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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9월호
염치(廉恥), 의지(Wille)• 그리고 과학
한국원자력의학원 책임연구원 조일성2025-09-08

• 쇼펜하우어에게 있어서 "의지"(독일어: Wille)란 개념은, 일반적인 의미의 뜻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다른 맹목적인 감성인, "욕망", "갈구함", "추구", "노력", "고집"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위키페디아)

 

  염치(廉恥)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말한다. 여기에서 염(廉)은 ‘청렴할 렴’ 이라는 한자로 마음에 탐욕이 없다는 의미이다. 치(恥)는 '부끄러울 치'라는 한자로, '부끄럽다'를 뜻한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얌체”는 "염치 있는 체(척) 하다." 또는 "얌치 있는 체(척) 하다."가 축약된 말이다. 얌체가 남의 몫을 슬그머니 차지하는 가벼운 무염치라면, 염치가 없는 상태를 몰염치 혹은 파렴치라고 한다. 몰염치 혹은 파렴치가 일상이 되면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된다. 후안무치는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음을 말한다. 말 그대로 '얼굴에 철판 깔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서는 최소 기준 가운데 하나가 염치(廉恥)다. 염치는 단순한 도덕 지침이 아니라, 공동체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감각기관이다. 염치가 사라진 곳에서는 규범이 무력화되고, 신뢰는 기만으로 대체된다.

 

  과학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최근 언론은 “조작된 논문을 대량 생산·판매하는 ‘논문 공장’이 출판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보도를 전했다[1.2]. 연구자가 직접 실험하지 않고 결과를 외부에 ‘대체’하는 행위는 곧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며, 연구자의 이름으로 남지만 사실상 연구를 가장한 외주일 뿐이다. 또 다른 보도는 한 국립대 교수가 수년간 학생들의 인건비와 연구수당을 가로챘다는 사실을 전했다[3]. 다른 대학에서도 학생 장학금과 연구지원금을 유용해 교수들이 약식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심지어 “대학원생은 교수의 노예”라는 자조 섞인 말이 언론 기사 제목으로 등장할 정도다[4-5].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권위 남용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학생을 가스라이팅하며 인격과 노동을 착취하는 무염치의 전형이다. 더 극단적인 사례로는 허위 발표와 동료 비방이 있다. 일본의 STAP 세포 사건 역시 재현 불가와 기관 조사 끝에 ‘연구부정’으로 확정되었고, 논문은 전량 철회되었다[6]. 유럽의 파올로 마키아리니 사건에서는 실험적 수술을 강행한 데다 내부 고발자를 공격하는 보복 논란까지 일어났다[7]. 허위 성과를 포장하고 이를 지적하는 동료를 비방하는 행위는 학문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린다.

  이 세 가지 사건은 다른 듯 닮아 있다. 모두 ‘욕심’이 부끄러움을 삼켜버린 결과라는 점에서 그렇다. 과학은 진실을 향한 탐구이지만, 순간의 욕망과 탐욕이 개입하면 금세 무너져 버린다.

 

  여기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중요한 통찰을 준다. 그는 세계의 근본을 “맹목적 충동으로서의 의지”라 했지만, 동시에 무분별한 의지는 단지 욕망의 분출일 뿐이라고 보았다. 그의 유명한 명제 ― 세계는 의지이자 표상 ― 는 염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열쇠다. 의지는 멈출 줄 모르는 충동의 핵이며(“원함” 자체), 표상은 우리가 사물을 거리 두어 바라보게 하는 인식의 장치다. 인간에게 염치가 가능한 이유는 바로 이 표상 능력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 규범, 공동체의 기대를 내면으로 불러와 나의 욕망을 비춰보는 순간, 마음속에 ‘부끄러움의 계기판’이 켜진다. 의지가 가속페달이라면, 염치는 계기판과 브레이크다.

 

  물론 인간에게는 불변적 성격이 있기도 하다. 본성을 통째로 바꾸긴 어렵다. 그러나 지식과 습관은 ‘어떤 동기가 먼저 말하게 할지’의 우선순위를 바꿀 수 있다. 반복되는 공개·검증 루틴은 높은 동기를 기본값으로 만들고, “성공담”보다 후회담·발각담을 공유하는 문화는 초기값을 다시 세팅한다. 결국 염치는 도덕 감정이자, 절차와 습관으로 구현되는 기술이다. 염치없는 ‘의지’는 더 이상 인간의 의지가 아니다. 그것은 표상이 닫힌 채 본능이 돌진하는 동물적 감각의 폭주일 뿐이다. 반대로 염치 있는 의지란 욕망을 없애는 금욕이 아니라, 욕망을 표상과 연민의 빛 아래 재배열하여 높은 동기가 먼저 발화하도록 설계하는 결단이다.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결과를 외주로 꾸미거나, 학생을 소모품처럼 부리거나, 허위를 포장한 뒤 동료를 비방하는 행위가 왜 동물적 감각이 폭주한 사례가 되고 부끄러운지 — 그리고 어떻게 미연에 막을 수 있는지 — 이제 우리는 철학적·제도적 언어로 설명하고 실천할 수 있다. 이제 남은 일은 단순하다. 염치없는 의지를 경계하고, 염치 있는 의지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학문을 인간답게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기술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그 의지를 이성·도덕·염치로 조율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지식은 결국 스스로 무너지고, 부끄러움을 아는 의지만이 학문과 사회를 함께 지탱한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맹목적 충동을 넘어선 염치 있는 의지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과학을 과학답게 지켜낼 것이다.

 

[1]“조작 논문을 대량 생산·판매하는 ‘논문 공장’…” (동아사이언스, 2025.08.05)

[2]“논문 공장·편집자·브로커 얽힌 조직적 사기” (조선일보, 2025.08.05·06)

[3]“국립대 교수, 학생 인건비·연구수당 수년간 가로채” (정책브리핑·국민권익위, 2025.06.25)

[4] “대학원생 인건비·장학금 유용, 서울대 교수들 약식기소” (경향신문, 2021.09.23)

[5] “사흘에 한 번꼴 교수 갑질 제보” (머니투데이, 2019.06.07)

[6] “STAP 세포, 연구부정 확정” (RIKEN 발표, 2014.04.01.; 조선일보, 2014.03.13)

[7] “인공기관 이식 실험으로 3명 죽인 伊 외과의, 징역 30개월 선고돼” (뉴시스, 20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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