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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닝-크루거 효과’, 성공적 실험을 위한 비책 발견김정영2016-02-17

김정영(선임연구원한국원자력의학원)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 1999)’라는 인지 편향을 설명하는 재밌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 효과에 따르면, 능력이 없는 사람의 착오는 잘못된 결정을 내려도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환영적 우월감에 사로 잡혀 자신의 능력을 평균보다 높게 평가하는 함으로서 출발한다. 반면에 능력이 있는 사람의 착오는 타인의 지식에 대한 환영적 열등감에 자신감이 떨어져 자신의 능력을 평균보다 낮게 평가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기초로 전문가의 탄생은 둘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설명될 수 있다. ‘무지는 지식보다 더 확신을 가지게 한다.’라는 찰스 다원의 말처럼, 과학적 연구는 자기 확신의 오류를 빨리 벗어나야 실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빠르게 진단하고 수정이 가능하다. 우리는 가끔 타인의 논문들(또는 선행기술들)을 여러 편 읽고(특히 I.F. 점수가 높을수록 커지는 믿음), 연구의 여건(장비, 인력, 시설)이 갖추어지는 대로 가설은 매우 간단하게 재현되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 것이라 자연스럽게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연구가 진행될수록 논문에 기술되어 있지 않는 문제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대부분의 논문들은 부정적인 과정이나 결과보다는 긍정적인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그것만을 맹신하게 되면 처음에는 더닝-크루거 효과에서 능력이 없는 사람의 착오를 겪게 되다가, 이내 실험에서 계속 실패하게 되면 극단적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의 착오를 겪어 급격히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대부분 여기서 실험을 포기하는 이들이 많이 발생(경제·인간적 문제를 제외)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보고 있는(혹은 지향하는) 논문은 오랜 과학사를 지닌 세계적인 대학이나 연구소의 우수한 팀에서 나온 연구결과이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열악한 연구 환경과 역사가 짧은 우리가 처음에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고, 아주 미세한 실험적 기술이 곳곳에 숨어있음을 모르는 일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이와 관련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말할까 한다.

 

 대학 4학년 때 취업 위해 원서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 평소 대학원 진학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교수님을 찾아갔다. 딱히 전체적인 전공 평점이 좋지 않았고, 그 교수님의 수업조차 DF 학점을 받았던 화려한 이력 때문에 교수님의 표정은 시종일관 울상을 짓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수님의 실험수업에서 A 학점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X-선생은 작은 희망의 불씨를 키우고 있었다. 출력해 간 성적표를 보여 드리며 전공과목 이외 다른 과목들의 학점을 매우 좋다고 강조하였고, 그러므로 대학에 진학한다면 우수한 성적이 낼 수 있다고 확언하였다. 그러나 30여분의 상담 끝에, 교수님은 여러 조언과 함께 대학원을 포기하라는 권고를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대학원을 진학할 동기나 선후배들은 1년 전부터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며 배우고 있었고, 그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있었다. 결국 X-선생은 대학원 진학을 접었고, 지원할 회사와 원서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그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진학하기로 한 친구가 포기하면서 대학원 지원자리가 남았다고 말씀하시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할 마음이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대학원 석사과정은 순탄할리가 없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떨어지는 전공실력과 실험기술을 단기간 안에 만회를 해야 했고, 무엇보다 부정적인 선입견을 극복하는 것도 급선무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교수님은 대학병원으로부터 위탁이 들어온 방사성의약품의 기본 골격을 설계하고 합성하는 기초연구를 맡겼고, 실험은 아주 간단하여 초보 석사가 수행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그 실험을 의욕적으로 시작한 날로부터 2개월 동안 노력과 반대로 계속 실패를 거듭했다. 어느새 실험번호를 기준으로 매번 방법과 결과를 기입하는 실험노트는 100번을 가리키고 있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기입한 것 이외 추가적인 실험(도전적이고 과감한 실험)은 훨씬 더 많았음을 밝혀 둔다. 그런데 1번 실험부터 100번 실험까지의 결과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였고, 대학원 공부와 재능의 부족에 대해 자책을 거듭할 무렵에 기적과 같은 일은 100번째 실험에서 일어났다. 여러 번의 실험수정과 무관하게 첫 번째 방법과 동일한 방법에서 성공하였고, 미국과 독일의 연구팀의 연구결과와 일치하였다. 그 뒤로 101번째 실험부터 매번 실험은 성공적인 결과만을 가져왔다. 현재 고인이 되신 당시 지도교수님과 X-선생은 평상시 이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미스터리 같은 우리의 경험은 훗날 많은 실험들을 성공케 한 멋지고 신나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X-선생의 대학원 시절, 비록 작은 연구실이지만 능력이 없는 초보 석사능력이 있는 지도교수는 무모함과 노련함을 잘 섞어서(스승과 제자의 유대감과 같은 연구자로서 동등한 의견교환) 실험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여기서 위의 더닝-크루거 효과는 과학연구 방법론에 대한 해석과 훌륭한 비책으로 승화될 수 있다. 대부분의 과학연구는 무모한 도전과 동시에 매우 정교한 논리가 필요하다. 결국 신구의 조화가 어우러질 때 우수한 연구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다. 오늘날 우수한 연구업적이 경쟁보다는 신입과 중견 전문가들 사이에 토의나 협업에서 기인한다는 증거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현대 과학의 빠른 성장속도에 비추어볼 때, 가설의 결과와 검증을 동시에 수행하는 정교하고 체계화된 집단지성이 필요가 있다. 그래야 더 많은 실패의 변수를 줄이지 않을까. 현재 우리나라 과학계에서는 승자독식의 연구프로젝트 수주 문화가 고착화되어가고 있고, 많은 연구자들(대학생 포함)이 성과에 급급해서 연구결과를 만들어가고 있다. 참신하고 뛰어난 연구 신인(나이를 초월)의 아이디어가 정부연구비를 지원받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이런 시점에서 유사한 연구주제에 연구의 고수와 신인을 동시에 뽑아 한 팀으로 엮어주는 연구맞선 프로젝트같은 재밌는 연구방법도 상상해 본다. 오늘 X-선생이 더닝-크루거 효과에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우리의 연구조직은 신구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 부족한 기초과학과 응용연구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노령화되어 가는 과학계의 젊은 인재를 많이 영입해야 하는 당위성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본문 내용과 무관하게 더닝-크루거 효과의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소개할까 한다. 이것을 읽고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기회가 되지는 않을까?(그럼 너무 씁쓸하거나 슬플 수도 있겠지만...) 이 연구의 가설에 끝은, 능력이 없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경향이 보인다고 한다. 첫째,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둘째, 다른 사람의 진정한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다. 셋째,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곤경을 알아보지 못한다. 넷째, 훈련을 통해 능력이 매우 나아지고 난 후 이전의 능력 부족을 알아보고 인정한다.

 

(2016.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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