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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박세문 회장- 유리천장을 깨트리고 있는 ‘여성과학자’ 더 큰 세상으로 날아오를 그녀들을 위해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박세문 회장- 유리천장을 깨트리고 있는 ‘여성과학자’ 더 큰 세상으로 날아오를 그녀들을 위해

“우리는 일을 한다. 일할 때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과학자, 의사, 심리학자 등 6명의 여성 대원만으로 이뤄진 ‘러시아 화성탐사대’가 한 말이다. 이들은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어떻게 머리를 감는지에 대해 관심을 보인 언론에 불만을 표시하며, 남성 우주인들은 그런 질문을 받지 않는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박세문 회장은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여성과학자를 ‘과학자’가 아니라 ‘여성’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며 “여성이라는 한계에 갇혀있는 과학자들이 세상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 ‘4차 산업혁명과 과학소통’을 이끌 여성과학자들

지난 11월 11일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여성과총)는 ‘4차 산업혁명과 과학소통’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클라우스 슈밥, 다보스포럼 회장의 말을 인용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더 이상 자본이 아닌 ‘창의적인 생각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아이디어’가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여성과총 박세문 회장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콘텐츠 인터페이스 기반의 글로벌 기업들을 예로 들며 “특히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기, 기기와 기기 등 모든 것을 연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소통적 사고와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4차 산업혁명과 AI시대의 개화는 사람의 자리를 ‘기계’가 꿰어 찰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창조적 사고를 가진 인재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하드웨어와 노동력 중심의 업무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간주되면서 창의성과 감성, 그리고 소통능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수많은 미래학자들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핵심 키워드로, 남성에 비해 우뇌가 더 발달한 것으로 알려진 ‘여성’을 꼽는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200여명의 여성과학자 및 관계자들이 참석해 4차 산업혁명의 가치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자리였다”고 말하는 박세문 회장은 “특히 여성과학자들에게 유리한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우리의 역할은 무엇이며, 여성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시대를 개척하고 리드할 수 있도록 여성과총에서는 어떤 준비를 할 것인지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덧붙여 말했다.

>> 과학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연결고리 ‘여성과총’

과학자는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네트워크가 강해져야 저변이 확대될 수 있으나 여성과학자들의 네트워크는 남성과학자들에 비해 강력하지 않다. 그래서 여성과총 박세문 회장은 늘 여성과학자의 네트워크 강화와 소통을 강조해 왔다. 여성과학인들의 위상을 높이고 발전시키기 위한 네트워크의 구심점 중 하나가 바로 여성과총이다.

여성과총은 생명과학, 환경, 에너지, IT 및 의학 등 과학기술 분야 57개 단체의 연합회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과학관련 여성 단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단체의 특성에 맞춰 지원해주는 ‘단체지원사업’을 비롯해 과학의 중요성과 여성과학자의 위상을 알리기 위한 ‘과학커뮤니케이션 사업’, 학술대회, 리더스포럼, 연차대회 등을 통해 소통하고 공유하는 ‘포럼사업’, 여성과학자들이 중장기적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도록 틀을 만들어 주고 모니터링을 통해 방향성을 제안하는 ‘중장기정책 로드맵과 실천’, 국제 네트워크에 가교가 될 재외 한인여성과학자들의 리더십을 키워 우리 과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줄 ‘국제협력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 과총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사업 중에는 ‘출판홍보사업’이 있다. ‘과학소통’, ‘과학커뮤니케이션’의 일환인 이 사업은 국내외 여성과학자의 업적과 과학자로 성장하기까지의 배경을 소개해 여성과학자의 위대함을 알리고 미래의 여성과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문화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현재 신시아 브리질을 포함한 미국의 유명 여성과학자 4인의 이야기가 막 출간되어 서점에서 독자를 만나고 있으며, 국내 유명 여성과학자를 비롯해 국내외 여성과학자들의 우수한 업적을 알리기 위한 도서 출판 사업은 연말에도 내년에도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박세문 회장은 보다 많은 계층에서 이들 도서를 접할 수 있도록 지자체 중소도서관과 공공기관 관련 자료실 등에 배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온라인 도서도 제작해 독자가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여성과총은 ‘여성과학자안전관리 사업’의 일환으로 여성과학자들이 실험실 등 작업장에서 노출될 수 있는 위험에 경각심을 주고, 여성과학자들이 안전한 조건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성희롱 매뉴얼’, ‘실험실 안전메뉴얼’ 등을 제작해 홍보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여성과학자들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안전한 근무생태계를 만들어 가는데 기여하고 있다.

>> 원자력 및 방사선 전문가이기도 한 박세문 회장

방사성 폐기물 처리처분에 관한 연구와 원전 부지 지진 안정성에 관한 연구를 주로 해 온 박세문 회장은 원자력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전문가이다. 이러한 이력으로 정부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 후 핵연료)을 처리하기 위한 중장기 안전관리 로드맵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 수립 시 ‘문답집’을 만드는데 참여했으며, 제5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 수립에 참여해 의견을 내기도 했다.

