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생의 과학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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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호
빛나는 Cu-64, 10년의 약속
한국원자력의학원 책임연구원 김정영2026-01-06

 

  X-선생이 한국원자력의학원 연구실에서 일하고 싶어 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핵의학 연구를 시작하던 초기에 지도교수님께서 제안하신 방사성구리, 즉 Cu-64 때문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구리(Cu)는 색도 아름답고 쓰임새도 다양하다. 그러나 방사선을 방출하는 구리, 즉 방사성구리는 왜 필요한 것일까. 연구를 막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Cu-64의 존재조차 몰랐고, 당연히 그것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구리는 원자번호 29, 원자량 63.546을 가진다. 원자번호 29는 구리 원자핵 안에 양성자가 29개 있다는 뜻이다. — 고등학교 화학 시간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 원자량이 정수가 아닌 이유는 서로 다른 질량을 가진 동위원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위원소란 양성자 수는 같지만, 중성자 수가 다른 원자를 말한다. 자연계의 구리는 Cu-63과 Cu-65 두 종류가 있으며, 흙·물·음식·생활용품은 물론 우리 몸속에도 존재해 생체 대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유산소 호흡에서 구리는 필수적이다.


         
   <자연에서 안정한 구리(Cu-63, Cu-65)>                               <방사성구리 Cu-64의 방사성붕괴 개요>
 

  그렇다면 방사성구리(Cu-64)는 왜 필요한가? 박사과정 시절, Cu-64는 매우 매력적인 원자였다. Cu-64는 핵이 불안정해 양성자 하나가 중성자로 변하며 방사선을 방출하고, 결국 안정한 니켈(Ni-64)로 변환된다. 이 과정에서 방출된 양전자가 소멸할 때 감마선이 발생하고, 우리는 이 감마선을 검출해 영상으로 전환한다. 이 기술이 바로 핵의학에서 사용하는 양전자단층촬영(PET, Positron Emission Tomography)이다. 오늘날 PET 검사는 매우 보편화되어 있으며, 대부분 방사성불소(F-18)를 사용하지만 원리는 Cu-64와 유사하다. Cu-64를 만들 수 있다면, 생체 내에서 구리가 관여하는 과정을 정밀하게 영상화할 수 있다. 또한 Cu-64를 특정 단백질과 결합해 체내에 주사하면 그 단백질의 역할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만약 그 단백질이 암이나 치매와 관련되어 있다면, 질병의 원인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질병의 조기 발견과 치료 평가에 큰 도움을 준다.

  X-선생은 한국원자력의학원에 합류한 뒤 사이클로트론을 이용해 Cu-64 생산에 성공했다. 연구 성과의 순위를 굳이 따지자면 — X-선생도 한국 사람이라 순위를 좋아한다 — 국내 최초였고, 세계적으로는 3~5번째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만 해도 국내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아 “정말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이 많았다. 그러나 결국 Cu-64를 만들어냈고, 그 다음은 더 어려운 질문이 남았다. “Cu-64를 얼마나 팔아야 할까?”

 

<유방암 환자에게 방사성동위원소 구리-64를 주사해 유방암 발병과 치료효과를 정밀하게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 개발, 한국원자력의학원, 2017년>

 

  직접 판매할지, 기업에 기술이전할지 고민이 컸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이 기술을 활용할 기업도, 병원도, 연구소도 없었다. 결국 연구소 내부 논의 끝에 핵의학 기술 발전을 위해 국내 연구자들에게 비상업적 연구 목적에 한해 Cu-64를 무상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이 개념을 기반으로 연구사업을 제안했고, 한국연구재단 공모사업에도 선정되었다. 그렇게 Cu-64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이를 통해 Cu-64가 더 빠르게 임상에 적용되고, 국내 연구자들이 새로운 기술과 상업적 모델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챗지티 전략’과도 비슷하다. 데이터가 모여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고, 그것이 또 다른 시스템을 만드는 연속적 연구 생태계가 구축된 셈이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내년이면 X-선생이 Cu-64를 고안하고 실험한 지 10년이 된다. 그동안 Cu-64 기반 의약품 3건이 임상시험에 진입했고, 이를 바탕으로 주변 기술을 개발해 상업화한 연구자도 있었다. Cu-64를 활용해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들도 다수 배출되었으며, Cu-64 단일 주제로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국내 논문은 2025년 11월 기준 98편에 이른다. 무엇보다 Cu-64는 사이클로트론을 활용한 새로운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개발에 큰 영감을 주었고, 이를 계기로 많은 젊은 과학자들이 의학 연구의 길로 들어섰다. 그렇다면 Cu-64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일까. 연구소는 Cu-64를 판매하지 않았지만, 생명을 지키고 연구자를 양성하며 파생 기술을 만들어낸 그 가치는 쉽게 계산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것이 바로 공익 R&D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연구하지만, 또 누군가는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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