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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자연과학 분야 통섭학자 최재천 원장, ‘생태’와 ‘진화’ 속 세상의 일부인 ‘인간’을 말하다(1회)

    인문·사회·자연과학 분야 통섭학자 최재천 원장, ‘생태’와 ‘진화’ 속 세상의 일부인 ‘인간’을 말하다(1회)

“종(種)의 멸종은 그 종의 마지막 개체가 사라지는 것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까지 20만 년은 걸릴 거다.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AI가 아니라 AI를 만드는 인간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21세기는 현생 인류가 살아가는 마지막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 하라리 교수의 말을 반박하면서 한 국립생태원 최재천 원장의 이야기다.

자본주의의 물질 만능사고가 팽배하면 할수록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로 ‘혁명과 재앙’의 기로에 놓인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임을 말해 주는 ‘생태와 진화학’. 이 이야기를 풀기 위해 인문·사회·자연과학 분야 통섭학자인 국립생태원 최재천 원장을 만났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생태’와 ‘진화’ 속 세상의 일부인 ‘인간’을 말하다」로, 인류역사에서 생태학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보고자 한다.

지난 3월 펼쳐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이세돌의 승리를 바라면서 대국을 감상했다. 우리의 마음속에선 인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이 이기기를 응원한 것이다. 알파고의 대승으로 인해 인공지능(AI)은 재앙의 요소를 품게 되었다. 복잡한 수를 가진 바둑을 이긴 알파고보다 더 큰 재앙은 인간 스스로가 만드는 잠재적 ‘악의’가 아닐까?

특히 언어를 도구로 문화를 발전시켜 온 인류는 지식수준의 발달만큼이나 빠르게 스스로 생태학적 위험요소로도 자리 잡고 있다. 전에 없던 엄청난 규모의 폭우와 폭염 그리고 감당하기 힘든 지진과 폭풍 등이 수시로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강과 바다는 오염되고 곳곳에서 거대한 쓰레기더미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인류가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시켜온 탓이다.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지구의 환경을 보면서 어쩌면 인공지능이 아닌 환경파괴가 인류멸망을 더 빨리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 진화생태학자 최재천 원장

지구의 환경 파괴는 생태학적 관점뿐만 아니라 사회, 인문, 자연과학적인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생태학은 다양성의 과학”이라는 최재천 원장은 “생태학은 ‘생태계 생태학’과 ‘진화생태학’으로 구분되며 미생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식물의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실험·연구하는 종합과학”이라고 말한다.

최재천 원장은 처음부터 생태학자의 꿈을 꿨던 것은 아니다. 한때는 시인을 꿈꾸기도 하고, 미술과 자연 그리고 인문학에도 관심을 보이던 최 원장은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으로 석사학위를, 같은 주제로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생태학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생태계 생태학은 결과를 분석하고 통계를 내거나 수식으로 풀면 되지만 진화생태학은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학문으로 1~2년 관찰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 최 원장은 “함께 미국으로 간 유학자들은 생태학에 어려움을 느껴 포기하고 다른 분야로 전향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진화생태학자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들여다봐야하므로 생태학적뿐만 아니라 인문학적으로도 중요성이 크다. 서양에서는 생태학자 과반수이상이 진화생태학자가 차지하지만, 우리나라의 진화생태학자는 전체 비중의 10%에도 못 미친다.

최 원장이 귀국을 결심했을 당시 진화생태학분야의 중요성에 대해 ‘깨어있지 못한 한국행’에 대해 미시간대학 연구팀은 물론, 지인들의 만류가 컸다고 한다. 실제 최 원장이 한국 실정에 적응을 못하고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미시간대학 측에서는 2년 동안이나 최 원장의 자리를 비워놨다고 한다.

귀국 후 2004년 모교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부임한 이후 이화여대 에코학부 석좌교수, 국립생태원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재천 원장은 자연과학과 인문학, 생태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우리나라 생태학 발전은 물론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에도 나서며 통섭적 인생을 살고 있다.

