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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약리학과 이형기 교수- 급변하는 임상시험 트렌드 새로운 기술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약리학과 이형기 교수- 급변하는 임상시험 트렌드 새로운 기술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최근 10년간 한국은 세계 8위의 임상시험 점유율을 기록하는 나라로, 또 한해 평균 700여 건의 임상시험이 진행되는 나라로 임상시험에 있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말하는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약리학과 이형기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한국은 글로벌 제약회사가 신뢰하는 임상시험국가로 부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고에서는 우리나라가 임상시험 선진국가로 지속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과 환경변화 그리고 규제 및 제도개선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형기 교수를 만나 세계적인 임상시험 트렌드에 대해 들어보았다.

▶ 약동학적-약역학적 모델링 권위자 서울대 임상시험센터 이형기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이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융합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이형기 교수는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에서도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가정의학 및 임상약학 전문의 자격과 역학 PhD를 보유한 이형기 교수는 조지타운 의과대학 의약품개발학센터에서 임상약리학 펠로우쉽을 마친 뒤 그곳에서 조교수로 재임한 바 있다. 이를 비롯해 의약품개발과학, 규제과학, 약물역학, 수리약리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연구경험을 쌓아온 이 교수는 규제과학이라는 용어를 한국에 처음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특히 약동학-약력학 모델링 연구에 관심이 많았던 이 교수는 미국에서도 이러한 연구에 집중해 왔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미국 제약회사 암젠의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 엔브렐의 투약방법 개선을 위한 모델링시 연구로, 주2회를 맞았던 주사약 용량을 두 배로 늘리고 기간은 주1회로 낮출 경우 치료효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였다. “투약방법이 변경된다는 것은 신약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3상 임상시험을 두 개 이상하도록 권고되어 있다”고 말하는 이형기 교수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임상시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 연구팀은 엔브렐의 과거 임상시험데이터를 분석했다”고 한다.

“모델링 기법을 통해 주사약을 투여한 류머티즘 환자의 반응을 살펴보고 경로를 표시해주는 결과변수를 다양하고 복잡한 수식으로 연결해 실제 데이터를 예측해줄 수 있었다”고 설명하는 이 교수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 약동학적 양상도 투약 방법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과 효과가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동시에, 두 개 이상 진행해야 했던 3상 임상을 한 개만 진행해 연구비 및 허가기간 단축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 연구를 토대로 발표된 논문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 교수의 논문 중 하나다.

▶ 경험과 지식, 열정을 담아 다시 돌아오다

2012년 우리정부는 임상시험 인프라 구축 및 임상시험 전문 인력 양성을 통해 국내 임상시험 역량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임상시험글로벌선도센터(이하 선도센터)’ 추진계획을 세우고 사업공고를 앞두고 있었다.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시험센터는 이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사업을 이끌 국제적인 안목을 갖춘 임상전문가를 찾아 나섰고, 당시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장 방영주 원장은 이형기 교수를 적임자로 판단하고 귀국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 시기 이형기 교수는 “10여년 넘게 미국에 살다보니 변화에 둔감해 지고 열정이 식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방영주 원장의 제의는 새로운 열정과 도전정신을 불러왔고 바이오, 신약개발 영역에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게 했다고 한다.

학계는 물론, 업계, 정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이 교수는 2012년 9월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와 임상시험센터 글로벌전략기획실장으로 부임하면서 한국에 정착했다. “한국의 임상시험 규모는 전 세계에서 8위의 수준이며, 서울은 단일도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임상시험을 하는 도시였다”고 말하는 이형기 교수는 “제가 떠나 있던 10여 년간 한국은 의료 접근성이 높은 나라로 변했으며, 임상시험 의료시스템도 선진화되어 단기간 내에 비약적인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귀국과 동시에 ‘선도센터’ 사업과제 계획서 작성을 맡게 된 이형기 교수는 자신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어야 했다고 회상한다. 이후 선도센터 과제 선정 이후에도 성과를 높이기 위한 그의 열정은 계속될 수 밖에 없었다.

