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생의 과학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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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시대의 과학풍경김정영(선임연구원, 한국원자력의학원)2017-05-19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의 한 장면>


우리 시대를 말하는 영화 

  2010년 4월 20일, 미국 멕시코만에서 석유시추시설(British Petroleum, BP사 소속의 ‘딥워터 호라이즌호’)이 폭발하여 11명이 사망하고, 이틀 뒤에 완전히 침몰한다. 그 뒤 약 5개월 넘게 대량의 원유가 유출되며 많은 환경문제를 일으켰다. 이것은 최근에 개봉한 영화 ‘딥워터 호라이즌’(피터버그 감독, 2016년)에서 사고의 경위와 참담한 사건현장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또 하나의 영화에 주목해 본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김태윤 감독, 2014년)은 2003년 10월 대기업에 입사하여 반도체 원판을 화학물질 혼합물에 담갔다 빼는, 라인에 배치되어 일을 하던 故황유미씨가 2년 뒤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지만, 해당 회사는 산업재해를 끝끝내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많은 아픔을 간직한 체 2007년에 사망한다. 이후 택시운전기사인 아버지가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산재를 인정하지 않는 대기업을 상대로 오랜 재판을 벌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영화를 보자. 미국 민간의료보험 조직의 부조리한 폐해와 이면을 폭로하고, 미국 건강보험제도의 열악하고도 무책임한 체계를 신랄하게 비판한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마이클 무어 감독, 2007년)가 있다. 이와 같이 국가의료보험이 없는 미국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영화로,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의 모습과 사뭇 다르고 그 생활은 상상이상으로 처참하다. 영화 시작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미국의 의료체계를 다시 돌아보기에 충분하다. 어느 미국 남성(돈이 없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이 밀링작업 도중에 두 개(중지와 약지)의 손가락을 잘라져 병원에 갔는데, 접합수술비용이 중지는 6만 달러이고 약지는 1.2만 달러가 발생했다. 결국 그 남자는 자신의 가진 돈을 고려하여 약지만 접합하고 중지를 버리는 결정했다. 

 

아! 신자유주의여!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세월호는 정부의 구조 활동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매체의 생생한 중계 속에서 침몰한다. 30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지난 10년간 우리는 이와 같은 사고 소식들을 들어왔다. 앞에 소개한 영화처럼 이 모든 참혹한 사건들의 공통점은 명백했다.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그것이 곧 효율적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기업이나 국가의 성장을 위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개념에서 출발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자들은 매우 교묘하게 비효율적인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지나친 복지예산을 줄이면 개인의 세금지출이 준다고 이야기하고, 기업의 규제를 제거하고 노동의 유연성(해고)이 극대화되면 기업의 매출이 늘어서 국가가 잘 살게 된다는 논리는 주로 펼쳤다. 이것을 추종하는 그룹은 단지 생각만으로 멈춘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랫동안 세계적으로 곳곳에서 시행해 오고 있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그럼 신자유주의의 메카이며 선도자인 영국(대처리즘, 대처 수상)과 미국(레니거노믹스, 레이건 대통령)은 오늘날 과연 그들의 말대로 잘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국민들은 만족하며 살고 있는가. 도리어 두 나라는 국수주의를 바탕으로 한 경제정책으로 회기하고 있고, 신자유주의 환상은 이제 아무도 믿지 않는 공상과학소설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과학계

  우리 과학계의 강둑도 신자유주의의 토사가 유입되면서 이미 무너져 버렸다. 기업이나 국가의 모든 과학기술의 연구주제는 실용화, 창조경제, 창조과학 등과 같은 명분으로 ‘잘 팔리지 않는 것’을 왕따 시켰다. 결국 기업(의료 포함)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연구주제(과학기술)의 가치가 폄하되었고, 또한 과학기술 연구주제의 평가는 경제성이 매우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되었으며, 현재의 경제적 이득이 미비할시 국가 연구과제 선정에서 탈락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 과학계는 이미 신자유주의 정책 하에서 ‘비용편익분석’을 하고 있는 셈이고,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로 조성되어있다.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과학기술 개발의 선행요건인가. 예를 들어, X-선생도 참여하는 암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방사성의약품’의 연구가치는, 우리 사회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림으로서 상승된다. 만약 우리 사회에 드물게 유발되는 암이나 희귀병 종류에 관한 연구는 의료적 수요가 적다(시장이 작다)는 이유로 심사위원들로부터, 또는 과학기술 정책부서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는다. 이럴 때는 희귀병일지라도 신종플루나 메르스와 같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면 연구과제 선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이와 같은 사회적 재앙은 씁쓸하게도 과학자에게 해당 연구과제를 수주하는 행운(?)인 셈이다.  

