단체 ‘대한핵의학회’
다학제 융합학문으로 시작된 ‘한국의 핵의학’, 세계적으로 영향력 발휘

    2024년 08월호
    대한핵의학회 강건욱 회장
    한국 의료의 위상을 높인 학술단체 ‘대한핵의학회’
    다학제 융합학문으로 시작된 ‘한국의 핵의학’, 세계적으로 영향력 발휘

 

  “방사성동위원소를 의학적으로 처음 이용할 때는 ‘핵의학과’가 따로 없었다”라고 말하는 대한핵의학회 강건욱 회장은 “당시만 해도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 혈액의 수명을 확인하고, 신장의 기능을 볼 수 있었던 핵의학은 여러 의학이 융합되는 새로운 학문 분야로 생각됐고, 내과 안에 하나의 분과로 돼 있었다”라고 설명한다. 강건욱 회장의 이야기처럼 핵의학은 독립적인 학문이 아니라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다학제 융합학문’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핵의학의 중요성과 영향력이 커지면서 영상의학과에서 독자적으로 분리되었고, 1995년 핵의학 분야를 새로운 전문 분야로 보건복지부로부터 인정받아 핵의학 전문의 제도가 신설되면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대한핵의학회 강건욱 회장을 만나 미국, 독일, 일본과 대등한 글로벌 위상을 갖추게 된 대한민국 핵의학의 역사에 대해 들어보았다.

 

▶ 우리나라 핵의학의 국제 경쟁력을 키운 대한핵의학회

  핵의학이란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하여 우리 몸의 상태와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전문의학 분야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핵의학적 치료가 도입된 시기는 1958년 8월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핵의학의 할아버지라 할 수 있는 이문호 교수의 지도하에 당시 1년차 전공의였던 고창순 교수가 우물형 감마계수기를 이용하여 방사성요오드 섭취율 측정과 치료를 시작하면서다.

  “핵의학의 가장 큰 특징은 ‘연구개발’로, 의사들로만 이뤄져 있지 않고 약학, 화학, 공학 등 방사화학자들을 비롯해 생물학, 인지과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포함돼 있어서 핵의학 연구자들을 ‘핵 과학자’들이라고 통칭한다”라며, “공대, 생물학, 화학 출신 교수들이 한 병원에 같이 있어 새로운 것을 개발하거나 연구할 때 내부에서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물학, 화학, 의학 등의 최첨단 트렌드를 빠르게 공유하고 연구할 수 있다”라고 부연했다.

  대한민국 핵의학 발전과 궤를 같이한 대한핵의학회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방사성요오드 섭취율 측정과 치료의 주역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문호 교수와 고창순 교수를 비롯해 경북대 의대 황기석 교수, 원자력병원 이장규 박사 등 우리나라 핵의학의 근간을 만들어온 전문가 43명이 모여 1961년 창립했다. 이후 대한핵의학회는 방사성동위원소의 의학적 이용 확대를 위한 교육프로그램 운영은 물론이고, 다양한 국내외 활동을 통해 핵의학의 학술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우리나라 핵의학은 미국, 일본, 독일 다음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 왔으며, 최근에는 독일, 일본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위상을 갖추게 된 배경에는 핵의학계의 큰 노력과 도전정신이 숨어 있었다. “우리 핵의학회는 지난 60년간 끊임없이 새로운 치료기술, 진단기술들을 도입해 왔다”라고 소개하는 강건욱 회장은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핵의학은 사라지거나 영상의학과 내 하나의 분과로만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un’ clear에서 ‘new’ clear가 된 ‘핵의학’

강건욱 회장

  강 회장의 설명처럼 70년대 이후 해외 선진장비들이 국내에 도입되면서 우리나라의 핵의학 치료기술은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해부학적 구조만 보는 영상의학과와 달리, 핵의학에서는 방사성동위원소가 체내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생리적인 현상과 병리적인 현상을 고화질로 동영상처럼 볼 수 있게 되면서 뇌 질환 치료, 알츠하이머 조기진단, 종양의 조기 발견 등이 가능해졌다. 핵의학은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PET/CT 도입으로 더욱 빠르게 발전했다.

