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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호
RCARO*-ASEANTOM**과 함께하는 방사선 비상대응 협력사업
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보건물리팀 윤석원2026-09-08

* RCARO(Regional Cooperative Agreement Regional Office): IAEA 아시아·태평양 지역협력협정(RCA)의 지역사무소로, 역내 원자력·방사선 관련 기술협력 사업의 기획과 조정을 담당한다.
** ASEANTOM(ASEAN Network of Regulatory Bodies on Atomic Energy): ASEAN 회원국의 원자력 규제기관들로 구성된 역내 협의체로, 원자력·방사선 안전 및 비상대응 관련 정책과 기준을 조율하고 협력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6월, 태국 방콕에 있는 원자력청(Office of Atoms for Peace, OAP)을 방문했다. 건물 정면에는 "아토뭄 카 60피, 사무낙 프라모누 프아 산티(อาคาร 60 ปี สำนักงานปรมาณูเพื่อสันติ)", 우리말로 옮기면 'OAP 창립 60주년 기념관'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 태국의 원자력 안전 행정이 벌써 60년의 역사를 쌓아왔다는 뜻이었다. 그 오랜 역사 앞에서 낯선 긴장감이 들었던 것도, 잠시 실무 협의 자리에서 OAP 소속 연구원 한 명이 이렇게 물었다.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는 어떻게 방사선 비상대응 분야에서 이런 노하우를 쌓을 수 있었나요?"

 

  솔직히 이 질문을 받고 잠깐 멈칫했다.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오히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는 2016년 IAEA(국제원자력기구)로부터 역량강화센터(Capacity Building Center)로, 2017년에는 WHO(세계보건기구)로부터 방사선 재난의료 분야 협력센터(Collaborating Center)로 각각 지정받았다. 이 두지정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자, 그 연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서 저희가 안심하고 배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한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국제기구의 인정이라는 것이 단순한 타이틀이 아니라, 상대국의 신뢰를 만들어내는 실질적인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 글에서는 태국 OAP에서 겪었던 이 경험을 계기로,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가 주도하고 있는 ASEAN 국가들과의 방사선·원자력 비상대응 협력사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태국 OAP에서 개최한 Expert mission>

 

위기감에서 출발한 협력: 왜 지금 ASEAN인가

  아시아 지역의 원자력·방사선 시설 지형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는 물론, 건설 중이거나 앞으로 건설이 확정된 시설까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ASEAN 역내에는 아직 상업용 원전이 없지만, 다양한 출력의 연구용 원자로가 여러 나라에서 운영되고 있고, 일부 인접국의 원전은 ASEAN 국경 바로 근처 위치에 있다. 즉, 사고가 한 나라에서 일어나더라도 그 영향은 국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ASEAN 국가들이 공동으로 방사선 비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실제로 ASEAN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해 보니, 상당수가 "비상시 환경방사선 감시 및 환경시료분석" 역량이 가장 시급하다고 답했다. 휴대용 측정기는 물론 감마 분광분석시스템, 액체섬광계수기(LSC) 등 상당한 장비도 이미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많았다. 문제는 장비가 아니라 그 장비를 사고 상황에서 신속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실전 경험과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이었다. 즉, 하드웨어는 있는데 그것을 살려 쓸 소프트스킬이 부족했다.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2020년부터 3단계에 걸쳐 "ASEAN 지역 원자력·방사선 비상대응 역량 강화"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한-ASEAN 협력기금과 RCA 지역사무소(RCARO)가 공동으로 지원하는 이 사업은, 단계를 거듭할수록 실질적인 기술 이전과 전문가 교육의 폭을 넓혀왔고, 지금은 ASEAN 전역에 걸친 하나의 방사선 비상대응 네트워크를 만드는 단계에 이르렀다.

 

6년의 여정, 그 안에 담긴 활동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지난 2년간 여러 갈래의 협력 활동을 통해 착실히 성과를 쌓아왔다.

현장형 지역교육과정(RTC): "방사선 선량평가", "환경방사능 신속측정 기법"을 주제로 단계별 교육과정을 운영했다. 특히 이 교육을 이수한 전문가들이 각자 자국으로 돌아가 자체 기술지침서와 절차서를 만들어 실무에 활용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지식이 교육과정에서 끝나지 않고, 현지 실무자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퍼져나간 것이다.

