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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의 시대를 지금 준비해야 하는 이유핵의학분과 세부편집장, 핵의학 과장 변병현2022-08-02

  원자단위의 미시세계에서는 인간의 경험적인 일상세계와는 전혀 다른 물리법칙이 작용하고 있는데, 양자역학이 그것이다. 양자역학에 따라 미시세계에서 물질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는 ‘중첩’ 현상과 두 입자 중 하나의 상태가 결정이 되면 다른 입자의 상태가 시간과 거리에 관계없이 함께 결정되는 ‘얽힘’ 현상이 일어난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조차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고 했을 정도이니,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논의는 미루어 두기로 하자. 중요한 것은,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중첩’과 ‘얽힘’이라는 현상을 이용해서 기존의 어떤 슈퍼컴퓨터보다도 압도적인 계산능력을 갖춘 양자컴퓨터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양자컴퓨터란?

  컴퓨터는 0과 1의 2진법으로 표시되는 비트를 기본 단위로 순차적인 계산을 하므로, 비트가 늘어날수록 계산 능력이 산술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와 달리, 양자컴퓨터는 0과 1의 중첩상태인 양자비트 즉 큐비트를 기본 단위로 계산하게 되는데, 중첩상태를 활용하여 병렬계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큐비트가 증가할수록 계산 능력이 지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즉, 일정 큐비트 이상에서 양자컴퓨터의 연산 능력은 현존하는 2진법 체계의 컴퓨터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소위 ‘양자우위’를 보이게 된다. 예를 들어,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현존하는 지구 최강의 컴퓨터로도 우주의 나이보다 오랜 계산 시간이 소요되는 극도로 복잡한 암호체계를, 불과 1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풀어버릴 수도 있다.

  물론, 양자컴퓨터가 모든 경우에서 2진법 컴퓨터보다 우수한 것은 아니다. 양자컴퓨터는 기본적으로 중첩상태로서 아날로그적 특성을 가진 큐비트를 이용하기 때문에, 큐비트 당 오차범위가 매우 크며 이를 보정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기술적으로 실현하기 어렵다. 또한, 병렬계산이 아닌 순차적인 계산과정의 경우에는 2진법 컴퓨터보다 계산능력이 떨어지고, 지속시간이 극히 짧은 큐비트의 특성 상 정보의 저장방법으로는 부적절한 단점이 있다. 큐비트의 지속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극초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실제 이용에서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양자컴퓨터, 언제쯤 쓸 수 있나?

  여러 제한점에도 불구하고, 양자컴퓨터를 실용화하고자 하는 노력은 전지구적이라고 부를 만하다. 미국은 백악관 산하에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 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 중이고, 중국은 ‘양자굴기’를 외치며 전국가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1년부터 과학기술 자문회의 산하에 양자기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양자컴퓨터 선도기술 국가들을 추격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1,000큐비트 이상의 양자컴퓨터를 오류문제를 해결한 상태로 이용할 수 있으면 특정 분야에서 일반컴퓨터에 비해 ‘양자우위’를 보이고, 10만 큐비트 이상에서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양자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양자컴퓨터 기술 면에서 가장 앞서 있는 기업으로는 미국의 IBM을 꼽을 수 있는데, 이 회사는 현재 2022년 현재 127큐비트의 범용 양자컴퓨터 프로세서를 보유하고 있고, 2026년 오류문제를 해결한 1,000큐비트의 양자컴퓨터를 선보일 계획을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2026년에 이 정도 수준의 기술에 도달하게 되면, 10만 큐비트 수준의 양자컴퓨터는 2030년 정도에 선보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30년 이후에는 병렬계산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실제로 양자컴퓨터가 광범위하게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매우 비싸고 유지에 어려움이 있는 양자컴퓨터의 특성 상, 초기에는 선도기술을 보유한 양자컴퓨터 서비스 제공업체에 사용자들이 특정 계산을 요청하여 결과물을 받는 형식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양자컴퓨터가 몰고 올 바이오 혁명

  양자컴퓨터의 가장 큰 강점은 병렬형 계산을 압도적인 속도로 수행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변수들이 상호작용하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계산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과정이다. 하나의 변수가 늘어날 때마다 계산과정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는데, 기존의 순차적인 2진법 컴퓨팅 방식은 이 지점에서 약점을 보인다. 예를 들어, 무수히 많은 후보물질 가운데 최적의 신약후보물질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후보물질 자체의 특성은 물론 주변 환경과 어떤 상호작용을 할 지 예측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병렬형 연산이 가능한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획기적으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먼 훗날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론적으로 양자컴퓨터가 사람 몸의 여러 특성을 모두 변수로 고려하여 계산한다면, 신약후보물질을 양자컴퓨터만을 이용해서 가상의 임상시험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다수의 양자컴퓨터를 가동시켜 놓기만 하면 컴퓨터 스스로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하고 가상의 임상시험까지 수행해서 최적의 신약후보물질까지 알려줄 수 있는 시대도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양자컴퓨터가 패러다임을 바꾸어 줄 수도 있다.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의사들의 진료를 보조하는 프로그램이 상용화된 바도 있지만, 실제 임상현장에서 보편화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고려해야 하는 변수들이 너무 많고, 진료 보조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변수들을 모두 반영하고 있지는 못하므로 결국 최종 단계에서는 임상의사 개인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다룰 수 있는 변수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지므로, 예를 들어 변수로 고려하기 어렵거나 애매했던 영상자료나 다양한 실험실 검사, 각종 참고문헌과 가이드라인들을 총 망라하여 결과물을 내주므로, 기존 진료보조프로그램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방사선의학 분야에서는 대표적으로 방사선치료 계획에서 양자컴퓨터의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암이 있는 부위와 주변 장기에 어느 세기와 간격으로 방사선을 조사할지에 대해, 암, 주변 장기상태, 환자 상태 등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한 최적화된 프로토콜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양자컴퓨터로 기존방법 대비 약 10%의 불필요한 방사선량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보고도 있다.

  양자컴퓨터는 아직까지 기술적으로 극복해야하는 부분이 많은 기술이지만, 그 이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때문에 차세대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기술로 손꼽히고 있다. 양자컴퓨터기술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 혁명적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계획을 세우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는 달리 실용화 초창기에는 이용하려는 수요 대비 공급이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방사선의학 분야 중에서도 어떤 미해결 문제를 먼저 양자컴퓨터로 도전해볼지 지금부터 여러 연구자들이 논의해야할 시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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