  강건욱 회장은 “과거에는 많은 동영상 데이터가 필름 형태로 나와서 분석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러한 데이터들이 컴퓨터 기술을 통해 3차원적 전신 데이터로 볼 수 있게 되면서 핵의학도 같이 발전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강 회장은 “데이터의 양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해상도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더 많은 저장공간이 필요하고, 분석 시간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어진다”라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인공지능(AI)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일상적으로 이미지 데이터를 의료에서 사용하려면 5분 안에 영상이 나와야 하는데, 한 번에 전신 PET 촬영할 수 있는 Total-Body PET는 데이터양이 매우 커서 이미징 처리하는데 24시간이 넘게 걸린다. 이러한 이유에서 Total-Body PET과 같이 사람의 전신 영상을 볼 수 있는 장비가 개발되어도 병원에서 바로 사용하기는 어려웠었다. 그러나 최근에 AI 기술이 접목되면서 24시간이 걸리던 이미징 처리 시간을 1시간 이내로 줄일 수 있게 되었고, 이 시간은 계속해서 단축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병원 도입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AI의 도움과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분야는 핵의학과”라고 말하는 강건욱 회장은 핵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이룬 또 하나의 성과에 대해 치료 영역의 확대를 꼽았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과에서는 갑상선암만을 치료해 왔으나 현재는 전립선암 치료제,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도 도입되고, 현재 임상시험 중이지만 유방암 치료제 도입 가능성도 커졌다”라며, “특히 최근에 거의 모든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표적 물질이 개발되면서 핵의학의 치료 분야가 급속하게 커지기 시작했다”라고 부연했다.

  ‘테라노스틱스(Theranostics)’를 이용하면 방사성동위원소에서 나오는 알파·베타선은 치료를, 감마선을 영상을 촬영하게 하는데 개개인의 영상을 찍을 수 있으므로 방사성의약품의 이동 경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로 인해 Personalize(맞춤형)된 치료를 넘어 Individualize(개인화)된 치료까지도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맞춤형 치료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60년대 ‘un-clear’라고 불리던 핵의학이 ‘new-clear’하게 된 60년사다.

  “한국 역시 핵의학의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발전하고 있으며, 일부 영역에서는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강건욱 박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핵의학과 이재성 교수가 창업한 디지털 PET라는 장비를 전 세계 최초로 만든 기업인 ‘브라이토닉스이미징’을 예로 들며 “국내에서도 AI 기술 등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토대로 혁신적인 핵의학 기술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 끊임없는 도전과 방사성의약품 기술 개발의 꿈

  방사성의약품의 규제와 이용은 우리나라,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등이 유사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등 규제기관의 허가 없이는 의학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 반면 독일, 호주, 캐나다 등은 규제기관 허가 없이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중증 질환애서 사용할 수 있고 인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국가들은 독일 등 선진국에서의 성공사례가 있다면 방사성의약품의 이용이 자유로운 편이다. 강건욱 회장이 신경내분비암 환자 등 150여 명을 말레이시아로 보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강건욱 회장은 “국내에서는 치료가 힘든 환자들을 독일의 방사성의약품 원료를 수입해서 치료하는 말레이시아의 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라고 회상한다.

  방사성의약품의 안전한 이용을 위한 규제들은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방사성의약품의 선도적 기술확보와 치료기술의 확장적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핵의학계가 치료기술 연구에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라고 말하는 강건욱 회장은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정재민 교수가 2001년 개발한 간암을 치료제 ‘리피오돌’ 조영제에 ‘방사성 레늄’을 표지해 ‘간암 색전술 방사성의약품 치료제’가 IAEA 지원을 받아 몽골,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 등에서 임상연구에 참여한 사례가 있다”라고 소개하며, “이 임상연구에 정작 우리나라는 참여하지 못했고, 이후 레늄 방사성물질을 이용한 관절염 치료제를 개발해 국내에서 과감하게 사용해 봤는데 허가받지 않은 치료제 사용으로 문제가 생기기도 했었다”라고 회상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러한 시련이 계속되면서 2010년대부터 대한핵의학회를 주축으로,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방사성의약품을 별도로 관리할 특별법을 제정해 관련 산업을 활성화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당시 약사법에는 ‘방사성의약품은 보건복지부 장관과 과학기술부 장관이 협의하여 그 세부 사항을 정한다’라고 명시돼 있었지만, 세부 사항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라고 말하는 강건욱 회장은 “방사성의약품 특별법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당시 해당 부처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라고 말하며, “여러 번의 공청회를 거쳤지만 결국은 통과하지 못했다”라고 회상했다.

