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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소타 의대 송창원 교수]

    [미네소타 의대 송창원 교수]

내 인생의 보람은 6.25전쟁 참전과 방사선치료 연구

- 선진 방사선치료기술 한국에 전파하기 위한 가교역할 자처

“돌아오는 것만이 애국은 아니다. 연구 인프라가 부족한 한국에서 연구를 못할 바엔 미국에 남아서 선진인프라로 방사선 치료기술을 연구하고, 그 성과로 암 환자 치료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말하는 미네소타주립대학교 의과대학 송창원 명예교수는 50여 년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선진 방사선 치료 기술에 대한 정보를 한국에 알렸다. 83살의 나이가 무색하게 고국에 앞선 방사선 치료기술을 알리고 싶어 아직도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송 교수는 나이를 뛰어넘는 열정으로 애국을 말하고 있다.”

>> 우리나라 첫 원자력 국비유학생으로 선발

광복 이후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생산 기반이 취약해 고작해야 밀가루, 설탕, 면직물 등 원조물자를 가공하는 산업 위주로 국민이 살아야하든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는 한계가 있었다. 전쟁 직후 우리나라는 1인 국민소득 60달러도 되지 않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원자력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하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국제적 정세에 발맞춰 미국과의 기술협력 등을 통해 원자력 연구개발에 나서게 된다.

본격적인 원자력 산업 육성에 나선 정부는 1958년 원자력법을 제정하고 이듬해인 1959년 2월에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전신인 원자력연구소를 서울공대(현 서울과기대)에 설립했다. 6.25전쟁에 참전해  동부전선에서 적과 싸우다가 전상을 당해 상이군인으로 제대한 후 대학에 입학하여 화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전공했던 청년 송창원 교수 역시 이 시기에 원자력과의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원자력 연구를 위해 연구소를 설립했지만, 당시 국내 인프라로는 제대로 된 연구 활동을 펼 수 없었다”는 송창원 교수는 이러한 이유로 정부가 선진기술 습득을 위해 파견한 원자력 1세대 국비유학생 15명에 포함돼 1959년 9월에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송창원 교수는 생화학과 원자력의 연관성을 찾다보니 방사선생물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이오와대학교(University of Iowa) 방사선학과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는 동안 한국은 정치적으로도, 경제 정책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고 회상하는 송창원 교수는 “당초 계획한 유학기간이 다가올수록 부족한 지식을 더 채워야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그리고 방사선치료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미국에서 더 머물면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 나라밖의 국민은 모두가 애국자, 기술정보 교류의 매개가 되다.

6.25 전쟁 직후에 우리나라의 교육인프라는 매우 취약했으며, 송창원 교수 역시 전문지식을 제대로 쌓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 유학길에 올라 현지인들에 비해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매진한 것은, ‘한국을 대표해 왔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피 땀 흘린 노력 끝에 우수한 성적으로 학위를 취득했고, 그의 연구 역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특히 송 교수는 68년 2월에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의 권위있는 과학전문 주간지 네이처(Nature)지에 논문이 게재되는 영애를 누렸다.* 이후 50여 년 넘게 방사선 치료관련 연구에 집중하며 270편이 넘는 논문으로 발표해 왔다.

송창원 교수가 미국에 남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는 지식습득만은 아니었다. 당시 한국에는 방사선치료는 전무상태였던 시절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애써 배운 지식들을 활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급변하고 있는 원자력과학에 뒤지리라 생각한 것이다. “미국에 머물면서 이러한 변화들을 고국에 전달하고 방사선 의학 발전정보를 직간접적으로 도울 수 있다면 더욱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송창원 교수는 스스로 교두보가 되기로 한 것이다.

방사선 생물학, 방사선치료기술 등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며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45년을 교수생활을 해 온 송창원 교수는 “70년대 초 서울 시청 부근에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속 암병원이 있었는데 당시에 국내에는 방사선치료 전문의가 없어서 캐나다에서 방사선치료 전문의 한사람을 모셔다가 환자치료를 하고 있었다." 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기부는 송창원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송교수는 1973년과 1978년에 국내 대학병원에서 1개월간 방사선치료 관련된 방사선생물학 강의를 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면서 80년대 초부터는 송 교수에게 국내 대학및 대학병원, 원자력병원을 비롯해 정부기관에서의 요청이 이어지면서 30명의 한국의학 및 대학원생 이 짧게는 2~3개월에서, 길게는 4~5년까지 송교수의 연구실에서 연구를 할 수 있게 하였으며, 한국을 직접 방문해 국내 석학들의 지식 성장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송 교수와 인연을 쌓은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한국의 방사선치료 및 방사선생물학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송 교수는 스스로 지적, 인적 네트워크의 교두보가 되면서 직간접적으로 국내 방사선치료 그리고 방사선생물학 발전에 기여한 것이다.