박세문 회장은 원자력 및 방사선 관련 연구뿐만 아니라 소통에도 앞장서 온 국제적 인물이다.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원자력인과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1993년 조직된 세계여성원자력전문인회(WiN Global)의 회장직을 4년째 수행해 오고 있다. WiN Global의 한국지국인 ‘WiN Korea (회장 이레나)’의 설립 (2000년) 시 부터 부회장직을 맡아오며 국제협력 활동을 해 온 결과이다. 박세문회장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WiN Korea의 회장직을 역임했다.

“여성들이 과학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데 원자력분야는 더 심하다”고 말하는 박세문 회장은 “WiN Global 내 여성과학자들은 각국에서 대중들과의 소통에 앞장서며 원자력에 대한 오해와 편견, 안전성과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며 “WiN Korea도 이러한 활동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소개한다. 한편 11월 24일까지 아부다비에서 진행되는 WiN Global 컨퍼런스를 주최한 박세문 회장은 이번 컨퍼런스를 마지막으로 WiN Global의 회장직을 IAEA의 전 국장인 독일인 Gabriele Voigt에게 넘겨주었다.

“여성과학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대중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과학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 수 있도록 ‘과학 이슈에 대해 소통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박세문 회장은 “이를 위해서 앞으로 여성과총은 물론 여성원자력전문인들의 단체인 WiN Korea같은 과학계 여성인재 단체들이 네트워크 강화와 과학커뮤니케이션 문화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아직도 우리사회엔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세계 각국은 지금 첨단 과학과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무한경쟁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이 총성 없는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재확보가 중요하다. 특히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여성 인재를 성공적으로 키우지 않고는 과학기술 선진국의 꿈은 쉽게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과거에 비해 우리나라 역시 여성과학자, 여성 전문가들의 활동영역이 크게 넓어지고 있으며, 여성들의 사회참여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유리천장(glass ceiling, 여성의 출세를 막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여성과학자로서 내 삶은 ‘투쟁의 역사’였다”고 말하는 박세문 회장은 “일찍이 과학자의 길을 택한 나는 늘 ‘소수, 홍일점’으로 생활해 왔다. 조직 안팎으로 수없이 많이 부딪혀야 했고, 설득해야 했고, 또 포기해야 했다”는 박세문 회장은 “남성이 이끌던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화되지 않으면 흡수되기 힘든 구조였다. 그러한 조직문화에 굴복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여성과학자로서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또 세상에 여성과학자들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어느새 후배여성과학자들에게 ‘소통의 길’을 열어줄 수 있었다”며 돌아온 길을 회상한다.

박세문 회장과 같은 여성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여성 과학기술자를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본격화했다. 2002년에는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며 2005년부터는 여성 과학기술인 지원사업이 시작되었다. 박세문 회장은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로 인해 발전의 토대가 생겨 긍정적인 일이지만 미래에는 별도의 ‘여성만을 위한 제도’가 불필요한 시대가 되어 여성과학자들이 차별은 물론 불이익이 없이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연구 활동을 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 박 회장은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사회적 지원 시스템이 필수적이나 무엇보다도 여성 스스로도 경제인이 되어 자립하고, 사회적으로 기여하겠다는 마인드의 변화가 있을 때 사회는 편견없이 ‘여성’과 ‘남성’이란 단어를 뺀 그냥 ‘과학자’로 받아들여질 것”이며 유리천장도 깰 수 있을 것이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박회장은 ‘여성리더들 즉 여성임원이 많은 기업들의 성장률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높다는 것은 통계로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21세기의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 여성리더, 특히 과학계의 여성리더를 키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유리천장은 여성 외부환경과 내부환경이 서로 도와서 깰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고 강조한다.

>> 여성과학자는 선도적 미래 과학 인재를 키울 ‘엄마’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룩한 것 중 하나는 엄마들의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만큼은 교육을 시키겠다는 일념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나라가 지식강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과학자에게 가정과 일의 양립은 여전히 어려우며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 단절이 되기 쉽다. 왕성하게 연구 활동에 전념해야 할 나이에 현장을 떠나 공백이 생기면 돌아와서 경쟁력을 회복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과학기술계에 리더급 여성과학자들의 비중이 매우 낮은 편이다.

“과학자라는 타이틀에서 남성과학자들과 다른 특별한 자부심을 느낀 적은 없지만 ‘과학자인 엄마는 아이에게 자부심’이 될 수 있었다”는 박세문 회장은 “아이들은 소통을 통해 사회를 배운다”며 여성과총 학술행사 시 소개된 “3D프린터로 현미경을 만들어 왔다는 세종과학고등학교 학생들처럼 기존의 교육방식을 탈피해 창의적 사고를 심어준다면 더 많은 아이들을 과학인재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그녀는 “시대가 바뀌면 교육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걸맞은 꿈을 꿀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인 여성과학자의 역할이 중요하며, 여성과학자들 역시 이를 위해 사회와 소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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