  지난 60여 년간 많은 시련과 규제의 벽에 부딪혔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핵의학자는 ‘질병의 조기진단 및 치료 효과 확대’라는 대의명분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핵의학의 발전과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핵의학자의 노력이 모이고 쌓이면서 우리나라의 핵의학도 세계적인 위상을 갖추게 되었으며, 핵의학 기술 역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이다.

▶ 학문의 발전을 넘어 ‘핵의학의 산업화·세계화’의 길을 열다

강건욱 회장

  “학회장으로 취임하기 이전부터 핵의학의 산업화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라는 강건욱 회장은 “산업화하지 않으면 임상에 널리 쓰이긴 어렵다. 연구 자체도 중요하지만, 연구가 산업화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라며, “우리나라 핵의학 산업은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최근에 와서는 스스로 개발을 하고,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 임상시험에까지 들어갔다”라며 강화된 연구역량을 소개했다.

  이와 함께 학회에서는 핵의학은 물론이고 방사선의학 전반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문의뿐만 아니라 방사선사 등 각 분야 방사선의료 전문가들을 위한 정보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관련 기술학회들과 같이 교육 및 강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특히 강건욱 회장이 학회를 이끌면서 국내외 방사성의약품 관련 기업들의 지원이 크게 늘었다. 그 이유에 대해 “기업들이 국내 핵의학 연구에 관심을 보인 이유도 있었지만, 대한핵의학회가 오랫동안 추진해 온 ‘핵의학의 세계화’의 성과라 할 수 있다”라며,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이명철 교수, 이동수 교수 등이 이미 세계핵의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해외 전문가들로부터 한국의 핵의학이 신뢰를 받아왔던 것도 중요한 성과”라고 부연했다.

  강건욱 회장 역시 2022년 11월 아시아지역핵의학협력기구(ARCCNM, Asian Regional Cooperative Council for Nuclear Medicine)의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대한민국 핵의학의 세계화’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강건욱 회장은 MOU를 체결하고, ARCCNM와 대학핵의학회의 2022년부터 학술회를 함께 개최하는 등 대한핵의학회의 세계적 위상을 높여나가고 있다.

  한편, “핵의학은 매우 전문적인 학문 분야로, ‘공부’ 중심의 활동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라는 강건욱 회장은 “학술 활동 역시 재미가 없으면 참여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핵의학의 산업화·세계화와 함께 학회 활동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악기 연주, 미술사 강의 등 문화적인 요소를 추가해 교류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다”라고 소개한다. “문화적 재능을 갖춘 학회원들이 많아서 앞으로도 많은 문화적인 프로그램들을 발굴할 예정”이라고 강 회장은 덧붙였다.

▶ ‘함께’하면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산업과 학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산업계, 학계, 정부기관 등 이해관계자들이 한 마음 한뜻으로 긴밀하게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엇이 핵의학 발전과 환자치료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고 대량생산을 위한 방사성의약품은 식약처와 소량 생산이 필요한 방사성의약품은 복지부와 협의하는 등 상황에 맞는 전략을 수립·이행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강건욱 회장은 “특히 방사성동위원소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원자력의학원을 비롯해 관련 산·학·연·관 모두가 방사성의약품을 이용해 질환을 빠르게 진단·치료할 수 있도록 협력관계를 공고히 해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강 회장은 “환자 개개인은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지만, 환우회와 같은 단체는 새로운 치료기술이나 신규 방사성의약품 도입에 개인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제도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으므로 환자 단체가 힘을 키우면 좋겠다”라며 “정부와 연구기관, 산업계 그리고 환자가 함께 핵의학 발전을 도모한다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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