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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감염병과 방사선의학한국원자력의학원 김희진, 김정영 공저2020-04-29

  2004년 파리에서 개최된 이후 11년 만인 2015년에 대전에서 OECD 과학기술장관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때 채택된 ‘대전선언문’은 강제성을 띄지 않지만 향후 10년간의 과학기술 정책 방향을 정하기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대전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과학기술혁신은 글로벌 도전과제 해결을 위한 필수요소이며, 과학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투자기회를 제공하고 고용생산성 및 경제성장을 증대시키고 나아가 인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디지털 기술 발전을 통한 생산혁명 및 개방형 혁신, 고령화·감염병 등의 보건 문제 해결에 과학기술혁신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고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민·관·연,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협업과 산·학·연 연계가 필수적이다.”

  대전선언문이 채택되고 5년이 지나 코로나19로 떠들썩한 요즘, 각국에서 쏟아지고 있는 코로나 대응관련 소식들을 접하고 있노라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 과학기술계가 ‘인류 삶의 질 향상’과 ‘감염병 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협업하는 진정한 의미의 과학기술혁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재정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015년 대전에서 개최된 OECD 과학기술장관회의 참석자들1)>

 

  지난 수세기동안 인류는 감염병 정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아직까지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감염병들은 많지만 연구자들의 노력과 과학·의료기술의 발달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그리고 이미 사라진) 감염병들도 존재한다. 바로 천연두와 소아마비 이다.

  천연두는 기원전 3,000년 된 이집트 미라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될 만큼 인류와 함께한 질병이다. 16세기 아즈텍 문명 멸망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으며 인류 역사상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20세기에 전쟁으로 인한 최대 추정 사망자보다 천연두 사망자가 5배 이상 많다는 WHO의 발표도 있을 만큼 인류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는 질병 중 하나였다. 이 천연두와의 싸움에서 인류가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우두법 이다.

  우두법의 개발로 인류는 ‘백신(Vaccine)’ 개념을 도입하여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고 이후 200년여 년에 걸친 천연두 연구와 백신 보급을 통해 WHO는 1979년 천연두 박멸을 선언했다.

  천연두에 이어 박멸이 유력한 질환은 비교적 최근(?)인 1789년에 발견된 소아마비이다. 폴리오바이러스가 원인인 이 질환은 주로 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걸리는 경향이 많아 소아마비로 명명되었으며 완치 된 이후에도 영구적인 운동장애를 남기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원인규명 및 치료연구에 매진하였으나 폴리오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에 원인규명이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1950년대 조너스 소크와 앨버트 세이빈이 불활성화 백신(병원체를 배양 후 열이나 화학약품으로 불활성화)과 약독화 생백신(약화시킨 병원체) 등의 백신개발에 성공하면서 소아마비 백신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고 1988년 기준 37만 명 이었던 소아마비 환자 수는 2019년 기준 336명으로 급감하게 된다.

 




<천연두와 소아마비 정복 주역인 에드워드 제너2), 조너스 소크3), 앨버트 세이빈4)>

 

  그동안 인류는 여러 감염병들을 정복해왔지만 의료기술이 발달한 만큼 신종 감염병들의 진화속도도 빨라져 적절한 대응이 어려워지고 있다. 때문에 감염병 정복을 위해서는 기존의 전염병 연구방식이 아닌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다고 생각한다. 신종 감염병들에 대응 연구에 방사선의학기술이 활용될 만한 분야들은 무엇이 있을까?

 

 

 

  21세기에 등장한 신종 감염병의 대부분은 호흡기 증세를 동반한다. 02년 사스, 09년 신종인플루엔자, 15년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까지 발열, 기침 호흡곤란 등을 동반하기 때문에 객담이나 기타 호흡기 분비물을 통해 진단하게 된다. 하지만 진단키트를 이용한 검사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며 키트 자체의 오류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확진판정을 내리게 된다. 이 때 이용되는 대표적인 의료영상 진단법이 바로 흉부X선 촬영과 고해상도 흉부CT촬영이다.

