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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면역치료 임상시험 40주년핵의학분과 세부편집장, 핵의학 과장 변병현2020-01-30

  현대의학에서는 암 치료기술의 발전으로 암환자의 생존율이 개선되어 왔으나, 여전히 상당수의 암이 치료에 반응하지 않거나 일차치료 후 잔존 또는 재발하는 암으로 인해 암환자 생존율 향상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방사면역치료는 기존의 항암제와는 전혀 다른 기전을 갖는 치료법이어서 수십 년 전부터 유효성과 독성을 검증하기 위한 많은 임상시험이 진행되었다. 올해 2020년은 최초의 방사면역치료 임상시험결과가 논문으로 보고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간 환호 속에 좌절도 있었고, 좌절 속에서 새로운 희망도 보아온 방사면역치료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그 미래를 전망해보고자 한다.

 

 

최초의 방사면역치료 임상시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최초의 방사면역치료결과는 1980년에 보고되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에서 시행한 이 임상시험은 9명의 암환자(간내담관암 2명, 간세포암 2명, 대장암, 2명, 폐암 1명, 구강암 1명 등)를 대상으로 하였고, 이들은 표준적인 암 치료법에 실패하여 면역글로불린 치료를 받을 예정인 환자였다. 방사면역치료 방법은 CEA 또는 ferritin 항원에 대한 면역글로불린에 I-131을 표지하여 정맥 주사하는 것이었다. 치료 결과 9명 중 1명에서 일시적인 발열이, 다른 1명에서 3주 후 일시적인 골수억제 소견을 보였으며, CT로 치료 전후 종양 크기를 측정한 간종양 환자 4명 중 3명에서 종양의 크기가 유의미하게 감소하였다.

  사실, 이 임상시험 이전에 방사면역치료를 인체에 적용했을 때 여러 우려되는 점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면역글로불린 투여 자체의 안전성 문제, 충분한 방사선량이 종양에 도달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 방사선에 의한 신장 손상 등이 그것들이었는데, 이 임상시험은 이와 같은 우려들이 방사면역치료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보다 종양특이적이고 부작용이 적은 항체의 개발과 함께 이를 이용한 방사성의약품 합성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암에 대한 방사면역치료 임상시험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환호와 좌절

  백혈병, 뇌종양, 복강암, 대장직장암, 유방암 등에 대한 다양한 방사면역치료 임상시험들이 수행되어왔지만, 방사면역치료가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는 분야는 단연 림프종이다. 림프종은 수술이나 외부방사선치료로 특정 암부위를 제거하는 고형암과 달리, 전신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항암화학요법 또는 면역치료가 일차치료법이다. 혈액종양세포의 항원종류에 따라 효과적인 항체들이 개발됨에 따라, 혈액종양에 대한 표적항체에 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를 표지한 방사성의약품을 투여하는 방사면역치료 임상시험이 1980년대부터 활발하게 수행되어 왔다.

  2002년 미국 메이요클리닉에서 Y-90-ibritumomab Tiuxetan (상품명: Zevalin) 방사면역치료의 임상시험결과들을를 발표한다. 재발 또는 기존치료에 불응한 림프종 환자들에서 74-80%의 높은 치료반응률을 보였고, 이는 대조군인 표준적인 항체치료요법(rituximab) 군의 치료반응률인 56%보다 통계적으로 의미있게 높은 수치였다. 이 연구결과를 근거로 Zevalin은 2002년 세계최초로 FDA 승인을 받은 방사면역치료용 방사성의약품이 되었다. Zevalin에 이어서 2003년에는 I-131-tositumomab (상품명: Bexxar)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FDA 승인을 받은 반사면역치료용 방사성의약품이 된다. 이에 대한 근거가 된 임상시험들에서 Bexxar는 치료반응률이 65%였고, 반응기간의 중간값이 6.5개월로 임상시험에 포함된 환자들이 방사면역치료 전 시행받은 항암화학요법의 반응기간 중간값 3.4개월보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게 길었다.

  하지만, 승승장구할 것 같던 방사면역치료는 2014년 Bexxar의 FDA 승인 자진철회라는 악재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는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는데, 우선 2000년대 초반 경쟁약품 대비 약값이 지나치게 비쌌다. 1회 치료비용이 우리나라 돈으로 3천만원이 넘었으니, 의사나 환자 모두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방사면역치료를 위해서는 전문의료기관으로 환자가 이송되어야 하는데, 이 역시 주치의와 환자 모두에게 불편한 경험이 되었다. 여기에,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에서 기존의 면역치료+화학요법 대비 방사면역치료+화학요법이 생존율 향상을 보여주지 못하였고, 방사면역치료의 경쟁약품이 속속 개발됨에 따라 Bexxar의 수요는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방사면역치료의 미래

  이러한 좌절 속에서도 방사면역치료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선, 알파핵종을 이용한 방사면역치료가 대표적이다. 림프종에 대해 FDA 승인을 받았던 두 가지 약제 모두 베타선원을 이용하였는데, 이는 에너지 도달거리가 수 mm에 달하여 종양 주변의 정상골수조직까지 손상이 되는 단점이 있다. 에너지 도달거리가 짧고 에너지가 강력한 알파핵종을 이용한다면 이러한 정상 장시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생존율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사전표적 방사면역치료가 있다. 방사면역치료에서는 정상장기보다 종양에 보다 선택적으로 방사성의약품이 집적될수록 치료효과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사전표적 방사면역치료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방사면역치료용 방사성의약품을 주입하기 전에 종양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물질을 주입하고 일정시간이 경과한 다음 치료용 방사성의약품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실제 2004년 이 방법을 이용한 임상시험에서 종양에 정상장기 대비 매우 높은 방사능이 도달함을 보여준 바가 있다. 물론, 이 방법은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실제 임상적인 효용성 면에서 검증되어야 할 측면이 많으므로 많은 추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고용량 치료를 위한 자가골수이식 병행요법도 고려해볼 만 하다. 방사면역치료 시 방사성의약품의 투여용량은 골수억제 등의 독성으로 인해 제한을 받게 되는데, 방사면역치료 후 자가골수이식을 염두에 둔다면 투여용량을 대폭 증량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알파핵종, 사전표적기술이나 자가골수이식 병행요법 등의 새로운 기술을 통해 지난 40년의 방사면역치료 성과를 계승 발전해나가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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