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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2월호 트럼프 2기, 방사선의학은 어디로? | 핵의학분과 세부편집장, 핵의학 과장 변병현 | 2025-0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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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에 다시 취임하면서, 방사선의학 분야도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미 1기 행정부 시절부터 강조해 온 ‘에너지 안보와 의료 안보’ 기조는, 이번에 에너지부 장관으로 재지명된 릭 페리를 통해 더욱 구체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 기조의 핵심은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및 공급 체계를 자국 내에서 확고히 마련하고, 핵의학 진단·치료 절차를 간소화함으로써 의료 현장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동위원소 자립과 규제 완화: 기대와 우려
우리 핵의학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해외 노후 원자로에 의존하던 Mo-99나 I-131, Lu-177 등 필수 동위원소를 미국이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려는 움직임이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느냐에 있다. 과거 캐나다 NRU 원자로가 갑작스레 가동을 멈춰 대규모 검사 스케줄이 취소됐던 사례처럼, 미국 역시 동위원소 공급망 불안에 여러 차례 직면했었다. 만약 이번 2기 행정부가 규제 절차를 단순화하고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다면, Mo-99나 I-131뿐 아니라 차세대 방사성동위원소인 Ac-225, At-211 같은 알파선 방출 핵종의 안정적 확보에도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규제 완화 기조가 한층 강화되면, 알파선 방출 치료제나 양성자·중입자치료 장비의 인허가와 임상 적용에 드라이브가 걸릴 가능성도 높다. 1기 때 NRC(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임명된 산업 친화적 인사들이 의료 방사선 허가 절차 단축을 강조해왔기에,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면 실제 도입이 가속화될 수 있다. 다만 과거 Therac-25 방사선치료기 오작동 사건에서 확인되듯, 안전장치가 허술해질 경우 환자에게 직접적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우려도 꾸준히 나온다. 급격한 혁신과 안전이 충돌할 수 있는 지점이다.
AI와 방사선치료: 혁신의 가속화
여기에 최근 떠오르는 인공지능(AI) 접목 기술은 또 다른 화두다. AI를 활용해 PET·CT 영상을 자동 판독하거나 방사선치료 계획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하는 시도가 이미 여러 암센터에서 진행 중이다. FDA가 인공지능 의료기기 승인 절차를 유연하게 운영하면, 혁신적 소프트웨어가 방사선치료 현장에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기대가 고조된다.
관건은 NIH나 NCI 연구예산이 어느 정도 늘어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방사선의학은 기초과학·임상연구·산업이 긴밀히 연결되어야 발전할 수 있는 종합 학문이기에,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 여부가 기술 발전의 속도를 좌우한다. 1979년 스리마일섬 사고 뒤에 정치권이 원자력 분야를 대폭 축소하며 방사선연구 예산이 함께 줄어들었던 사례가 있다는 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방사선의학 자립”을 내세워 예산을 적극 투입한다면 Ac-225, At-211과 같은 혁신적 동위원소나 AI 기반 치료기술 연구가 활발해질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이 분야가 다시 주춤할 수 있다.
우리나라 방사선의학에의 시사점
한편, 우리나라 방사선의학 연구자들도 미국 정책 변화가 단순히 해외 소식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내 역시 Mo-99 수입 비중이 높아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면 임상 현장에 심각한 타격이 발생한다. 미국이 동위원소 생산·분배 구조를 새롭게 재편하려 한다면, 글로벌 시장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AI 기반 방사선치료나 중입자치료 장비에 대한 인허가가 미국에서 크게 완화되면, 국내에서도 같은 트렌드가 가속될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우리도 안전성 평가와 임상시험 인프라를 얼마나 탄탄히 준비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결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방사선의학 분야에서 시행할 정책들은, 혁신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안전·윤리 체계를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따라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과거 아이젠하워 시절 ‘Atoms for Peace’가 미국 방사선의학의 황금기를 열었던 반면, 체르노빌·후쿠시마 등의 원전 사고로 인해 대중적 공포심이 커지고 연구 지원이 뒤로 밀린 사례도 있다. 새 행정부가 그 두 가지 역사를 어떻게 조화롭게 수용하느냐가 이번 국면의 핵심이며, 우리나라 방사선의학계도 이를 주시하면서 기회와 위험 요소를 함께 분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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