  일반적으로 흉부X선 영상만으로는 코로나19환자의 폐렴병변을 진단하기 어려워 흉부CT 촬영도 병행하게 되는데, 공기가 대부분인 폐조직의 특성상 일반적인 CT영상으로는 결절이나 폐렴병변이 영상에 잘 나타나지 않아서 고해상도 CT장비로 촬영을 하게 된다. 따라서 보다 적은 선량으로 높은 해상도의 폐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의료영상기기 개발 및 영상처리 알고리즘 연구가 감염병 극복을 위한 중요한 열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밖에도 CT나 일반X선 폐 영상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코로나19의 감염과 병의 진단여부를 판단 할 수 있는 기술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으며 국내의 한 기업에서 개발한 AI 의료영상 분석기술이 상용화 되어 24개국에서 활용 중이다.5)

 

 

 

  방사선을 활용한 살·멸균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방사선으로 세포 DNA를 파괴해 미생물을 제어하는 이 기술은 이미 농업, 식품산업에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공중보건제품의 멸균처리와 농산물 검역 및 방역처리에도 가장 효과적인 기술로 활용되고 있다.6)

  1956년 전자선을 이용한 수술용 봉합사 멸균을 시작으로 60-Co 선원을 이용한 의료용품 멸균 적용 대상은 200여 품목에 달하고 있다. 방사선 살·멸균의 대부분은 감마선조사 방식이지만 전자선조사 방식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방사선을 이용한 의료용품 멸균의 경우 플리스틱 소재의 의료용품에서 강도 저하, 색상 변질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소재연구도 병행해야 한다.

  의료용품 뿐 아니라 제약분야에서도 미생물 증식을 막기 위해 멸균 기술이 도입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생약 및 한방약재의 미생물 제어를 위한 방사선 멸균기술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7)

 

 

 

  신종 감염병들의 등장은 과학기술계와 의료계의 이목을 백신연구개발 분야로 집중시켰다. 백신은 만드는 재료와 방법에 따라 크게 약독화 생백신(live attenuated vaccines), 불활성화 백신(inactivated vaccines), 단백질 백신(subunit vaccines), 다당류 백신(polysaccharide vaccines)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현재 제품화되지 않았지만 재조합 백터를 이용한 백신(DNA vaccines), Outer membrane vesicle(OMV)를 이용한 백신도 많이 연구되고 있다.8)

 이 중 사균 백신 개발에 방사선을 이용하는 기술이 각광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불활성화 백신은 열(56~60℃), 화학약품(포르말린, 페놀, 마조닌 등), 또는 자외선으로 병원체를 불활성화 시킨 뒤 적정농도의 부유액으로 만들어 방부제를 보충하는 방식으로 제조되는데 생백신에 비해 면역반응은 제한적이지만 안전성이 높아 장티푸스-파라티푸스 혼합백신, 홍역 백신, 콜레라 백신, 백일해 백신, 발진티푸스 백신, 일본뇌염 백신 인플루엔자 백신 등 많은 질병백신 제조에 활용되고 있다. 9) 하지만 열이나 화학약품 처리 시 세포 표면의 항원 결정기가 쉽게 파괴되고, 병원체의 DNA제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어 병원체에 단시간동안 감마선을 노출시켜 사균 백신을 만드는 방법이 연구 중에 있다. 방사선 기반 동물용 백신의 경우는 이미 전임상연구와 동물대상 효능 평가가 진행되었으며10) 폐렴구균백신 개발에도 방사선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11)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평가기술은 신약개발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기술로 자리 잡았다. 극미량의 방사성동위원소만으로 신약물질이 생체 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평가하고 생체 내 흡수, 분포, 대사, 배출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신약 인허가 및 등록을 위한 필수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분자 영상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항암제 및 세포 치료제 등 첨단 의약소재의 평가, 신약 후보물질에 동위원소를 표지하여 일반 합성신약, 바이오신약 및 천연물 신약물질들의 정량적 분석에도 활용할 수 있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신약개발 지원: 1)일반신약 ADME 분석, 2)대사체 분석, 3)바이오이미징 분석>12)

