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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자력병원 혈액종양내과 나임일 과장-  환자에게서 ‘나’를 찾아주려 하는 ‘따뜻한 의사’<br/>얼마나 살지 보다는 어떻게 살지 생각해 보자

    원자력병원 혈액종양내과 나임일 과장- 환자에게서 ‘나’를 찾아주려 하는 ‘따뜻한 의사’
    얼마나 살지 보다는 어떻게 살지 생각해 보자

“의사는 단순히 의술을 시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영화 패치아담스 중에서).” 상처를 치유한다는 의미의 ‘패치(Patch)’를 자신의 이름으로 택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환자들을 돌본 헌터 아담스의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졌을 만큼 특별하다. 우리 주변에서도 패치만큼은 아니더라도 ‘병’을 넘어 환자들과 각별한 신뢰를 쌓는 의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원자력병원 혈액종양내과 나임일 과장 역시 ‘환자’ 마음 넘어 까지 헤아리는 속 깊은 의사 중 하나다.

원자력병원 혈액종양내과 나임일 과장(항암요법센터 센터장)은 지난해 11월 개소한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의 센터장을 맡으면서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가 자리를 잡으면서 환자가 더욱 많아졌다. 그래서 최근에는 연구 활동보다는 진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말하는 나임일 과장은 “특히 서울 동부권에서 골수이식을 하는 병원은 원자력병원이 유일하고, 방사선 치료에 대한 노하우도 쌓여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서 치료를 기대하고 있는 환자들이 최근 늘고 있다”고 한다.

>>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는 의사

말기 암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중 하나는 ‘얼마나 살 수 있는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일 것이다. 그러나 당연한 물음에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의사들은 많지 않다. 병의 정도와 치료에 필요한 시간, 환자의 몸 상태와 유전학적 특성, 그리고 병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 등 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무수히 많으며 환자마다 정도차가 다르기 때문이다.
올해로 11년째 원자력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임일 과장은 혈액종양 의학 발전을 위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해 왔다. 특히 암 발생 환자가 특정한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는 경우의 위험인자, 다시 말해 어떤 위험인자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암에 잘 걸리는가에 대해 의문점을 품고 이에 대한 연구를 다양하게 진행해 왔다고 한다.

“제가 진료한 환자 중에는 암 발견 이후 12년 동안 잘 지내고 있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환자는 1~2개월 만에 나빠진 경우도 있었다. 똑같은 폐암 환자지만 다양한 다른 결과를 보인다. 이런 케이스의 환자들을 의사 입장에서 어떻게 구별하고 진료할 것인가에 관심이 많았고, 치료에 대한 반응을 미리 예측해 볼 수 있는 예측인자를 찾아내려고 노력해 왔다”고 한다.

의료진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힘들게 항암치료를 하는데 효과가 없을 경우 고통 받는 환자를 위해 의미 없는 치료를 거두거나 다른 치료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이 고민은 계속적으로 답을 찾아야 할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나임일 과장은 PET을 이용해서 치료결과를 예측해 보거나 폐암 돌연변이의 위험인자에 대해 탐구하는 등 핵의학 접근의 연구를 많이 진행해 왔다고 한다.

>> 병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초석은 다른 의학에 관심을 두는 것

“다른 의학 분야 전문가와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 내용을 환자 증상과 매치시켜 보면 환자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나임일 과장은 “개인적으로 핵의학적 영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며 “일반적으로 CT 등에서는 수치를 찾아내기 어려운데 핵의학적인 영상 속에는 숫자 같은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다. 이 데이터가 실제 임상진료에서 어떤 유용성을 가질 수 있는지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연구를 했다.”고 한다. 또 SUV(표준섭취화계수 ; Standard Uptake Value)가 낮으면 특정 약이 잘 들릴 경우가 있어 이를 예측인자로 이용하면 효용성이 있는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한 바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당장 획기적인 치료결과를 가져올 수 없지만, 병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똑같은 폐암 4기지만 핵의학적 소견에 의해서 수치가 낮은 경우에는 순한 암, 그렇지 않은 암을 구분할 수 있는 이해도가 높아지며, 장기적으로는 이를 통해 새로운 약을 개발하거나 치료법을 만들 수 있는 초석을 다질 수 있다”고 나임일 과장은 설명한다.

>> 병에 대한 긍정적이 아니라 삶에 대해서 긍정적이어야 한다.

나임일 과장은 원자력병원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2005년, 뼈와 뇌에 암세포가 전이된 폐암 4기 환자를 만나 진료하게 되었고, 지금도 11년째 그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고 한다. “치료가 계속되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봤다. 다른 병원에 보내서 임상실험도 하고, 면역치료에 더 이상 쓸 약이 없을 정도 안 해 본 것이 없다. 그때마다 돌파구가 생겨서 치료를 이어갔고 환자도 잘 견뎠다”고 한다. 나임일 과장은 “이 환자의 가장 큰 특징은 의료진과의 신뢰가 굉장히 강했다는 것”이라며 치료결과가 좋거나 나쁘거나 상관없이 의료진에 대해 큰 신뢰를 보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나 과장 역시 치료에 대한 부담감을 덜고 자신감 있게 치료에 임할 수 있었고,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 환자의 또 다른 특징은 환자 스스로가 폐암 4기라는 병에 집착하거나 억매이지 않고 악기를 배우거나 삶을 즐기며 자신의 인생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고 회상하는 나 과장은 환자들이 병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병에 대해서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통 환자들을 치료하다보면 한 가정의 부모, 어머니, 가장으로서의 위치나 자신의 인생을 잊고 ‘환자’로만 생각한다. 열심히 치료를 받아서 병을 떨쳐내겠다는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투병생활에서도 자기 인생에 대한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자아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나 과장은 덧붙여 설명한다.

>> 사람 냄새나는 의사, 의사다운 따뜻한 사람의 꿈

우리는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30여분을 기다렸다가 5분 정도 진료를 받은 후 돌아온다. 진료 역시 환자와의 스킨십이 이뤄지는 경우보다는 몇 가지 문답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들어 원격의료 등 새로운 의료 트렌드가 대두되면서 이러한 상황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기술의 유용성과 산업적 효과 등을 떠나서 원격의료가 시행되면 영상 등을 통해서 환자를 진료하게 되므로 환자와의 친밀도, 교감적인 측면에서 환자와의 신뢰감은 더욱 낮아질 질 것”이라고 말하는 나임일 과장은 “그렇다면 모든 의료분야에 적용하기 보다는 효율적인 측면을 고려해 필요한 곳을 찾아내 특화시켰으면 좋을 것 같다. 예로 호스피스 대상 환자들은 거동이 불편해 병원을 못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이들을 대상으로 원격의료가 시행된다면 훨씬 반응이 좋을 것이다”고 덧붙다.

진료하고 있는 5분은 ‘환자와 의사’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서 이야기 하려고 노력한다”는 나임일 과장은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환자와 가족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하면 이런 분들에게 좋은 서비스, 적절한 치료를 해서 고통을 줄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며 “병원이라는 삶의 배움터에서 인생을 배우면서 스스로를 가다듬고 발전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다보니 의사로서 받는 스트레스나 피로감도 덜 느끼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암’이라는 병만 보는 의사가 아니라 암으로 투병하는 환자, 그리고 환자를 넘어서 가족까지도 신경써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나임일 과장은 가장 사람 냄새나는 의사이자, 믿음직한 의사다운 따뜻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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