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생의 과학레시피
| 2025년 10월호 과학, 그 이상을 보여주는 이그노벨상 | 한국원자력의학원 책임연구원 김정영 | 2025-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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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은 1991년 과학 유머 잡지 ‘Annals of Improbable Research (불가능한 연구 연대기)’의 편집장 Marc Abrahams (마크 에이브로햄스, ’56년~, 하버드 응용수학전공)가 창설한 상이다. 이 상은 ‘사람들을 먼저 웃게 하고, 그 다음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에 수여되며, 단순한 장난을 넘어 인간의 호기심과 창의성, 그리고 과학의 경계를 넓히는 업적을 기린다. 그러다 보니 꼭 연구자가 생존하지 않아도 되며, 그 연구 결과가 기록으로 남아 있으면 수상대상이 된다. 그렇다, 과학이 반드시 엄숙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일상 속의 기이한 현상과 엉뚱한 질문들 속에서도 진지한 탐구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2025년 이그노벨상 시상식은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열렸으며, 수상 분야는 문학, 심리학, 영양학, 항공, 공학, 생물학, 물리학, 화학, 소아과, 평화 등 총 10개 부문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2025년 수상작들은 일상 속의 기이한 현상, 동물 행동, 자기 인식 등에 대한 연구가 주목을 받았다.


칭찬은 자기애를 키운다(심리학상)
폴란드의 ‘마르친 자옌코프스키’와 호주의 ‘질레스 지냐크’ 공동 연구팀은 긍정적인 피드백이 자기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적으로 분석했다. 총 361명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지능을 주관적으로 평가하고 자기애 성향 검사를 받은 뒤 실제 IQ 테스트 결과와 함께 무작위로 긍정 또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 “당신은 대부분보다 IQ가 높습니다.”라는 긍정적 피드백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독특함과 우월감을 강화했고, 특히 과대형 자기애 성향을 가진 이들은 자기 과시 성향이 뚜렷해졌다. 반면, “당신은 평균보다 낮은 IQ를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부정적 피드백을 받은 취약형 자기애 성향의 참가자들은 위축되는 반응을 보였다. 이 연구는 외부의 평가가 개인의 자아 인식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며, 칭찬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자기애 성향은 단순한 자존감이 아니라, 외부 자극에 따라 심리적 반응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발견이다.
손톱으로 기록한 시간(문학상)
미국의 ‘윌리엄 빈’ 박사는 35년 동안 자신의 손톱 성장 속도를 꾸준히 기록한 연구로 주목받았다. 1980년대 초부터 손톱 길이를 일정한 간격으로 측정하며 계절, 건강,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인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꼼꼼히 기록했다. 이 연구는 단순한 생리학적 관찰을 넘어, 인간이 자신의 몸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주는 독특한 사례로 평가받았다.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면서도 결과물은 마치 일기처럼 서정적이고 개인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삶의 흔적과 의미를 발견하려는 문학적 감수성과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었다. 이그노벨상 문학상은 글쓰기 능력보다 기록과 표현이 과학과 예술 사이를 넘나드는 방식에 주목하며, ‘빈’ 박사의 손톱 기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로 인정받았다. 이미 고인이 된 그는 오랜 기록을 통해 과학이 일상의 작은 관찰에서도 깊은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도마뱀의 피자 취향(영양학상)
서아프리카 토고의 생물학자 연구팀은 토고 수도 로메에서 무지개 도마뱀을 대상으로 다양한 종류의 피자를 제공하고, 그들이 어떤 종류를 선호하는지를 관찰했다. 실험 결과, 도마뱀들은 특히 콰트로치즈(Quattro Formaggi)가 들어간 피자에 가장 많이 몰려들었으며, 채소 중심의 피자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보였다. ‘콰트로치즈’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치즈가 사용되는데, 모짜렐라(Mozzarella), 고르곤졸라(Gorgonzola),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 Reggiano), 에멘탈 또는 프로볼로네(Emmental or Provolone)로 구성된다. 이 치즈들은 각각 맛과 향이 강하고 지방 함량이 높아, 도마뱀에게도 강한 유혹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연구는 단순한 동물의 입맛을 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화가 진행되는 환경에서 인간의 음식 쓰레기와 상업적 식품이 야생 동물의 식습관과 생존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인간이 만든 고지방, 고단백 식품이 동물들에게도 매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는 생태계의 균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무지개 도마뱀의 피자 취향이라는 엉뚱한 질문은 도시화와 생물 다양성,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이어지며, 과학이 일상 속에서 유쾌한 방식으로 깊은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치즈와 후추의 물리학(물리학상)