▶ 다이내믹한 한국 그리고 임상선진국

“한국만큼 다이내믹한 국가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형기 교수는 “그러나 정작 한국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외국에서 살다오면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그 예로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외국계 제약회사가 개발하는 국제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연간 700여건의 임상시험이 진행되며 이중 절반이 외국계 제약회사가 의뢰한 내용일 정도로 한국은 단시간 내에 세계수준의 임상시험 인프라를 갖춘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 역시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에 부임하면서 그 변화 속에 함께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부임 직후부터 선도센터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임상시험센터를 확장했으며 20주년을 맞아 여러 업무를 수행하면서 지난 5년은 연구중심의 업무를 수행하던 미국에서의 생활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고 덧붙여 설명한다. “귀국한 지 5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한국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형기 교수는 “한국 의과학자들은 열정과 저력을 통해 자가발전에 매우 열심히 하고 있는 반면, 아쉬운 점은 Agenda를 선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려 추진하려는 능력이 부족하다”며 리더십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 최근의 임상시험 트렌드

최근 임상시험의 세계적인 흐름을 ‘적응형 디자인’이라고 설명하는 이형기 교수는 “과거에 임상시험이 미리 정해놓은 디자인을 통해 시험단계를 진행했다면 최근의 임상시험 트렌드는 과정 중간에라도 새로운 데이터가 얻어질 경우 그 데이터의 결과에 따라 연구디자인을 원활하게 바꿔가면서 시험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가 말하는 임상시험의 또 다른 이슈는 정밀의료다. 최근 FDA는 노바티스 사의 ‘킴리아(Kymriah)’라는 치료제를 허가했는데, 이 치료제는 맞춤형 유전자 백혈병 치료제로 바이러스를 이용해 유전적으로 변형시킨 환자 개개인의 면역세포가 들어있다. “과거에는 질병을 해부학적 구조에 의해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 특정 적응증을 치료하기 위한 치료제를 개발했다면 이제는 병소(focus)는 다르지만 그 질병이 나타나는 유전적인 소인이 동일할 경우 그 유전자를 치료하는 치료제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임상시험 역시 이러한 트렌드가 반영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형기 교수는 이것이 바로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을 찾아내는 예방의학이자 정밀의료를 실현하는 단계 중 하나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새로운 방식을 적용한 신약개발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하는 이형기 교수는 “정부 및 규제기관의 이해 부족과 제약회사들의 의구심, 그리고 연관 학문 전문가들의 소극적인 참여가 때로는 새로운 기술과 기법을 적용한 연구에 있어서 선도적 위치를 놓치게 한다”고 말한다. 특히 이 교수는 분자 영상 분야에서도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임상시험이 많아지고 있는데 핵의학과 전문의들이 이러한 변화에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하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한편 미세용량투여(Microdosing) 임상시험 관련 정부과제로 수행하고 있는 이형기 교수는 현재 생물학적 제제의 Microdosing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Microdosing 연구는 국내에서도 많이 이뤄지지 않는 분야”라고 말하는 이 교수는 “특히 생물학적 제제의 Microdosing 연구는 새로운 개척분야이기 때문에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사업은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Microdosing이 환자와 임상시험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여러 의학계 분야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환자대상 초기임상시험 확대와 AI

일반적으로 전임상시험 후 임상단계에 들어오면 건강자원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데 건강자원자에게서 안전함이 확보되면 환자로 이동해야 한다. “임상약리학 연구자로 초기임상시험을 많이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형기 교수는 “건강자원자를 통해 얻은 임상시험결과들이 환자들에게 빠르게 확대 적용될 수 있도록 ‘환자대상 초기임상시험’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한다. 또 이 교수는 “현재까지 비만, 고혈압, 통풍 등에 대해 환자대상 임상시험을 적용해 왔는데 앞으로는 더 많은 적용의료 분야로 확대하고 싶다”며 이를 위해서는 임상시험 전문의와 임상약리학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한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의사가 개인적인 판단하게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환자 개개인의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으로 도출된 데이터를 활용해 질병을 진단·치료할 뿐만 아니라 사전예방까지 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는 이형기 교수는 “50~100개에 달하는 임상시험 선정기준에 근거해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는데, 이러한 분류를 통해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 시간과 비용 노동력이 많이 드는 반면, 정확도는 떨어진다”며 이러한 문제를 머신러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시간적인 비용과 노동력을 줄임과 동시에 정확도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정밀의료 시대에서 인공지능(AI)을 임상시험에 적용함으로써 임상시험 대상자 선정의 어려움을 개선하는 것이 이 교수가 개척하고 싶은 분야라고 한다.

정밀의료 시대가 완성될수록 임상시험은 보다 세분화될 것이며, 세계적인 경쟁도 더욱 치열해 질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형기 교수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신약개발이 가능한 임상시험 선진국가로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임상시험 관련 규제 및 제도의 지속적 개선과 함께 각 분야 전문가들의 리더십 강화, 협업연구 확대와 함께 새로운 기술 및 기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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