  

  우리 과학계가 이대로 비용편익분석을 연구주제 선정의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면, 낮은 경제적 효과가 나오는 기초연구나 원천, 평가, 안전, 지원기술 등의 연구들은 기피하고 경시하는 문화가 한동안 극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지난 박근혜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면서 기업이 좋아하는, 또는 돈이 되는 연구를 과학자에게 강요함(연구비를 통해)으로써, 우리 과학계는 철학 없이 돈벌이만 하는 도구로 적락해 버렸다. 최근 들어 망가진 기초연구분야를 복원하기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지만, 과연 경제적 평가를 완전히 배제하였을까. 그리고 융합연구시대에 기초만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술들이 종합적으로 동시에 성장시켜야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이미 과학계는 ‘헝그리 정신’과 ‘애국심’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미래창조과학부’의 홈페이지는 애국가 서비스를 하고 있고, 각종 학회에서는 국민의례를 시행한다; 학회에 참석한 외국 과학자들은 너무 당황해 한다). 이미 첨단과학기술은 기초와 응용이 한 몸으로 움직이지, 그것을 따로 분리하여 말할 수 없다. 개인 컴퓨터의 개발 역사만 보더라도 존 폰 노이만 박사(1903~1957년)는 수학자였고, 방사성동위원소를 발견하고 의학적 활용을 한 마리에 퀴리 박사(1867~1934년)는 화학자였다. 우리의 과학정책과 투자는 아직도 영역구분과 단기적 성과에 집착해 보이는 듯하다.

  

  여기서 우리 스스로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뉴튼이 만유인력법칙을 발표하는 시점에, 만유인력법칙의 비용편익분석을 하면 어떻게 나올까. 잡스와 워즈니악이 만든 최초의 애플 컴퓨터의 비용편익분석은 어떻게 나올까. - 이런 예들은 무궁무진하다 -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 계산하여 결정하는 과학정책이 올바르다고 언제까지 동의할 것인가. 과학자가 되기 위해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의 학사(약 4년, 군복무), 석사(약 2년), 박사(약 3년) 학위를 받아야 한다. 심지어 이공계 대학원은 비싸다. 1년에 대략 적게는 700만원이나 많게는 1500만원의 학비를 지불해야 졸업한다. 여기에 야간수당이 전혀 없는 연구활동(때로는 밤낮, 휴일 없이)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설령 과학자가 되어도 월급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야말로 역설적이게도 비용편익분석이 낮게 나오는 직종이다.

  

  신자유주의 물결은 살인적이고 비인간적인 PBS(Project Based System) 인건비 제도(전문연구원들의 급여가 연구과제 수주에 의해 결정되는 제도)를 바탕으로 1명의 과학자에게 최대치의 연구결과를 내놓도록 한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특히 여성)이 가족이 없는 삶을 사는 우리나라에서 연구하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연구환경(아이디어를 충분히 내고 구현할 수 있는, 가족이 있는)이 좋은 선진국으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동료나 선후배들에게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말하는, X-선생의 마음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줄임말로 ‘우생순’, 임순례 감독, 2007년)에서의 핸드볼 선수들과 같다. 우리 과학계에서 조속히 신자유주의 환상이 모두 사라지기를 바라며, 많은 노벨들이 등장하여 한국을 넘어 세계를 이끄는 과학기술을 만들었으면 한다. 끝으로 신자유주의의 망령으로 몸살을 앓은 우리 사회가 새정부출범과 함께 건강한 길을 찾았으면 한다.(2017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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