>> 환경이 아닌 생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국립생태원’

하루를 30분 단위로 쪼개 계획을 세우며 바쁘게 살았다는 그는 지금 서천에 위치한 ‘국립생태원’의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2000년대 초 정부는 자연환경은 보존하면서 지역경제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 서천군에 환경관련 연구기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었다. 정부 관계자들은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당시 환경생태학회 회장이었던 최재천 원장 역시 그중 하나였다. 최 원장은 ‘환경은 단순이 둘러쌓고 있는 것이므로 환경은 결국 주변 요소들에 대한 이야기고 수치적인 관점이므로 환경보다는 그 속에 알맹이가 되는 생태학을 봐야 한다’고 조언했고, 이러한 조언이 받아들여져 국립생태원 건립의 시초를 만들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서천군수 역시 국내 한 경제연구소에 ‘서천군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용역을 의뢰했고 그 연구원 역시 최 원장에게 조언을 구하며 서천군 미래 발전 로드맵 전략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서천군은 어메니티(amenity) 즉, 농촌 특유의 자연환경과 전원풍경, 문화유적 등 다양한 차원에서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쾌적성을 주는 요소를 근거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국립생태원의 핵심가치는 ‘생명사랑’, ‘다양성’, ‘창발’ 그리고 ‘멋’이다. 기본적인 연구목표인 ‘생명사랑’과 다양성을 연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의미의 ‘다양성’,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발전시켜주자는 의미의 ‘창발’과 그 속에서 멋진 삶을 살기를 바라는 ‘멋’. 이 바로 국립생태원이 생태 속에서 인간과의 조화를 만들어 내기 위한 핵심가치다.

해외 생태원에 비해 다소 작은 규모인 30만평으로 2013년 10월 공식 출범한 국립생태원은 ’14년과 ’15년 2년 연속 100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명소로 거듭났다. “시골마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며 “건립당시 ‘아시아 권역 대표기관’이라는 문구를 넣고 5년 안에 목표를 달성하자고 했는데 2년 만에 달성했다”고 말하는 최재천 원장은 교토대학의 생태학연구소장이 ‘이제는 규모를 넘어 질적인 면으로 봤을 때 NIE(국립생태원)이 아시아를 리딩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

>> 또 다른 역사를 만든 NIE 최재천 원장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와 문제해결을 위해 세계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를 구성하고 활발하게 활동해 오고 있다. IPCC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노벨평화상까지 거머쥘 만큼 영향력을 넓혀왔다. IPCC의 구성원 중에는 상당수가 생태학자들이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세계 환경문제의 양대 주제 중 하나인 ‘생물다양성 감소’ 측면에서는 다소 소극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있어서 생태계 생태학자와 진화생태학자를 중심으로 한 생물 다양성 과학기구(IPBES ; Intergovernmental Platform on Biodiversity & Ecosystem Services)를 탄생시키게 된다. 그리고 생물다양성협약(CBD, 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을 주최하며 생물다양성 감소에 대한 원인과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2013년 국립생태원을 개원하고 처음 한 일이 바로 IPBES에 국립생태원을 알리는 일”이었다고 말하는 최재천 원장은 100페이지 분량의 영문 자료를 만들어 제출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는 국립생태원이 중심이 되어 2014년 9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164개국 2만 5000여명 참석)의 의장국으로 선정되게 되었다. 특히 최재천 원장은 당사국 총회에서 환경부장관을 대신해 전문가의 자격으로 의장을 맡게 되었다.

“그동안의 총회는 의장들이 정치적 관련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생태학 전문가인 내가 최초로 의장을 맡다보니 2주 동안의 회의가 활기차게 진행되었다”고 회상하는 최재천 원장은 “정확한 방향을 제시하고 정리해 주다보니 참석자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고, 자정을 넘기지 않고 11시 45분에 합의를 이끌어 내며 회의를 끝내 ‘Mr. early’라는 애칭까지 얻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많은 참석자들로부터 당사국 총회에서는 유례가 없는 회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부터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국립생태원이 높은 인지도를 갖게 되었다. 최 원장은 이듬해인 2015년 11월 멕시코 생물다양성협약 국제 워크숍에서도 의장을 맡아 국제적인 역량을 발휘했다.

종말시계가 지구멸망 3분 전을 알리고 있는 시점에서 최재천 원장은 “지금처럼 환경을 파괴하면 인류는 지구상에 살다간 생명체 중에 가장 짧게 살다 멸종된 생명체로 기록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모든 생명의 바탕은 생태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온 마음으로 알려주고 있다.

인문·사회·자연과학분야 통섭학자이자 진화생태학자인 최재천 원장은 파괴된 환경은 인류에게 멸망으로 되갚아질 것이며, 환경파괴를 막고 다시 종말의 시계를 돌려놓을 수 있는 열쇠 또한 인간이 가지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다음 호에서는 ‘통섭의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소통(가제)’을 주제를 통해 통섭과 소통이 ‘인류 삶의 가치제고’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들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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