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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 길라잡이 - 경제학자가 아닌 과학자의 시선김정영(선임연구원, 한국원자력의학원)2017-07-17

  올해 5월 9일 뜨거운 대통령 선거의 여운은 아직도 한반도의 봄으로 남아있다. 이 온기는 법과 절차에 따라 평화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이후, 우리나라에 올바른 정의가 뿌리 내리기를 희망하는 국민으로부터 비롯된다. 여기에 과학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또한 선진국들에서 시작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기술의 화두로 인해 우리의 과학기술정책은 새로운 밑거름과 실천방향을 빠르게 준비해야 될 시기가 도래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정책으로 대선을 기획했고, 당선 이후 추진 중에 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일까, 혹은 지난 정부에서 노래한 ‘창조경제’와 같이 정의나 설명이 어려웠던 정치적 수사일까. X-선생의 궁금증은 여기서 출발한다. 그나마 ‘창조경제’와 달리 ‘4차 산업혁명’은 클라우스 슈밥 교수(1938년∼, 경제학자)가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였고, 그의 저서(‘제4차 산업혁명’, 2016년, 출판사: 새로운현재)를 통해 여러 과학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하였다. 그가 1971년에 창설한 ‘유럽경영포럼(European Management Forum)’은 많은 경영인과 정치인이 참가하면서, 1987년부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y Forum, WEF)으로 명칭을 바뀌고 그 영향력 또한 매우 커졌다. 스위스 다보스(Davos)에서 1주일 간 개최하는 WEF는 우리들에게 ‘다보스 포럼’이라는 말로 더 유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다보스 포럼은 세계적인 기업들과 정치 및 경제인들의 적극적인 참석으로 인해 자본주의 시대를 더욱 견고하게 하는 논리와 철학을 제공하고 대기업의 새로운 이윤창출을 위해 선진국의 정책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이 포럼의 방향이 꼭 인류발전을 위해 긍정적이나 올바른 것은 아니다.     

 

  기존의 산업혁명은 18세기 증기기관과 섬유공업을 중심으로 일어난 ‘제1차 산업혁명’, 19∼20세기초 전기기술과 대량생산조립라인을 중심으로 일어난 ‘제2차 산업혁명’, 그리고 1960년대 반도체와 컴퓨터기술로 인한 ‘제3차 산업혁명(일명 디지털혁명)’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슈밥 교수의 ‘제4차 산업혁명’이 기존의 디지털 혁명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디지털 혁명’의 범주에 오늘날 세상을 바꾼 스마트폰과 같은 인터넷 기술을 포함시킨다면, ‘제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혁명의 최종 결과물이라는 의견도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저 PC통신으로 컴퓨터와 컴퓨터를 연결했던 시대와 오늘날 모든 전자기기를 연결하는 사물인터텟(Internet of Things, IoT)의 시대는 분명히 다르다. 특히 모바일 스마트폰과 연결되는 것이 교통, 은행, 가전제품(집) 등으로 확장되는 기술 안에 사는 우리는 새로운 사고와 행동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 물론 아직 스마트폰을 이동식 전화의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인터넷 사용자가 만드는 개인 컨텐츠의 폭발적인 증가는 공중파 방송국의 프로그램도 변화시켰다. 또한 애플사에서 개발한 ‘팟캐스트’는 실시간 방송개념을 처음부터 무시하고 사용자 중심의 컨텐츠 방송으로 운영하면서 라디오와 이제는 나란히 어깨를 같이 하고 있다(이 번 대선에서 팟캐스트는 기존의 신문사나 방송국의 정치주도를 극복하는 시민의 자발적인 정치문화로 크게 기여했다).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개념 정리

 

  

 

