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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노트] 예방의 가치임일한2015-08-17

사진출처: 마이너리티리포트 中 

 

 

임일한 ​(한국원자력의학원 방사선의학정책개발센터)​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아시나요? 2054년 미국 워싱턴과 북부 버지니아를 배경으로, 주인공 탐 크루즈(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 탐 크루즈 형님이다)가 허공에 손가락을 이용하여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작동시키는 장면은 머나먼 미래의 모습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하였다. 이 영화 중 특히나 참신했던 한 부분은, 미래 경찰에는 범죄가 일어날 것을 예견하여 그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는 활동을 하는 부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범인이 살인을 저지르기 1-2초 쯤 전에 경찰들이 출동하여 범인의 코앞에 체포영장을 들이 미는 것이다. '앤더튼씨. 당신은 2054년 8월 15일 당신의 부인인 앤더튼 부인을 살해할 예정이어서 그 직전 체포를 합니다.' 발생할 예정인 범죄를 예방한다는 것은 달콤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건을 미연에 예방한다는 것이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어렵사리 불행한 사건을 미리 예방하는 고귀한 행위를 했을 경우에도, 그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 어떤 사건이 생기기 이전에 이를 예방했을 경우, 과연 이것이 발생할 예정의 일이었는지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학분야에서 자살 예방을 예로 들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가장 심각한 예후상의 문제는 질병 경과 중 우울로 인하여 자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살을 마음 먹은 우울증 환자를 의료진이 각고의 노력 끝에 마음을 돌려 먹게 만들었을 경우, 환자와 의료진은 이러한 큰 변화를 알 수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이를 바라본 사람은 그저 아무 일이 생기지 않는 보통 날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것은 비단 의료뿐 아니라 행정에서도 똑같이 생각될 수 있다.


 2015년 늦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으키는 호흡기감염증, 메르스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가 대한민국을 강타하였다. 2015년 5월 4일 바레인에서 카타르를 거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한 환자에 의해서 시작된 메르스는 16일이 지난 5월 20일에 메르스로 확인된다. 이 후 186명의 확진자가 발생하였으며 그 중 36명의 환자가 사망하였다. 그리고, 메르스가 의심되어 1만6693명의 국민이 병원이나 자택에서 격리되었는데 이는 전체 국민 약 3000명당 1명꼴이었다. 메르스가 우리나라에서 예상을 뛰어 넘는 활개를 친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신종 해외 전염병에 대한 연구 및 대비 부족에 기인한 초기 방역 미흡, 병원내 감염관리 부실 및 후진적 병실 문화, 공공의료시스템과 전문 인력의 부족을 꼽았다. 실제 세상에서 가정은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것을 예상했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철저한 예방을 시도했을 것이다.


 방사선의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예방이 필요한 곳은 없을까? 방사능은 일정량 이상 노출될 경우 발암, 유전적 장해와 불임, 골수 기능 저하 등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방사능의 존재는 사람의 감각으로는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기기를 이용해서 평가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방사능 유출 등의 사태에서는 실제 방사능양의 영향과 더불어 사람들의 공포가 사태 진행에 악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우리는 방사능 재난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가? 우리나라는 2015년 5월을 기준으로 23기의 원전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중국에 이어 세계 6위 수준이다. 덧붙여 중국은 26개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으며 25기를 추가로 건설 중에 있다. 중국의 원전은 대부분 중국 동해안에 설치되어 유사시에는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원전의 개수가 증가한다고 재해가 꼭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철저한 준비는 필수이다.

 
 우리나라는 원자력시설에서 발생하는 방사능 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하여 국가 방사선 비상진료센터를 2002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9년전에 구축한 방사선 비상진료센터의 시설과 장비들로 일본을 방문한 취재진이나 그밖의 환자들을 평가하면서 우리가 선제적으로 준비하여 재난에 대비하게 되었다는데 깊이 안도할 수 있었다. 이율곡 선생의 십만양병설을 미리 실행하고 임진왜란을 맞은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번 메르스 종식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기울인 의료진과 관계자들에게 고마움의 박수를 보내고,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재난들에 대하여 평상시 준비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같은 행성에 사는 동시대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을 막아 주는 일은 세상 그 무슨 일보다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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