이탈리아의 연구팀은 전통적인 파스타 요리인 ‘카치오 에 페페(Cacio e Pepe)’에서 치즈와 후추가 뭉치는 현상을 물리학적으로 분석한 연구로 과학계의 웃음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카치오 에 페페’는 단순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파스타 요리다. 삶은 면에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와 후추를 넣고 섞는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치즈가 후추와 함께 덩어리져 뭉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많은 요리사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조리법을 시도해 왔지만, 이탈리아 연구팀은 이 문제를 물리학적으로 접근했다. 연구팀은 치즈의 단백질 입자와 물의 온도, 점성, 그리고 후추의 입자 크기와 표면 전하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실험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특정 온도와 교반 속도에서 치즈 단백질이 응집되며 후추 입자와 결합해 덩어리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물의 온도가 너무 낮거나 너무 높을 경우, 치즈가 균일하게 녹지 않아 후추와 함께 뭉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 연구는 단순한 요리 현상을 넘어, 복잡한 유체역학과 입자 물리학의 원리가 일상 속에 어떻게 숨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테플론으로 다이어트를(화학상)
독일의 식품화학 연구팀은 테플론(PTFE) 분말을 음식에 섞어 섭취함으로써 칼로리를 줄이고 포만감을 높이는 ‘테플론 다이어트’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실험한 공로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테플론은 일반적으로 프라이팬의 코팅제로 잘 알려진 물질로, 매우 낮은 마찰계수와 높은 내열성을 가지고 있다. 이 물질은 인체에 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배출되기 때문에, 연구팀은 이를 식품에 소량 첨가하면 칼로리를 줄이면서도 포만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실험은 다양한 식품에 미세한 테플론 분말을 섞어 섭취한 후, 참가자들의 포만감과 식욕 변화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테플론을 섭취한 그룹은 일반 식품을 섭취한 그룹보다 더 빨리 포만감을 느끼고, 이후 식사량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테플론이 음식의 물리적 구조를 변화시켜 씹는 감각을 강화하고, 위장 내에서 부피를 차지함으로써 포만감을 유도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이 연구는 단순한 다이어트 방법을 제안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테플론이라는 비식품성 물질을 식품에 응용하려는 시도 자체가 기존의 식품화학의 경계를 넘는 발상이었으며, 그 안전성과 윤리성에 대한 논의도 함께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연구팀은 테플론의 장기적 섭취에 대한 안전성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 실험은 어디까지나 ‘이론적 가능성’을 탐색한 것이라고 밝혔다.
약간 알코올로 멋진 외국어를 합시다(평화상)
소량의 알코올 섭취가 외국어 발음과 말하기 자신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참가자들이 네덜란드어를 학습한 후, 일부는 소량의 알코올을 섭취하고 일부는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발음을 평가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알코올을 섭취한 그룹은 발음이 더 자연스럽고 유창하게 들렸으며, 말하기에 대한 불안감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현상이 알코올이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높여주는 효과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과도한 음주는 오히려 언어 능력과 판단력을 저하시킬 수 있으므로, 이번 연구는 ‘소량의 음주’에 한정된 결과임을 분명히 했다. 이그노벨상 평화상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갈등 해소, 그리고 유쾌한 상호작용을 조명하는 연구에 수여되며, 이번 수상작은 언어와 문화, 심리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과학적 통찰을 제공했다. ‘술 한 잔의 용기’가 실제로 외국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의미 있는 발견으로 평가받았다.
이 밖에도 올해 이그노벨상은 수상자들의 유쾌한 수상 방식에서 기인하는 단순한 흥미보다 그 내용 안에서 나오는 무릎을 탁하고 치는 과학적 연구가 돋보인다. 국가의 경제를 살리고, 지구와 인류의 건강을 살리고, 뭔가 우주를 향해 가는 과학기술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과학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과학은 인간의 호기심에서 시작하고, 그 호기심의 과학기술 문화 속에서 더 단단하게 성장한다. 그러나 우리 과학계는 과학자에게 너무 과도한 진지함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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