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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과학 몰아내기핵의학분과 세부편집장, 핵의학 과장 변병현2020-03-23

인류가 생명의 위협에서 살아남은 비결

 

  인간에게 있어서 공포는 합리적 사고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야생에서 호랑이나 곰을 마주쳤을 때 인간이 살 수 있는 확률을 아주 조금이라도 높이는 방법은 맹수 앞에 차분히 앉아서 시각정보를 통해 얻어진 맹수의 몸집과 내 주먹의 크기를 비교해본 다음 대뇌피질이 내리는 의사결정에 따라 내가 알고 있는 지름길로 달려서 강으로 뛰어드는 것을 결정하고, 이 방법이 최선일지 지인들에게 전화해서 조언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위험을 감지한 우리 몸에서는 통합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만 처리속도가 느린 대뇌피질을 거치는 대신, 좀 더 뇌 안쪽에 위치하면서 본능적인 활동을 관장하는 변연계의 활성화가 일어난다. 이를 통해 호흡과 심장박동 수를 급격하게 끌어올리고 근육에 피와 산소의 공급을 증가시킴으로써, 평소에는 꿈도 못 꿀 속도의 달리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더불어, 혈액 내 혈소판의 숫자를 증가시켜서 도주하다가 호랑이 발톱에 긁혀서 출혈이 발생하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피가 멎게 해준다. 즉, 인류는 생명의 공포에 마주쳤을 때 이성적인 사고를 억제하고 본능적인 방어기전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위험천만한 야생 생활에서 후손을 남기고 번성하는 데 성공해 왔다.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마비시키고 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생산시설들이 멈추고, 3월인데도 학교는 문을 닫고 있다.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천만 단위의 사망자를 낸 이후 다시는 우리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을 없애자고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낸 유럽연합은 바이러스 전파의 우려로 서로 간의 국경을 굳게 걸어 잠금으로써, 국경 없는 인적 교류를 통한 연합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가공할 전파속도와 함께 계절독감에 비해 20여배에 달하는 치사율은 전 세계 지도자들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만들었고, 낭만적이지만 남의 말 안 듣기로 유명한 몇 몇 나라들에서는 군인들이 길거리를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 새로운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과 함께 이성도 함께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슈퍼마켓의 생필품들이 사재기 인파에 의해 순식간에 동이 나버려서 미처 사재기 행렬에 동참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당장 화장지를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코로나19가 유행한다고 해서 일주일에 한 통씩 쓰던 화장지를 매일 한 통씩 쓸 이유가 없으니, 그냥 평소대로 구매하고 사용하면 다 같이 아무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다. 화장지는 유통기한도 매우 길 테니 제조회사나 유통업체에 최소 수 개월 이상의 재고물량은 쌓여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화장지의 생산이 내일부터 멈추는 것도 아니니 다 같이 평소대로 구매하고 사용하면 최소한 올 해 내로는 화장지가 부족해질 이유는 생각하기 어렵다. 내년에도 화장지가 없어서 사용할 수 없는 경우는 코로나19로 인류가 절멸 상태에 이르러야 가능한 시나리오이니, 그런 가정을 하는 것은 소행성이 충돌하거나 핵전쟁이 일어나서 인류가 멸망하는 것을 대비하여 화장지를 사들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공포는 불과 이 몇 줄에 이르는 자연스러운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할 만큼 강력한 것이다.

 

  공포가 이성을 지배해서 화장지가 부족해지는 것은 그나마 최악은 아니다. 소금물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사멸시킨다는 황당한 주장을 믿고 다른 사람에게 분무기로 소금물을 뿌려서 수십 명의 코로나19 집단감염을 일으킨 사건은 좀 더 심각한 사례라고 하겠다.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 있다는 점을 깜빡 했다 하더라도 가까운 보건소에 한 번만 문의해봤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지만, 눈 앞에 닥친 공포를 회피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여러 나라에 코로나19가 일반 독감과 다르지 않은데 정부가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는 현실 부정이 만연하고, 아직 확진자가 많지 않은 아프리카 몇몇 나라에서는 흑인들은 유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참신한 이론까지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유사과학 몰아내기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이러한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비합리적인 정보들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소금물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없애준다는 정보가 처음 유통된 곳은 유튜브라고 하는데, 이 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유사과학 정보들이 난립해 있다. 예컨데,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세를 확장한 지구평면설은 말 그대로 지구가 구형이 아닌 평평한 판자처럼 생겼다는 이론인데, 이미 많은 유명인사들이 공개적인 지지(?) 선언을 한 바 있고 그럴듯한 학회까지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또 다른 예로서 무한동력기관은 주로 지구의 중력이나 자력처럼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어쩐지 영원할 것 같고 손실이 일어나지 않아 보이는 힘을 ‘잘’ 이용해서, 에너지를 넣지 않고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기계를 일컫는다. 수 세기 동안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 기계를 발명했다고 주장했으나 그 증명에는 모두 실패해왔고, 적어도 이 우주에서는 불변하는 열역학법칙을 거스르는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각 국의 특허청에서는 더 이상 무한동력기관을 심사하지 않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무한동력기관을 발명했다는 사람의 기사가 신문에 실리고, 이 기사를 본 사람들이 큰 돈을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일이 있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가 평소에 이런 유사과학이나 비합리적인 주장들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견지해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여 유사과학이 발 붙이지 못하는 집단에서는, 공공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에 처하더라도 근거 없는 주장이나 악의적인 사실 호도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보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구자나 대중들이 무엇이 과학적인 사실이고 무엇이 비과학적인 주장인지 알아가는 데 있어서, 방사선의학웹진을 포함한 다양한 과학매체들이 중요한 안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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