 

  지구상에서 곧 자취를 감추게 될 소아마비 퇴치에 혁혁한 공을 세운 한국인이 한 명 있다. 바로 故이종욱 WHO 사무총장이다. 그는 1983년 WHO 지역사무처 한센병자문관을 시작으로 사무총장에 이르기 까지 20여 년간 WHO에서 근무하면서 전 세계 보건증진을 위해 헌신했다. 특히 1994년 글로벌백신프로그램 및 어린이 백신사업 총괄책임자를 맡으면서 ‘소아마비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1년 만에 소아마비 발병률을 인구 1만 명당 1명 이하로 낮추는 혁신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2000년에는 WHO 결핵퇴치사업 국장으로 부임하면서 현재까지 보건 분야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활발한 민관 협력사업이라 평가받는 글로벌결핵퇴치파트너십(Global Partnership to Stop TB)과 글로벌약품조달기구(Global Drug Facility, GDF)의 출범을 이끌었다. 이후 2003년 2005년까지 300만 명의 에이즈 환자에게 치료제를 공급하자는 ‘3 by 5’공약을 앞세워 제6대 WHO 사무총장에 당선된다. 2006년 5월 과로로 사망하기 전 까지 그는 에이즈치료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소아마비·결핵 퇴치,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방지 등의 성과를 이룩함과 동시에 국가원수 급 예우를 마다한 검소한 생활로 국내외 지도자들과 공직자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다.13)

 



<백신의 황제라 불리던 故이종욱 WHO 사무총장14)과 現 WHO 사무총장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15)

 

  2020년 현재, WHO 8대 사무총장 체재 하에서 전 세계는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많은 아쉬움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국제기구인 WHO의 안일한 대처로 4월 20일 기준 미국의 확진자수는 75만 명을 넘어섰으며 유럽 주요 국가들의 확진자수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 우리나라 인구수의 1/5 정도인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확진자는 3만 명을 넘어섰고, 인구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확진자는 옛날에 10만 명을 넘어섰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전염병에 대처하는 올바른 방법은 투명한 정보공개, 조직적인 대처능력, 신속한 사전검사이며 무엇보다 컨트롤타워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수는 크게 줄었지만 아직까지 1만 여명의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해외 유입과 무증상 확진자 등으로 인한 감염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지속적인 위생관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방사선의학기술도 신종 감염병 퇴치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되기를 기대하며 코로나19 최전선에서 피땀 흘리고 계시는 의료진들과 공무원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본다. ◼(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

 

 

1) 연합뉴스, 2015 세계과학정상회의 준비기획단
2)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에드워드_제너
3)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조너스_소크
4)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앨버트_세이빈
5) 연합뉴스, 코로나19 중증폐렴, 1분만에 잡아낸다 AI 분석기술 상용화, 2020.4.1
6) 김재경 외, 방사선의 살멸균 특성 및 멸균산업의 이용, 대한골·연부조직이식학회지 2013, 13(2):49-57
7) 김재경 외, 방사선의 살멸균 특성 및 멸균산업의 이용, 대한골·연부조직이식학회지 2013, 13(2):49-57
8) 서호성, 방사선을 이용한 백신의 개발, 한국미생물·생명공학회 e-생물산업 제6호, 2013.11
9) 네이버 지식백과
10) 뉴스원, 방사선 이용 백신개발 원천기술 확보, 2017.2.21
11) 우수 면역원성 폐렴구균 사백신 제조를 위한 방사선 기술 개발, 2018
12) 심재훈, 국가RI신약센터소개, 천연물의약품 심포지엄 발표자료 2019.6.27.
13) 위키피디아, ko.wikipedia.org/wiki/이종욱_(의료인)
14) 시사저널, WHO 이종욱 사무총장 타계, 2006.5.23
15) epa 연합뉴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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