  ‘제4차 산업혁명’은 인터넷과 인공지능기술로 시작된다. 얼마 전 구글사의 ‘알파고’는 세계적인 바둑기사인 이세돌과 커제를 이김으로써, 인간 간 최고의 확률게임(두뇌게임)에서 인공지능의 고성능을 입증하였다. 이런 사실에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아직 알파고에 없는 감정과 같은 고성능기술들이 너무나 많다. 슈밥 교수의 미래기술과 인류 발전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우리가 처음 엘빈 토플러(1928∼2016년, 미래학자)의 ‘제3의 물결’을 읽었을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기서 바로 ‘제4차 산업혁명’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이 생긴다. 앨빈 토플러는 보지 않는 세상을 보여주려고 했고, 클라우스 슈밥은 현재 있는 기술을 보여주었다. 결국 슈밥 교수가 말한 미래기술은 산학연 실험실이나 기업의 제품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다보스 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언급한 슈밥 교수의 말은 각 나라의 과학정책을 긴급하게 수정하거나 새로 설립하는 동력이 될 수밖에 없고 기업의 새로운 제품들을 미리 홍보해 준 셈이 된다. 선진국들과 다국적 기업들은 슈밥 교수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 조금만 과장하자면, 이것은 스티븐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 무대에 나와 설명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제4차 산업혁명’은 지난 정부의 창조경제와 다르다. 이것은 용어에서 발생하는 경제사적 관점의 논란을 접어두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오늘날 인류가 만든 대표적인 기술을 소개하는 개념으로 쓰였다. 따라서 이 산업혁명 안에는 기업들이 좋아할 먹잇감이 너무나 많다. 따라서 X-선생은 이렇게 추론해 본다. ‘그 기업들이 그것을 개발하여 팔기 위해 각 나라의 정부들의 제도(또는 규제)를 선제적으로 손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결국 다보스 포럼의 혜택은 기업, 선진국, 특정 정치집단 등이 우선적으로 배당받을 수밖에 없다.

 

  슈밥 교수는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로 물리학기술, 디지털기술, 생물학기술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우선 물리학기술은 무인운송수단, 3D 프린팅, 첨단로봇공학, 신소재로 언급되고 있고, 디지털기술은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디지털 플랫폼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생물학기술은 합성생물학, 개인맞춤형 헬스케어, 유전공학, 바이오프린팅(생체조직 프린팅), 신경과학기술을 꼽았다. 이 기술들은 앞서 언급했지만 멀리 있지 않다. 우리나라 산학연 연구자들이 중심되게 연구하는 주제들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그런 과학기술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연구의 지속성이다. 대통령 임기나 정치적 어젠다(agenda)에 맞춰 단기적인 성과 위주로 구성되어 가시적인 산업화 성과가 없으면 국가 연구비는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 성과를 내야 함으로 많은 과학자는 집중적이고 효율적인 연구를 선택하며, 타연구와 협업하는 도전적인 시도도 부족하고 설익은 제품을 시장에 내놓아야하고, 이것은 시장의 불신으로 바로 이어진다. 또한 이것은 과학기술 투자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을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우리 주변을 떠도는 첨단과학기술과 일반인의 간격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과학교과서는 모든 국민을 과학자로 만들기 위해 설계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새로운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미래를 꿈꾸는 기반은 소수 과학도에게만 주어지는 우리 사회의 엘리트 과학교육은 ‘제4차 산업혁명’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경제학자인 슈밥 교수는 기술 간 융합과 협업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우리 과학계의 뼈아픈 지적이다. 이제 우리 과학계의 학재 간 장벽은 전문영역으로 갈수록 사라져야 옳다. 왜냐하면 미래의 과학기술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그 기술을 사용하는 철학과 문화를 담아야하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슈밥 교수의 ‘제4차 산업혁명’은 현재 첨단과학기술을 잘 정리한 블로그와 같다. 이 블로그는 선진적인 기업들의 먹거리를 잘 정리해 놓았고, 저성장과 고령화 등으로 위기에 몰린 자본주의 경제체계의 희망을 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4차 산업혁명’은 ‘제1차 산업혁명’에서 시작된 식민지 수탈, ‘제2차 산업혁명’에서 보여준 세계전쟁에 의한 홀로코스트, ‘제3차 산업혁명’에서 발생한 심각한 경제불균형만큼 커다란 부작용을 담고 있을지 모른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직 과거 산업혁명을 완전히 수행했거나 그로 인한 부작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제4차 산업혁명’에 주요 과학기술은 야누스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앞면은 세계적인 경제·정치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해결사로 만들어질 수 있고, 뒷면은 특정 기업이나 국가의 배만 배부르게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다포스 포럼이 만들어낸 ‘제4차 산업혁명’을 급하게 쫓아가기보다 우리 현실에 맞는 과학기술정책 수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과학기술의 체력과 보폭으로 먼 길을 걸어가는 길이 현명하다는 것은 선진국들의 과학정책에서 이미 보여주었다. 독일, 일본, 미국 등은 ‘제4차 산업혁명’의 화두 이전에, 그들의 기술로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을 상기하라. 슈밥 교수의 말처럼 미래기술은 기술 간의 벽을 허물고 융합과 통섭으로 나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우리 안에 과학기술이 철학과 함께 보편화되었을 때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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