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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정복하는 열매김정영2016-01-14

김정영(선임연구원한국원자력의학원)

 

  얼마 전에 일이다. 어떤 열매즙이 암 예방과 치료에 좋다고 주장하시는 분이 암병동과 방사선의학연구소에서 몰래 들어와 영업을 하고 계시다가, 어느새 X-선생의 연구실까지 들어와 말을 걸었다. 그는 X-선생이 연구실을 나갈 것을 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열매즙이 암 치료에 얼마나 좋은지를 긴 설명과 함께 화려한 동영상을 보여주고, 몇 개의 데이터를 보여주며 판매에 열을 올렸다. 그 날 X-선생은 실험 일정이 많아 캐쥬얼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그는 X-선생이 연구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혹은 생김새로 지레짐작하여 설득 당하기 쉬운 어눌한 연구자로 인식되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X-선생은 그가 암병동에서 이것을 잘 팔았다고, 이것만 먹고 자신의 대장암을 완치했다고 자랑하는 그에게 화가 났다. 또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 사람들이 이것만 먹고 방사선으로부터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그의 말은 거짓말의 정점을 찍었다. 삶에 대해 절실한 환자 또는 환자의 가족들에게 아주 비싼 가격으로 열매즙을 팔았다는 것이 아닌가. 또한 너무나 건장한 체격과 구릿빛 얼굴을 한 그가, 얼마 전까지 대장암 말기 환자였다고 믿기는 어려웠다. 물론 그 지극히 개인적인 의학적 치료 경험은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식품으로 허가 받은 열매즙에 대한 적절한 가격을 소비자에게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분노한 X-선생은 항암 성분 분석에 관한 데이터들의 근거를 묻기 시작했고, 특히 데이터와 암치료효과에 대한 상관관계를 합리적 의심으로 지적해 나갔다. 그는 곧 영업을 방해한다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신이 박사야라고 삿대질을 하며 큰 소리를 쳤다. 그래서 박사임을 밝혔다. 그 순간, 그는 화제를 바꾸어 자기네 회사에서 고용한 박사가 X-선생보다 얼마나 훌륭한지를 설파했다. X-선생은 화를 꾹 참고, 그에게 따끔하게 충고를 했다. ‘그 열매즙을 파는 것은 자유지만, 암환자에게 거짓말하면서 팔지는 마시라고...’ 그는 이내 화를 크게 내고, 연구실 문을 꽝 닫고 사라졌고, 한참동안 문밖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X-선생이 열매즙을 파는 그 분에게 한 질문을 요약해 보겠다.

 

  첫 번째, 열매즙만 먹고 진짜 대장암을 치료 했는지? 수술, 항암제 치료, 방사선치료는 안 받았는지?

 

  두 번째, 암치료 효과나 방사선 피폭에 대해 방호효과가 좋은 열매즙인데 굳이 방문판매를 하시느냐? 대형마트에서 입점에서 팔거나 인터넷으로 팔면 훨씬 매출이 좋지 않으냐?

(해당 홈페이지를 확인했으나, 항암효과나 방사선 방호효과에 대한 직접적인 연관은 찾을 수 없었다.)

 

  세 번째, 의학적 효과가 뛰어난데, FDA에서 식품으로 허가를 받았는가?

 

  네 번째, 왜 보여주신 팜플렛에서 열매즙을 먹고 암이 나았다고 하는 사례가 홈페이지에는 없는지?

 

  다섯 번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사람들이 먹고 방사선방호를 했다는 말의 출처는 어디인지?

 

  여섯 번째, 블루베리보다 높은 항암 성분을 이유로 이 열매즙을 먹는다면, 그냥 블루베리를 좀 더 많이 먹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물었다. 이와 같은 합리적인 의심, 즉 검증은 과학적 사고나 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참조하시라.

 

  사실 우리가 살면서 위와 같은 일을 많이 겪는다. 젊고 건강할 때는 크게 와 닿지 않다가,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병원을 한 번 찾게 되면 열매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여기서 그 열매는 항암 성분으로 알려진 안토시아닌(과실 등에 포함된 색소의 종류이며 농도에 따라 빨간색, 보라색, 파란색 등으로 나타난다.)이 많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안토시아닌이 암을 억제하거나 치료하는 연구를 하는 학계에서 매력적인 항암치료물질들 중에 중요한 후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하나의 단일 성분으로 암을 정복할 수는 없다. 또한 안토시아닌은 우리가 먹는 블루베리, 흑미, 검정콩, 포도, 자색고구마, 가지, 적양배추 등에도 많이 들어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식습관에서 골고루 먹는 한국 사람이면, 굳이 열매즙의 힘은 필요 없을지 모른다. 이 열매즙은 현대인의 편식하는 식습관에서 나온 대안 식품으로 간편하고 효과적인 식품일 수는 있지만, 이 열매즙만으로 항암과 방사선방호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추가적이고 지속적인 과학적인 연구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오히려 의료진이 제시하는 암 치료 전략에 대해 방해물도 작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이미 우리 자연 곳곳에 건강을 주는 열매즙들은 마트와 인터넷 쇼핑몰에서 합리적으로 가격, 다양한 성분과 형태로 효도 선물로 팔고 있다. 회사나 개인적으로 영업하는 사람이 좀 더 팔기 위해 열성적인 것이야 칭찬해야지만, 실험결과를 의도적으로 부풀려 암을 치료하는 것처럼 영업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과학을 오히려 불신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린다. 설령, 우수한 의학적 결과가 나왔더라도 그것이 환자에 적용되기까지 많은 과학적 확인 절차와 안전성을 검증 받아야 한다. 과학은 어느 날 갑자기 천재들이 만들어 놓은 학문이 아니라,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많은 연구자들이 쌓아 올린 돌탑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암을 정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매체와 결합된 상품에 현혹되지 말고, 자신의 식단을 돌이켜 보고, 좀 더 골고루 먹고,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거나, 암을 정복하기 위해 의료진의 지침(검진과 치료)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더 과학적이고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더불어 국가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인력들을 질병으로 잃어버리지 않는(가족 중 한명이 암에 걸리면 일반적으로 경제·윤리적 가족 붕괴가 불가피하게 동반되는 현상을 감안할 때) 체계적인 보건시스템, 암으로부터 가지는 막연한 공포심을 이겨낼 수 있는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매일 생성되었다가 사라지는 암세포로부터 우리 몸을 이겨내는 열매는 개인이 혼자 찾는 것보다 국가와 함께 했을 때, 우리 생활에서 더 달콤한 건강한 열매가 많이 자라나지 않을까

(2016.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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