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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노트] 세계는 하나, 우리는 친구임일한2015-11-13

임일한 ​(한국원자력의학원 방사선의학정책개발센터)​​

 

  도서관의 퀘퀘한 냄새를 이겨내며 미국에서 일해보겠다고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다. 인턴을 마치고 군복무를 하면서 미국에서 레지던트 수련을 받아보겠다고 미국 전도를 책상 앞에 붙여 놓고 공부를 하였었다. 당시 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식힐겸 우연히 손에 들어온 책 중 심리학에 관한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일본 심리학자가 쓴 책이었는데, 책 내용 중 미국에서 가장 혐오를 받는 나라 사람은 누구인지 이야기 하던 부분이 있었다. 중국사람이나 유대인들인가 생각하고 책을 계속 읽어 나갔었는데, 책 속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죽 이야기하다가 (사람들이 혐오하는 나라 사람 순으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 기술을 하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가장 혐오하다니. 이 심리학 책의 주 관심사가 이러한 민족적 구분이 아닌 학술적 내용이어서 의도적으로 우리 나라를 폄하하려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이 되었기에, 이런 새로운 관점은 미국에서의 행동에 좀 더 사려 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려운 시절에 이민을 간 한국 사람들이 워낙 생활력있게 살다 보니 미움을 받은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아시아오세아니아 핵의학생물학회(AOCNMB 2015)가 10월 31일부터 11월 4일까지 4박 5일 동안 제주도 국제컨벤션센터(JEJU ICC)에서 개최되었다. 'From Globalization to Localization Young Leadership'라는 주제를 걸고 900 여명의 세계 각지 핵의학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분자영상·방사선치료 등 핵의학과 관련된 최신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힘들게 외국의 학회를 찾아가야 들을 수 있는 대가들의 강의를 편안히 모아서 들을 수 있고, 새로운 아시아 친구들도 사귈 수 있는 좋은 학회였다. 세계 어느 학회보다 매끄럽고 알찬 학회 였다는 생각이고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위상과 능력이 대단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아시아오세아니아 핵의학생물학회장님의 도움으로 세계 핵의학회 앤드류 스콧 회장님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전에 그의 강의를 흥미롭게 들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지금은 새로운 개념의 진단치료 (theragnostic) 영상을 시도하고 있고, cell 과 같은 기초학술지에 출판될 정도의 심도 깊은 연구를 하시는 것을 듣고 부러움이 생겼다. 그는 우리나라를 중요한 파트너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었고, 한국에서의 핵의학 성취를 높이 평가하였다. 특히 자신이 미국 뉴욕의 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에서 연수 기간을 보내면서 연구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이야기하였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나라도 예전의 호주 정도의 여건 이상은 되지 않을까 느낄 수 있었다.

 

  또 다른 인상적인 핵의학의사는 예멘의 Mohammed박사 였다. 히잡을 착용한 젊은 여선생님이 '예멘의 첫 핵의학과' 라는 제목의 발표를 하였는데, 일반적인 발표인 줄 알았더니 경이로움이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강의였다. 2003년부터 IAEA의 프로젝트로 예멘의 대표적인 병원 Al-Thawrah 종합병원에 핵의학과를 설치하는데 뛰어들었던 그녀는 2008년 드디어 첫 환자로 핵의학 진료를 시행하게 된다. 예멘의 첫 핵의학과를 설치하면서 정부 규제기관에서는 방사선에 대한 두려움으로 허가를 주저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2주에 한번씩 정부 5개 기구의 관리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이고 자세한 설명을 필두로 1여년 간의 설득 끝에 정부 허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 그녀의 진료관련 자료 사진들을 보니 차가운 병원의 벽 안에서 핵의학 장비가 운영되고 있었으며, 방사성 동위원소 치료를 위하여 일군의 환자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으며, 실제 병이 진행된 상태로 진단과 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치료하며, 흙먼지 속의 군중을 대상으로 진료를 펼치는 그것도 홀홀 단신으로 뛰어다니는 그녀를 보니 존경심이 절로 생겨났다. 강의의 말미에 새로 PET/CT를 도입하는 준비를 한다고 뿌듯하게 이야기하면서 이것을 한국에서 기증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가슴이 따뜻해 옴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 아니겠는가.

 

  방사선의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가난한 나라의 불모지와 같은 환경 속에서 우리 선배 선생님들께서는 남부럽지 않은 굳건한 방사선의학의 기초를 세워주셨다. 괄목한 성장을 이루어 냈으나, 내부와 외부에서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새로 생기는 규제, 까다로워진 보험급여, 국경을 초월한 무한 경쟁... 국경이 없어진 세계에서 자신의 학문적 탁월성을 뽐내고 기술을 나누어 줄수 있는 것은 영광이다.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핵심 인재가 되기 위하여 매일 매일 갈고 닦아야겠다. 그러나, 이제는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 가서는 안될 것 같다. 내가 일등이 안될 수도 있지만, 주변에 넘어진 친구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덕도 키워 나갈 필요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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