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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즐길 줄 아는 두 사람김정영2015-12-16

 

 

김정영(선임연구원, 한국원자력의학원)

 

  물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리차드 파인만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남겨진 강의록은 묶여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책이 되었고, 이 책의 명성에 맞게 물리학 입문서로 탁월하다. X-선생 또한, 대학시절 에 양자물리학 공부하면서 너무나 힘겨울 때 리차드 파인만의 책을 읽고,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 등을 쉽게 이해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강렬하게 남아있다. 이와 같이 물리학 선생으로 메시아 같은 리차드 파인만의 강의가 유명해진 것은, 그가 지향했던 과학자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과학을 즐거운 상상과 장난으로 유쾌하게 일상과 비유하고 은유하는 강의는 과학을 삶의 영역으로 너무나 손쉽게 가져온다. 또한 최첨단 물리학의 개념을 수학이나 전문용어 없이 자연스럽게 이해시키는 그의 강의는 얼마나 많은 현상을 연구하고 고민했는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그는 1965년에 양자전기역학의 이론체계를 완성한 공로로 줄리안 슈윙어’, ‘도모나가 신이치로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논문 쓰기보다 연구와 강의를 즐겼던 그는 수상을 망설였지만, 노벨상을 거부하면 더 유명해진다는 충고를 듣고 수상을 결정했다고 한다. 노벨상 이후 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그 전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모아졌겠지만, 그는 평상시 좋아했던 대학 강의와 연구에 집중하며 걸어왔던 길을 다시 즐겁게 걸었다.

 

  또 한 명의 과학자 여기에 있다. 학부에서 전자파와 안테나 공학을 전공하고, 시마츠 제작소에 입사하여 화학분석 관련 기술연구를 했다. 그는 제2회 일본-중국 질량분석 심포지엄에서 레이저에 의해 단백질을 기화 또는 검출하는 소프트 레이저 이탈 이온화법을 매우 조용한 연구초록을 발표하였고, 이것은 훗날 생명과학 분야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단백질의 질량을 측정하는 ‘MALDI-TOF’ 질량분석장치로 발전하였다. 이에 대한 공로로 2002다나카 고이치는 노벨 화학상을 존 펜’, ‘쿠르트 뷔트리히와 함께 수상하였다. 그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스타 연구자가 되었지만, 본인의 회사에 남기를 희망하였고 정부나 대학으로부터 받은 여러 제안들을 거절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인상 깊은 방문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4대한화학회 추계 학술대회에 초청 받아 강연을 했지만, “대중 앞에 자꾸 나를 드러내다 보면 연구를 제대로 못하고 일찍 은퇴할 수밖에 없다라는 이유와 유명세를 타지 않아야 70-80세까지 연구원으로 현장에 남을 수 있다라는 소신으로 학회 차원의 일체 초청비와 혜택을 거부했다.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최근에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그는 혈액으로 알츠하이머 징후를 판정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고 열심히 연구 중에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과학계에서 위의 두 사람은 일반적이지는 않다. ‘리차드 파인만처럼 강의와 연구에 몰입하며 논문과 책을 잘 쓰지 않는 교수가 우리나라 대학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말 우리 시대에 필요한 선생님임이 틀림없다. 그는 산업계나 정부 정책에 편승하여 연구를 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하고, 그것을 다른 젊은 과학도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의 학생들이 오늘날 미국을 과학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손쉬운 양자물리학을 만들어 미국인들의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였고, 그들의 키드들은 곳곳에 퍼져 과학을 이해하는 사회로 만들었다. 솔직히 부럽다. 우리나라에도 리차드 파인만과 같은 과학자가 나올 수 있을까? 그가 배고프지 않고 그의 지식을 모두 미래의 과학도들에게 온전히 전달 수 있는 체계가 우리나라에는 존재할까? 현재 우리나라의 과학계는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좋은 논문을 많이 내는 과학자들이 많아져서 웬만큼 국제학술지에 게재되더라도 놀라지 않는다. 이제는 정부 연구과제나 대학교수직 응모 등에서 사이언스, 네이처, 셀 등과 같이 평생 연구해도 연구주제와 분야에 따라 게재가 어려운 국제학술지를 당연시 요구하는 조건이 동반되기도 한다. 이처럼 과학학술논문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좋은 논문(인용지수가 높은 점수를 가진 논문)을 내지 않으면 과학자로서 설 곳이 없다. 심지어 적은 논문 수는 연구를 하지 않는 과학자로 낙인 찍혀 직업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주변의 연구자들도 국제학술지에 실리기 위해 연구한다는 푸념도 자주 듣는다. 우리나라에서 리차드 파인만의 책은 청소년 권장도서이며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지만, 과학계 연구현실은 그의 강의와 너무 다르다.

 

  또 다른 과학자 다나카 고이치를 본다. 그는 유명 대학출신도 아니고 학부만 나온 실험실의 연구자이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성실성과 애착으로 단백질을 측정하는 질량분석기술을 개발하였다. 그의 학창시절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다. 너무나 평범해서 뚜렷하게 내세울 것이 없다. 우리나라에도 다나카 고이치와 같은 과학자가 나올 수 있을까? 그의 도전 정신에 기꺼이 후원할 산업체나 정부가 있었을까? 그가 배고프지 않고 학벌을 떠나 자신의 직업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연구에 몰입하는 체계가 우리나라에는 존재할까? 현재 우리나라의 과학계는 박사학위를 받고 평균 40세 전후로 해서 산업체나 출연 연구소의 정규직 연구원이 된다. 그 전까지는 학생 또는 계약직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는 무척 힘들다. 특히 남자들 같은 경우, 병역의 의무까지 포함되어 늦은 나이에 과학계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 과학자의 능력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고 학력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것은 과학자가 가장 많이 알고 있음에 불구하고, 이미 우리나라 과학계는 엘리트 중심 연구체계로 만들어져 있다. 과학을 즐기면서 결과를 내는 늦깎이 과학자들의 출몰은 기대하기 어렵다.

 

  두 과학자는 대학과 산업계에서 과학을 즐기면서 연구한 대표적인 과학자이다.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와서 같은 연구결과를 낼 수 있다고, 우리 스스로 자신 있게 단언할 때 우리나라의 과학계가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과학이 멀리 있다는 느끼는 사람이나 과학자라는 직업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은 두 사람의 발자취를 읽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다음 세대에게 과학을 즐기면서 하는 풍토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과학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두 과학자가 걷는 모습 뒤에 그림자가 너무나 아름답고 씩씩하게 보이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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