>> 한발 앞서간 연구 활동, 그리고 그의 꿈은 여전히 ‘한국’

송창원 교수는 1960년 중반부터 방사선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펴 왔다. 특히 송 교수는 정위적방사선수술(Stereotactic Radio Surgery, SRS)이나 체부정위적방사선 치료(Stereotactic Body Radiation Therapy, SBRT) 등 초정밀 정위적 방사선 수술 연구 분야의 권위자로, 해당분야에서 앞선 연구를 진행해 왔다.

“70년대 암 혈관에 다량의 방사선을 조사하고 변화에 대한 연구를 했다”는 송 교수는 “저선량의 방사선으로 1~2개월에 걸쳐 암을 치료하는 치료법을 사용하고 있던 당시에는 고선량 조사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내 연구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결국 사장되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고선량 방사선조사로 단시간에 극소부위의 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검증되면서 SBRT, SRS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

현재 SRS, SBRT 등의 정위적 방사선치료법은 세계적으로 암치료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 역시 실제 암 환자 치료에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송창원 교수의 앞선 연구가 뒤늦게야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서 국내 의료진이나 연구계에서도 그간의 연구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고, 정보교류를 요청하는 손길 역시 늘어났다. 송교수는 또 암의 온도를 높이면 암의 방사선치료효과가 높아진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온열치료 연구에 많은 공헌을 했으며 미국온열치료학회의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송교수는 현재 온열치료가 SRS 그리로 SBRT의 효능을 올릴 수 있는 방안에 대래서 KIRAMS 연구원들과 공동연구중이다. 

“아직까지 연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고 말하는 송 교수는 “그러나 욕심내지 않고 그동안 했던 연구를 차츰 줄여가며, 내 연구 결과와 귀중한 정보들로 한국의 방사선 치료 관계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송 교수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은 6.25전쟁에 참전해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을 더했다는 것과 미국에 남아 선진 방사선 치료기술을 연구하고 이를 한국에 전파하는 가교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바로가기: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217/n5129/abs/217650a0.html

 

Nature 217, 650 - 651 (17 February 1968); doi:10.1038/217650a0

 

Epidermal Cell Population Kinetics in Albino Guinea-pig Skin 


CHANG WON SONG & JOSEPH TABACHNICK


Research Laboratories, Laboratory of Experimental Dermatology, Albert Einstein Medical Center, Philadelphia


IN adult mammals the epidermal cell population is in a steady state—continuous cell loss by keratinization is balanced quantitatively by new cell production in the basal layer. We have found that the turnover time of albino guinea-pig epidermis (time required for the replacement of a number of cells equal to that present in the basal, spinous and granular layers) differed from that reported by Platt1 and also from that found for other mammals 2–5.

 

1. Platt, H. , Nature, 184, 1654 (1959). | PubMed | ISI |

2. Epstein, W. L. , and Maibach, H. I. , Arch. Dermatol., 92, 462 (1965). | Article | PubMed | ISI | ChemPort |

3. Weinstein, G. D. , and Van Scott, E. J. , J. Invest. Dermatol., 45, 257 (1965). | PubMed | ISI | ChemPort |

4. Weinstein, G. D. , J. Invest. Dermatol., 44, 413 (1965). | PubMed | ISI | ChemPort |

5.  Sherman, F. G. , Quastler, H. , and Wimber, D. R. , Exp. Cell Res., 25, 11 (1961). | Article | PubMed | ISI | ChemPort |

6. Leblond, C. P. , Greulich, R. C. , and Pereira, J. P. M. , Symp. on Wound Healing (edit. by Montagna, W.), 39 (Pergamon Press, New York, 1964).

7. Epstein, jun., E. H. , and Epstein, W. L. , J. Invest. Dermatol., 46, 453 (1966). | ISI |

8. Bertalanffy, F. D. , Lab. Invest., 13, 871 (1964). | PubMed | ISI | ChemPort |

9. Baserga, R. , and Nemeroff, K. , J. Histochem. Cytochem., 10, 628 (1962). | ISI | ChemPort |

10. Wimber, D. E. , Symp. on Cell Proliferation (edit. by Lamerton, L. F., and Fry, R. J. M.), 1 (F. A. Davis Co., Philadelphia, 1963).

11. Pederson, T. , and Gelfant, S. , Seventh Ann. Meeting Amer. Soc. Cell Biol., Denver, Colorado, Abstract No. 209 (1967).

12. Skjaeggestad, O. , Acta Pathol. Microbiol. Scand., Suppl. 169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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