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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와 방향성한국원자력의학원 RI중개연구팀 조일성2023-06-07

  엔트로피라는 단어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무질서의 정도’를 의미하는 값인 엔트로피는 교양프로그램에서 가끔 나오기도 하고 신문의 과학칼럼에도 종종 글감이 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엔트로피는 1865년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1822년-1888년)가 ‘에너지 즉,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라는 말의 어원인 그리스어 ἐνέργεια(에네르게이아)에서 전치사 ἐν-(엔-)을 남기고, '일, 움직임'이라는 의미의 어간 ἔργον(에르곤) 부분을 '전환'이라는 의미의 τροπή(트로페)로 바꾸어 조합해 만들었다. 이름으로부터 보이듯 엔트로피는 일, 에너지 전환과 관련된 말처럼 들린다. 물론 물리학에서는 에너지와 일의 단위는 J(Joule)로 동일하다. 과학책에서는 열역학 제 2법칙에서 엔트로피는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모든 과학의 제 1법칙'이라고 까지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한 영국의 물리학자 아서 스탠리 에딩턴은 "만일 당신의 이론이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배한다면, 빨리 포기해라 !!" 라고 선언하기 까지 했다.

 

 

<엔트로피(Entropy)를 시각화 한 그림>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엔트로피의 개념은 당시 하루가 멀다하고 혁명이 일어났던 유럽에서 정립되었다. 1789년도에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으며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1793년 1월 14일 프랑스의 국민공회는 루이 16세를 처형 할 것을 의결했고, 그 의결에 찬성한 사람으로 수학자이자 공학자였던 리자르 카르노(Lazare Carnot, 1753년 - 1823년)가 있었다. 리자드 카르노의 연구목표는 복잡한 기계에서 일반적인 작동 원리를 얻는 것이었으며 그의 아들인 사디 카르로 (Nicolas Léonard Sadi Carnot, 1796년~1832년)에게 영향을 주었다. 당시 증기기관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 증기기관으로 엄청난 생산성을 올리고 있었으며 과학의 관심사도 당연히 ‘열(heat)’이 어떻게 ‘일(work)’을 할 수 있는가 ?로 집중되어 본격적으로 ‘열역학(Thermodynamics)’ 이라는 분야가 시작되었다. 열기관은 쉽게 생각하면 자동차 엔진을 생각하면 된다. 사디 카르노는 어떻게 해야 최고의 효율을 달성할 수 있을지 연구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따서 ‘카르노 기관(Carnot engine)’이라 제안했다. 그렇지만 열을 모두 일로 전환하는 것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이 일로 변환되려면 기계 부품들이 돌아가는 과정에서 마찰이 일어나며 마찰로인해 열의 손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열열은 높은 온도로부터 낮은 온도로 옮겨질 때에만 힘을 얻을 수 있고, 그와 반대의 경우에는 밖으로부터 힘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안타깝게도, 사디 카르노의 연구는 1830년 7월 혁명이후로 단절되고, 2년 후 콜레라에 걸려 36세로 생애를 마쳤다. 

  카르노의 결과는 루돌프 클라우지우스에게 전해졌고, 클라우지우스는 카르노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열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상황을 측정하고 계산할 수 있는 개념을 만들고 이를 ‘엔트로피’라 이름을 붙였다.

 

  물리학자 볼츠만(1844년-1906년)에 이르러 엔트로피는 거시적인 세계와 미시적인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가 되었다. 그는 열과 온도를 아주 작은 기체 입자의 운동을 통해 통계적으로 해석했다. 기체 개개의 운동은 앞으로도 뒤로도 방향이 정해지지 않게 움직일 수 있지만 그 결과로 나오는 온도는 한쪽으로만 흘러가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엔트로피라는 거시 상태의 특징은 사실 미시상태의 통계적 특징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라는 해석을 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미시상태는 앞으로 뒤로 움직이고 특정한 방향성은 없지만 미시적인 사건들이 통계적으로 해석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방향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엔트로피’는 현재에 이르러 좀 더 직관적이고 인상적인 개념으로 변했다. ‘엔트로피’로 정의된 값은 얼마나 무질서한가를 보여주는 ‘무질서의 정도'로 바꿔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종류의 기체가 마구 섞여 있는 상자 앞에서 끈기 있게 기다리면 언젠가는 두 기체가 다시 분리되는 순간이 올까? 또는, 깨진 병들앞에서 기다리면 파편이 다시 합쳐져 유리병이 돌아갈수있을까 ?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영화를 거꾸로 재생시키는 것 같은, 마치 시간을 거꾸로 흐른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깨진 병들>

 

  다시 엔트로피로 돌아가면 이를 "우주의 무질서는 꾸준히 증가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 해석은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그것은 바로 시간의 방향성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미시적인 분자 하나하나는 자유롭게 운동을 할 수 있다. 즉, 대부분의 운동은 해왔던 것과 거꾸로 움직일 수 있는 가역적인 운동이다. 하지만, 거시적 과정에서 무질서가 질서로 뒤집히는 반전은 기대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엔트로피’가 의미하는 비가역성 이다. 미시적으로는 가역적일 수 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비가역적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은 엔트로피의 증가를 목격하는 것에 불과하며 시간은 우리에게 희미하게 다가오는 개념에 불과함을 말한다. 볼츠만은 시간의 흐름에 본질적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산업혁명 이후 좀 더 손실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프랑스혁명 시기와 맞물려 등장한 ‘엔트로피’는 지금에서는 자연과학을 뛰어넘어 사회과학분야에도 적용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사회학자, 작가, 사회 운동인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현재)은 엔트로피의 개념을 사용하여 과학 기술의 발전이 경제, 노동,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강조한 현대과학의 산물들은 엔트로피를 너무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나간다는 경고를 주고 있다. 이는 또 다른 디스토피아로 향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미시적인 시각에서 구성원들이 기존의 관성과는 다른 방향으로 행동해도, 즉 가역적으로 행동해도, 조직 외적으로 보이는 거시적인 모습에서는 결국 비가역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은 엔트로피는 증가하며 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닌 다른 사회로 갈 수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디스토피아적인 결말은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엔트로피의 연장선에 있는 또 다른 화두인 <노동의 종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이끄는 자유의 여신> 프랑스 7월혁명을 그린 그림>

 

1) 사실 프랑스에서는 기억되는 혁명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으로 유명한 1830년 7월 혁명, 소설 ‘레 미제라블’의 배경이 되는 1832년의 6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이 있으며 1871년에는 보불전쟁 직후 ‘파리 코뮌’을 세우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이라 하면 1789년도에 일어난 혁명을 가르킨다.
2)<노동의종말>은 제러미 리피킨 교수의 <엔트로피> 이후 또 다른 화두이며 시장 경제가 내포하고 있는 기술 발전의 위협을 넘어서 후기 시장 시대를 열어가는 새로운 대안과 접근 방법을 개괄적으로 논하고 있다.

 

 

 

  • 아씨오

    늘 신박한 주제로 재밌게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06-12 09: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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