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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5월호 음악이 뇌를 감동시키는 경로, PET으로 최초로 그려내다 | 핵의학분과 세부편집장, 핵의학 과장 변병현 | 2025-0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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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율의 순간, 뇌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은 있다. 음악 한 소절이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눈시울이 붉어지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몰려오는 그 찰나. 하지만 그 찰나는 과연 뇌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가능한 걸까?
핀란드 투르쿠 PET 센터 연구진은 그 물음을 방사선의학으로 풀어냈다(참고논문: Vesa Putkinen 등, "Pleasurable music activates cerebral µ-opioid receptors: a combined PET-fMRI study." Eur J Nucl Med Mol Imaging. 2025 Apr 4). 이들은 [¹¹C]carfentanil이라는 μ-opioid 수용체(MOR) 특이적 방사성 리간드를 사용해, 음악이 뇌의 쾌락 회로를 어떻게 자극하는지를 세계 최초로 PET 영상으로 포착했다. 음악 감상 중 변화하는 MOR 수용체의 결합 능력을 측정했고, 그 결과는 명확했다. 음악은 음식이나 성적 자극과 같은 생물학적 보상과 동일한 방식으로 뇌를 감동시킨다. 특히 nucleus accumbens를 포함한 뇌의 보상회로에서 MOR의 활성 변화가 관찰되었고, 피험자들이 보고한 ‘소름(chills)’의 횟수는 이 수용체 변화와 직접적인 연관을 보였다. 음악이 단지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분자적 쾌락 회로를 자극하는 강력한 자극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였다.
감정의 민감도는 결국 수용체의 농도로부터
음악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울리지 않는다. 같은 선율을 듣고도 누군가는 감동에 젖고, 누군가는 아무런 반응 없이 지나치곤 한다. 그 차이는 과연 감성의 문제일까?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뇌의 MOR 수용체 분포, 즉 개인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baseline MOR tone’이 음악에 대한 뇌 반응의 강도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로 드러났다.
기초 MOR 활성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orbitofrontal cortex, anterior cingulate cortex, insula, auditory cortex 등 감정과 감각을 통합하는 주요 영역에서 더 뚜렷한 BOLD 반응을 보였다. 이로써 음악 감상의 주관적 깊이조차도, 뇌 내 수용체의 상태라는 분자적 기반 위에서 설명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감성도 결국 신경생물학의 일부라는 사실, 다소 낭만을 깨뜨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감동의 순간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해준다.
방사선의학이 그려낸 감정의 지도
이번 연구의 의의는 단순히 음악이 MOR 시스템을 자극한다는 데 있지 않다. 음악이라는 비생물학적 자극이 뇌의 보상 회로를 활성화하는 과정을, PET을 통해 최초로 분자 수준에서 영상화 했다는 사실 자체가 방사선의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다. PET은 더 이상 질병만을 추적하는 기술이 아니다. 이제는 인간의 감정, 쾌락, 정서 반응까지도 세밀하게 포착하는 도구로 확장되고 있다.
더 나아가 MOR 시스템은 통증 조절, 정서 안정, 사회적 유대감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음악이 갖는 치유적 효과에 대한 분자신경영상학적 근거를 제공하며, 음악 기반의 정서 치료, 통증 조절, 우울증 완화 등의 임상적 응용 가능성까지도 시사한다. 우리가 음악에 감동하는 순간들, 그건 단순한 취향이나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뇌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화학적 반응이다. 그리고 PET은 그 반응을 이제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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