기술 가이드라인 개발: "환경 및 공중 방사능 측정·선량평가 가이드라인"이 이 사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시료 채취·전처리, 핵종 측정, 선량평가 기법과 활용 가능한 소프트웨어 정보까지 아우르는 이 가이드라인은, 역내 전문가들의 초안을 바탕으로 여러 차례 의견 수렴을 거쳐 ASEAN의 실정에 맞게 다듬어졌다.

태국 OAP 전문가 파견: 2026년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한국원자력연구원(KAERI)·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이 태국 OAP를 방문했다. 목적은 하나였다. 태국이 자체적으로 지속 가능한 국가 표준연구소(National Reference Laboratory)를 세울 수 있도록 로드맵을 함께 그리는 것. 앞서 소개한 그 질문과 대화가 오갔던 바로 그 현장이다.

아시아 전문가 기술네트워크 구축: 아시아방사선선량측정그룹(ARADOS) 연례 워크숍과 연계해 중간·최종 검토회의를 개최하며, 역내 비상대응체계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보완해 왔다.

 

<지역교육과정(RTC)에서 진행한 실험실습과정>

 

11월,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에서 열리는 지역교육과정

  이 프로젝트의 다음 이정표는 이미 정해져 있다. 2026년 11월 2일부터 6일까지,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에서 "방사선 비상대응을 위한 방사선 탐지 및 선량평가 지역교육과정(RTC)"이 열린다.

이 교육은 단순한 강의가 아니라, 4단계로 설계된 하나의 완결된 역량강화 체계다.

1. 기획(7~8월): ASEAN 규제기관의 실제 수요를 반영한 이론·실습 혼합 커리큘럼 설계

2. 준비·진단(9~10월): ASEAN 각국에서 15~17명의 참가자를 선발하고, 온라인 사전조사로 현재 기술 수준과 보유 장비를 파악

3. 대면 교육(11월): 5일간의 집중 현장 실습과 현장훈련 참관

4. 후속관리(12월): 교육 이수자들이 실무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추적하고 최종 효과를 평가

 

  교육 내용은 실전 그 자체다. 참가자들은 원자력/방사선 비상시 오염/비오염 상해자를 분류하는 선별검사 훈련을 참관할 예정이다. 또한 차량이 접근할 수 없는 지역에서는 백팩형 감시장비를 착용해 선량률 지도를 그리고, 드론을 이용한 공중 방사선 감시 기법까지 참관할 예정이다. 사고지역의 환경방사선 탐지현장까지 참관하여 국내 방사능방재 역량을 종합적으로 관찰할 예정이다.

  이 교육과정의 하이라이트는 새울원자력발전소 인근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현장훈련 참관이다. 참가자들은 지진으로 인한 정전과 방사선 누출 상황을 가정한 국가 합동 방사선 비상대응훈련을 직접 지켜보게 된다. 경찰과 지자체, 소방이 어떻게 협력하는지, 의료진이 얼마나 신속하게 상해자 대응활동을 전개하는지, 오염환자 제염 절차(탈의-샤워-국소세척-재측정)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눈으로 확인한다. 마지막 날에는 각국 대표가 이 교훈을 자국 표준운영절차(SOP)에 어떻게 반영할지 담은 '실행계획'을 발표한다.

 

 

<비상진료훈련에서 오염검사를 하고 있는 요원들>

 

맺음말: 단순한 장비 지원을 넘어

  지난 6월의 태국 파견도, 11월의 지역교육과정도 따로 떨어진 이벤트가 아니다. 이 모두는 2020년부터 3단계에 걸쳐 이어져 온 하나의 큰 그림, ASEAN-Korea EPR 프로젝트 안에서 계획된 활동들이다. 앞으로도 고급 방사선/능 측정 교육과정, 다른 ASEAN 국가로의 전문가 파견, 방사능 분석 숙련도시험, 아시아 전문가 기술네트워크 협의체와 공동 워크숍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RCARO와 ASEANTOM 간의 든든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이 사업은 장비를 나눠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지식을 공유하고, 방법을 표준화하고, 잘 훈련된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를 하나로 엮음으로써, 스스로 지속 가능한 방사선 비상대응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신뢰의 출발점에는, 태국 OAP의 연구원이 던졌던 질문에 답할 수 있었던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의 국제적 위상이 있다. 앞으로도 이 위상에 걸맞게,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안전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그 다리 역할을 계속해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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